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2-용기있는 삶> 관련 사진.

영화 <22-용기있는 삶>은 중국 내 위안부 피해자 22명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며 그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 ⓒ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 피해자는 있는데 정작 가해자는 숨어있다. 시비가 가려졌다 해도 여전히 국가 차원의 진정한 사과와 책임 인정이 요원해 보인다. 이 과정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망각이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일본의 위안부 동원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2012년 32명에서 22명, 2017년 현재 8명으로 줄었다. 중국 내 생존자로 공식 집계된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수다. 신인 궈커 감독은 2014년 초부터 이 22명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이중엔 한국에서 강제로 중국에 끌려간 뒤 중국 국적으로 살아갔던 이수단, 하상숙님이 포함돼 있었다. 안타깝게도 제작 과정과 촬영 직후 두 분 모두 별세했다.

궈커 감독은 제작이 여의치 않자 한국 제작사의 도움을 요청했다. 지지부진했던 제작이 김원동 대표(아시아홈엔터태인먼트)가 합류하며 급물살을 탔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 22-용기 있는 삶 >(아래 < 22 >)다. 영화는 지난 8월 14일 중국에서 개봉해 현재(9월 6일 기준)까지 1억 6973만 위안(관객 530만 명 추정, 한화 약 320억 원)의 흥행 기록을 올렸다.

본래 < 22 >는 한국과 중국의 동시 개봉을 추진했었으나 무산됐다. 국내 배급사가 대부분 난색을 표했기 때문. 영화 <귀향>이 국내에서 크게 흥행했고, 꾸준히 위안부 피해자 관련 영화가 나오던 때였다. 대체 왜 무산됐고,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김원동 대표를 직접 만났다.

"한국에 더 큰 기대 걸었다"

 영화 <22-용기있는 삶> 관련 사진.

영화 <22-용기있는 삶> 포스터. ⓒ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궈커 감독이 한국제작사에 도움을 청한 건 적어도 중국보다 한국에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 대한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관련 콘텐츠 역시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원동 대표 역시 마침 중국으로 끌려간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소리굽쇠>(2014)를 제작한 경험이 있었다. 궈커 감독 입장에선 최적의 파트너였다. <소리굽쇠>로 인연이 닿은 박차순 할머니(중국에서 거주하다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오신 뒤 올해 초 별세-기자 주)의 주선으로 김원동 대표와 궈커 감독이 만날 수 있었다.

"박차순 할머님은 중국으로 끌려간 피해자 중 한 분이다. 처음 뵙게 된 후 꾸준히 연락하며 그 분을 후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궈커 감독이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4년 경 만났는데 제작비가 부족해 촬영을 중단한 상황이더라. 한국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도 많고, 복지가도 많으니 자연스럽게 감독이 다가온 건데 처음엔 자문을 구할 줄 알았다. 근데 투자할 생각이 없는지 묻더라.

흔쾌히는 아니고 고민을 좀 했다. 감독 스스로도 중국 내에 어떤 입지가 있는 이가 아니었고, 중국 정부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때였다. 오히려 한국에 거는 기대가 컸다. 위안부 피해자 분을 소재로 흥행을 바라는 분은 없을 거다. 다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이 큰 거지. 아시다시피 <소리굽쇠>가 그런 면에서 성과가 미흡해 뭔가 더 해보고 싶었다."

의기투합해 촬영이 재개됐다. 궈커 감독과 김원동 대표가 택한 전략은 소셜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영화 <귀향> 사례를 궈커 감독이 이미 알고 있어서 김 대표에게 제안한 것. "중국에서 과연 시민들의 모금이 통할까" 반신반의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중국 내 '텐센트공익'이라는 플랫폼에서 시작한 < 22 > 크라우드 펀딩은 중국 CCTV 뉴스 보도와 함께 관심도가 높아졌고, 내로라하는 영화인들의 독려까지 더해져 기간 내에 100만 위안을 모으는 성과를 올렸다. 100만 위안은 이 영화의 제작비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영화 <22-용기있는 삶>의 제작자인 김원동 대표.

제작을 맡은 김원동 대표는 한국 내 무관심과 함께 중국 내 사드 후폭풍을 함께 걱정해야 했다. ⓒ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자발적 참여

"처음엔 중국정부나 지자체 관계자를 많이 만났는데 워낙 땅이 크고 이슈가 많은 나라이지 않나. 그런 곳에서 지원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마침 <귀향>이 잘 됐었고, 그 전략을 해보기로 한 거지. < 22 >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국 내 유명 감독, 배우들이 직접 펀딩에 참여하기도 했다. 장신이라는 배우는 1억 원 정도를 내면서 입소문도 내주시더라.

<소리굽쇠> 때 느꼈지만 유명인들의 사명감 이런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때 영화에 넣으려 한 노래가 몇 개 있었는데 가수들이 일본 활동에 지장받는다고 거부하셨다. 꽤 많은 배우에게 출연 요청도 드렸는데 역시 대부분은 일본 활동 문제나, 출연료가 문제라고 거부를 하셨다. < 22 >는 유명인들이 자발적으로 SNS에 영화 관련 글도 올리고 그랬다. 마치 중국에 살면서 < 22 >를 안 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생겼다. 지정학적 차이 때문인 건지 일본 활동을 염려하는 배우들이 없었다."

중국의 총 4만 5000개 스크린 중 < 22 >가 개봉 첫 날 차지한 스크린 비율은 1.47%에 불과했다. 이게 이튿날 5%, 나아가 최고 11% 대까지 비율이 올라갔다. 상영일수도 일주일을 넘겨 18일 이상 이어지고 있다. 보통 일주일 단위로 영화가 갈리는 중국 극장가 분위기에 비할 때 대단한 흥행인 건 분명 맞다.

참고로 한국영화 리메이크 작들도 일주일 이상 넘기거나 2억 위안 이상 흥행한 작품이 많지 않다고. <수상한 그녀> 리메이크인 <20세여 다시 한 번>이 3억 위안을 넘겨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고, <블라인드> 리메이크인 <나는 증인이다> 등이 1억 위안을 넘겼는데 이들 모두 거대 제작비가 들어간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수익성은 < 22 >에 비하면 크게 떨어진다. 김원동 대표는 "SNS 등으로 퍼진 입소문 덕"이라며 "영화 속 사연을 들은 관객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표 한 장이라도 발권해 놓고 스크린이 닫히지 않게 자발적으로 움직이셨다"고 흥행 요인을 분석했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영화 개봉 준비 중 사드 이슈가 터져 중국 내 반한 감정이 극에 달했다. 김원동 대표는 "한국 쪽 스태프들과 협의해서 엔딩 크레디트에 국적은 넣지 않기로 했다"며 "제작사 이름도 원래 들어가야 하는데 양해를 구해 맨뒤 스폐셜 땡스로 나가도록 했다"고 전했다.

 영화 <22-용기있는 삶> 관련 사진.

영화 <22-용기있는 삶>의 한 장면. ⓒ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반복되는 질문과 반응

결과적으로 중국흥행 덕에 < 22 >는 다시 한국 개봉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제작 당시를 회상하며 김원동 대표는 "그땐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협상을 하던 때라 대형배급사에선 나몰라라 했고, 중소배급사에선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귀향>도 힘들게 개봉했고, 결국 많은 관객이 찾았다. 근데 이 영화를 들고 찾아갔을 때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더라. 보시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감독과 스태프들이 2년간 할머님들 곁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친근감을 형성한 뒤 카메라를 돌린 결과물이다. 그간 위안부 다큐라고 하면 고발이나 르포 형식이 많았잖나. 할머님들 입으로 직접 증언하고 참혹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관객 입장에서도 마음이 불편해지기 십상이었지.

< 22 >는 분노와 눈물을 추구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리려 했다. 수십만 명의 피해자 중 생존자가 현재 많이 안 계신 이유가 사실 육체적 병보다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편견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50대 이전에 돌아가신 분들 중 자살한 분들이 많다. 

이 영화의 부제가 '용기 있는 삶'인 이유가 바로 산다는 용기를 담고 싶어서였다. 어떤 고초를 겪었다 해도 끝까지 살아내는 게 힘없고 작은 소시민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용기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주제가 바로 할머님들의 작은 용기다. 우리가 상상 못할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 분들이 삶을 살아낸 용기에 집중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메시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중국 관객들의 반성과 자성을 이끌어 낸 < 22 >는 국내에서도 영화제나 특별상영회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김원동 대표는 "어떤 영화제에선 스태프를 빼고 10명도 안 되는 분만 오신 적이 있다"며 "'또 위안부야?' 이런 반응을 볼 때마다 새롭고 참신한 이슈 없이 국내 개봉이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제작비만 건져도 감지덕지라 했던 작품이 큰 수익을 남겼다. 촬영 전 수익금에 대한 기부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촬영에 큰 도움을 준 중국 위안부 문제 연구센터 측에 만약 본 영화의 수익금이 있다면 제작비를 제외한 수익금 전액을 이 센터에게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게 우리 취지기도 하니까. 솔직히 수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2주를 보내고 나니 우리가 어느새 150억 원대 기부자가 돼 있더라. 해당 금액은 좋은 곳에 쓰이기 위해 투명하게 관리 감독하는 체계를 만든 뒤 공개적으로 기부될 것이다.

국내 개봉도 준비 중이다. 다행히 관심 가져주는 배급사들이 있다. 정권도 바뀌었고, 조만간 조율해서 결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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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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