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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국제불빛축제'. 해마다 여름이면 포항의 밤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들.
 '포항 국제불빛축제'. 해마다 여름이면 포항의 밤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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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조합이 있다. 인간 존재와 외로움, 차가운 냉면과 뜨끈한 수육, 훈훈한 봄바람과 흩날리는 벚꽃잎, 가을 산과 붉은 단풍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여름'과 '바다' 역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수백 년 이상 친밀함을 이어온 조합이 아닐까.

경상북도 포항으로 이주해 두 번째 맞은 여름. 동해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동쪽 바다로의 피서'는 여름날 낭만적인 꿈이다. 그걸 매일같이 경험할 수 있었으니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폭염과 폭우가 지루하게 반복되던 2017년 여름의 힘겨움을 '그 행운'이 견디게 해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은 잊히기 쉽다. 지구 위 어느 나라 바다보다도 아름다운 게 한국의 동해다. 짙푸른 사파이어빛 색채는 물론, 새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잔잔한 파도, 여기에 다양한 색깔의 수영복을 입고 해변을 걷는 가족들의 다정한 모습까지.

세상엔 아름다운 바다가 많지만...

하지만 우리는 '바다'라고 하면 낭만적인 소설과 시, 혹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외국의 해변을 먼저 떠올린다.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는 지중해 동쪽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위치한 에게해(海)를 근사하게 묘사한다. 낭만과 자유를 구가하는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는 보석의 빛깔로 빛나는 에게해를 바라보며 태양처럼 뜨겁고 정열적인 삶을 살아간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쳇바퀴에 갇혀 출근과 퇴근만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한국 직장인 대부분에게 '희랍인 조르바'는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다. 바로 그 부러움과 동경의 배후에 크레타 섬을 둘러싼 낭만의 바다 에게해가 있다. 보란 듯 사표를 던지고 직장 동료들의 부러운 시선 속에서 배낭을 메고 떠나고 싶은 곳.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망명생활을 묘사한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에서 그려내는 이탈리아 남부 가상의 섬 '칼라 디소토'에서 보는 바다 역시 절경이다. 남부 이탈리아의 원시적인 해변은 마치 존재의 시원(始原)을 확인하는 것 같은 청량감을 준다.

그 섬의 해변에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가 주고받는 대화는 잊고 살았던 현대인의 꿈을 되찾아준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늙은 시인이 '시를 모르고 살았던'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여자를 유혹하는 건 지위와 돈이 아닌 메타포(metaphor·은유)야"라는 말은 열패감과 패배의식에 빠진 수많은 한국 청년들을 위로한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스의 에게해와 크레타 섬, 이탈리아의 남쪽 해변도시인 아말피와 포지타노, 카프리 섬은 아름답다. 여름날 낭만을 즐기기에 최고인 지역이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항공권을 예약하고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느긋하게 3~4주쯤 거기서 바캉스를 즐길 금전적·정신적 여유를 가진 이들이 한국에 얼마나 될까?

포항 월포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들.
 포항 월포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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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해수욕장에서 열린 '포항 국제불빛축제'에 수많은 관광객이 몰렸다.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열린 '포항 국제불빛축제'에 수많은 관광객이 몰렸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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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영일대해수욕장... 물회와 모리국수 등 먹을거리도


하지만,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세상엔 최선 아래 차선도 있는 법이니. 에게해와 지중해의 바다 빛깔, 독특하고 맛있는 먹을거리, 여름밤의 낭만을 한국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포항을 추천하고 싶다.

고속열차 KTX가 당신을 서울역에서 포항역까지 태우고 오는 시간은 불과 2시간 20분. 거기서 택시를 타고 20분이면 포항 최대의 해변인 영일대해수욕장에 도착할 수 있다. 뿐인가, 깨끗한 바닷물과 지역의 특미인 '가자미 물회' '전복 물회' 갖은 해산물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 '모리국수'를 맛볼 수 있는 월포해수욕장과 구룡포해수욕장도 지척이다.

여기에 해마다 7월 말이면 파도 일렁이는 검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수천 발의 불꽃이 여행자를 반긴다. '포항 국제불빛축제'가 바로 그것. 불빛축제를 반기는 건 애정이 식은 부부와 새롭게 사랑을 시작한 연인만이 아니다. 아이들 역시 축제의 불꽃처럼 환한 얼굴로 행복하게 깔깔거린다.

크레타 섬과 카프리 섬이 멀고 먼 꿈의 공간이라면, 포항은 현실 속 아름다운 여름 휴양지다. 자, 내년엔 시원스런 동해 물결 넘실대는 포항으로 '더위 사냥'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계간 문예지 <연인>에 수록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포항, #구룡포, #영일대해수욕장, #월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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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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