'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신연 감독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용의자>에 이어 4년만에 원신연 감독이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돌아왔다. ⓒ 이정민


"원작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김영하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하기로 하면서 원신연 감독이 품고 있던 목표이자 방향성이다. 그렇게 탄생한 <살인자의 기억법>이 지난 6일 개봉했다. 감독의 바람대로 원작을 읽은 관객들 사이에선 비슷한 평이 나오고 있다. 치매성 질환을 잃고 있는 연쇄살인마 병수(설경구)가 딸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연쇄살인범 태주(김남길)를 죽이려 하는 이야기가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개봉 첫 날 14만명 동원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순항 중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살인자 대 살인자'다. 여기에 어떤 공권력이 아닌 개인이 개인을 향해 폭력과 분노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사적 복수 요소도 있다.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일까, 원작과 다소 다른 지점을 통해 감독은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기억을 잃어가며 자신 앞에 펼쳐진 상황이 현실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병수는 왜 그렇게 처절했을까. 원신연 감독을 직접 만나 물었다.

만남을 거부한 작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공통점 중 하나가 원작자와 감독 사이 소통이 거의 없다는 것. 창작자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텍스트로 이미 완성된 세계관을 영화화 한다는 건 또 다른 창조이며, 그 영역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서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기억법>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원신연 감독은 김영하 작가를 한 번 만나고 싶어했으나 김영하 작가가 고사했다고.

"만남 자체로 작품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 문법이 따로 있고, 내 소설이 영화화 됐을 때 그 행복감과 고민과 성취감은 오로지 감독의 몫'이라고 하셨다."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신연 감독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렇게 철저히 독립적인 작품의 길을 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이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궁금했다. 즉, 원작에서 가장 멀어지고 싶었던 부분과 가까워져야 했던 지점 말이다.

"설정이나 캐릭터나 구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원작의 장점을 유지하는 작업을 세밀하게 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원작과 내용이 다소 다르더라도 전체적인 온도나 분위기, 소설의 매력을 느끼신다면 제 말이 반영되는 것이거든. 소설의 매력은 캐릭터나 배경으로 가꿀 수 있는데 캐릭터를 통해 할 부분은 아닌 거 같았다. 영화화를 결정한 뒤 소설을 반복해서 읽었고, 구조를 세워나갔는데 여기에 소설 속 매력을 반영한 셈이다. 반면 병수의 망상은 해체시켰다가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해체된 것들에 소설 속 매력이 박혀있는 것 같다.

<용의자>를 개봉하고 3개월 뒤에 소설을 읽었고, 바로 영화화하기로 했다. 투자사에 말씀드렸고, 일사천리로 진행됐지. 큰 부담이긴 하다. 인기 소설일수록 독자들의 애정이 크거든. 애정이 크다는 건 그걸 지키고 싶은 힘이 강하다는 거니까 부담이지. 근데 제가 워낙 징글징글한 도전을 좋아한다(웃음). 오히려 소설을 어떤 식으로 만들든 구조가 깨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만큼 원작이 튼실했다. 혹시나 소설을 애정하는 분이 영화를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윤리적 딜레마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신연 감독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와 별개로 <살인자의 기억법>을 두고 이런 지적이 가능하다. 앞서 말한 사적 복수 코드, 그리고 살인자가 또 다른 살인자를 응징한다는 지점에서 '과연 영화라도 살인이 옹호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한국영화 내 피해 여성 묘사의 방식에 대한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원신연 감독은 이 우려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지점을 정확히 느끼게 하고 싶었다. 소설 속 병수는 반성이 없다. 병적인 살인마니까. 이걸 영화로 옮겨오면서 응원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든다 해도 연쇄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지. 스스로 쓰레기를 죽인다고는 하지만 살인은 용서가 안 되는 거다. 관객 스스로 '병수를 응원해도 되나?' 이 질문을 하게끔 하고 싶었다. 

큰 틀에서 살인과 죄의식에 대해 접근했다. 영화에서 병수는 스스로 반성도 한다. 본인이 죽어야 함을 잘 안다. 죄 값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일을 진행하는데 관객 입장에선 그 죄 값이 합당한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질문까지 나아가게 하고 싶었다. 태주는 오히려 그 반대지. (소설 속 설정과 달리) 병수는 사이코패스이고 태주는 소시오패스다. 전자는 유전적, 후자는 환경적 요인에 따라 생기는 게 차이다. 

둘 다 어렸을 때 학대를 받긴 하지만 (영화에 잠깐 나오는) 병수 아버지를 잘 보면 군복을 입고 있다. 영화에 자세히 묘사하진 않았지만 병수의 아버지는 5.16에 가담한 사람이다. 사람을 집단으로 학살한 그 유전자가 병수에게 이어진 거다. 그가 태생적 한계가 있는 인물이라면 태주는 우리 사회 가정들이 만들어 낸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다. 충분히 통제와 절제로 억누를 수 있는데 죄책감을 쾌감으로 발전시켜 간 거지." 

죄의식이 없는 소시오패스(태주)의 질주를 사이코패스(병수)가 멈춘다. 그런데 여기에 치매라는 증상과 죄의식의 문제가 걸려있다. 복잡한 설정이지만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바로 관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관련 사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속 태주와 병수는 서로의 정체를 일찌감치 알아챈다. ⓒ 쇼박스


폭력의 감수성

피해 여성 묘사에 대해 원 감독은 말을 아꼈다. 다만 원신연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 때만 해도 그런 사회적 공기가 형성되진 않았었는데 창작자로 하여금 표현법에 대해 고민하게끔 된 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저 역시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묘사할 것 같다"고 답했다.

원신연 감독은 사실 이런 혐의(?)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 그의 전작 <세븐데이즈>와 <가발>을 통해 그는 충분히 여성 주체의 사건 해결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 질문이 유효해 보인다. 그의 단편 <빵과 우유>에 담은 한국 사회 내 가장이라는 책임과 부채감, <구타유발자들>에 담은 인간의 폭력성 등을 보면 원 감독이 일종의 폭력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을 품고 있다고 의심해볼 수 있다.

"(웃음) 충분히 그 의심 가능하다!  하지만 100프로 과거 작품을 의식하며 하진 않는다. 과거에서 탈피하려는 게 보통이거든. 다만 본능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나도 모르게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 작품에 담았을 것이다. 혐의 있음을 인정!"

폭력 감수성을 언급한 이유가 다름 아닌 원신연 감독이 본래 무술 배우면서 동시에 무술 감독 출신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상업영화에 스턴트 맨 혹은 대역으로 영화계를 전전했던 그는 이후 <피아노맨>(1996) <넘버3>(1997) <카라>(1999) 등의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다. 단편 <빵과 우유>(2005)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연출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병수와 태주의 결투에 충분히 그의 인장이 담겼을 법했다.

"오히려 그 부분에서 힘을 뺐다. 캐릭터만 살리려 했지 액션에 무게를 싣진 않았다. 오히려 병수가 사고를 당하며 기억을 잃는 장면에 공을 들였다. 병수가 자신의 과거로 들어가는 계기이기도 하고, 기억 속 기억을 표현하는 지점이기도 해서 매우 중요했다. 일반 영화였다면 사고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했겠지만 전 원신 원컷으로 실제로 촬영했다. 단순히 차가 뒤집히는 장면이 아닌 김병수라는 메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장면이었으니.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살인자'를 제외하고 바라보자. 병수가 단순히 기억만 잃는 인물이라면 기억과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거리가 많다. 편집에서 빼긴 했지만 '진짜 무서운 건 악이 아니야. 시간이지'라는 대사가 있었다. 소설에도 나오는 명대사지. 이 영화를 깊게 빠져서 보신다면 시간과 기억, 삶과 죽음, 악마성에 대한 은유가 있다. 설경구 배우가 그걸 잘 살려주었다."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신연 감독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 이정민


이야기가 깊어졌지만 본질은 하나다. '과연 우린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을까?' <살인자의 기억법>을 통해 원신연 감독이 던진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을 어렵게 말고, 상업영화로 장르를 즐기며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한 원 감독은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기존 영화들이 정치적인 자기 발언이 있고, 실화나 역사를 다룬 게 많았잖나. 그런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이것처럼 자기검열을 치열하게 하는 영화를 만난다면 일종의 환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도전할만한 일이었다. 제겐."

원신연 감독의 차기작? 군 방산 비리를 다룬 <제5열>을 비롯해 로봇이 등장하는 SF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등이 출격 대기 중이다. 이 중 어떤 게 먼저 세상에 나올까. 아마 <제5열>이 가장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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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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