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ABBA) 아바는 베니 안데르손과 아니프리트 링스타트 부부, 비외른 울바에우스와 앙네타 펠트스코그 부부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의 이름 이니셜를 따 ‘ABBA’라고 이름 붙였죠.

▲ 아바(ABBA) 아바는 베니 안데르손과 아니프리트 링스타트 부부, 비외른 울바에우스와 앙네타 펠트스코그 부부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의 이름 이니셜를 따 ‘ABBA’라고 이름 붙였죠. ⓒ Wikipedia


그 시절, 이름 하여 나의 학창시절인 70년대는 더벅머리가 유행했습니다. 이후에도 근 20,30년은 유행한 머리 스타일이죠.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르고, 나팔바지에 미니스커트, 핫팬츠쯤은 입어줘야 유행을 선도하는 청년이었죠. 1967년 가수 윤복희의 첫 착용 이후 미니스커트가 온 세상을 뒤집어 놓던 시절입니다.

가위 들고 거리에서 장발을 잘라대는 경찰이 있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고 무릎 위로 20cm쯤 올라가면 단속을 했답니다. 경범죄 처벌법으로요. 그건 그래도 청년인 형님 누나들 이야기고요. 저는 학교에서 머리를 밀린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머리를 소위 '바리캉(이발기, 바리캉은 제조 회사의 이름이랍니다)'으로 밀고 다니던 시절입니다. 이름 하여 '뻑빡 머리'가 제 중고등학교 시절 머리 스타일이랍니다. 규율부 선생님께서 좀 머리가 길다 싶으면 손으로 머리를 집어 손등 위로 머리카락이 보이면 예의 그 '바리캉'으로 앞에서부터 뒤로 확 밀어 주었답니다.

반항하는 친구들 중에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머리를 깎지 않고 머리에 고속도로(?)를 그대로 놔둔 채 등교해서 '뒤지게(죄송합니다. 이게 그때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서)' 맞기도 하고요. 한 친구는 거의 한 달을 머릴 깎지 않고 고속도로 상태로 다녀 화장실 청소를 하는 근신 처분을 받은 적도 있답니다.

반항하던 학창시절, '아바'가 위안이었다

 <대한늬우스>가 1972년 10월 17일에 선포된 유신체제하에서 동년 11월 21일 국민투표로 유신헌법이 제정되었음을 알리는 신문보도를 인용하고 있다.

<대한늬우스>가 1972년 10월 17일에 선포된 유신체제하에서 동년 11월 21일 국민투표로 유신헌법이 제정되었음을 알리는 신문보도를 인용하고 있다. ⓒ 국가기록원


 장발 단속에 걸려 온 청년들이 머리를 깎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대한뉘우스> 영상 갈무리)

장발 단속에 걸려 온 청년들이 머리를 깎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대한뉘우스> 영상 갈무리) ⓒ 국가기록원


바로 이처럼 반항하던 질풍노도의 학창시절에 듣던 제 BGM(Background Music)은 스웨덴의 두 커플로 구성된 4인조그룹 아바(ABBA)의 '에스오에스(SOS)'입니다. 아바는 베니 안데르손과 아니프리트 링스타트 부부, 비외른 울바에우스와 앙네타 펠트스코그 부부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의 이름 이니셜을 따 'ABBA'라고 이름 붙였죠.

아바는 1974년 'Waterloo'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세계의 무대에 등장했죠. 이 두 부부의 결혼과 이혼은 세계적인 이슈였고요. 하여튼 이 시대 아바를 모르면 간첩이죠. 저는 아바의 모든 노래를 열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특히 '에스오에스'를 좋아했는데 그건 'SOS'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탈출하고 싶은 학창시절의 절규를 그들이 대신해 준다 싶었던 겁니다. 노트에 알 듯 모를 듯한 가사를 적어 따라 불렀습니다. 영어를 놔두고 왜 한글로 적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지금 그 노트를 찾으려도 찾을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살리면 대강 이렇습니다.

"왜어라 도즈 해피 데이즈 데이 씸쏘 하드 투 화인드/ 아이 트라이투 리치훠류 밧 유해브 크로우스드 유어 마인드/ ... 잇 유스 투비 쏘우 나이스/ 잇 유스 투비 쏘우 굿/ 쏘우 왠 유어 니어미 달링 캔유 히어미 에스오에스/ 더 럽유 개이브미 낫씽엘스 캔새이브미 에스오에스..."

물론 'SOS'는 곡이 끝나도 무한 반복했고요. 솔직히 그때는 애절한 사랑 노래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이 노랠 듣고 반복하여 'SOS'를 쳐댔습니다.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억눌린 청춘의 시대적 왜곡을 아바가 대신 풀어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곡 속에 멀어져만 가는 연인에 대한 애절함이 구구 절절히 흐른다는 걸 알았다면 그리 열광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친구들이 고속도로를 가지고 반항할 때 저는 'SOS'라는 말을 반복함으로 소심한 반항을 했던 겁니다. 가사 내용과는 상관없이 굴절된 시대에서 구출해 달라고 외쳐댔던 거죠.

"행복한 날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너무 어려워요. 난 당신에게 가까이 가려 했지만 당신은 마음을 닫았군요. 지난 일들은 참 멋졌는데. 지난날들이 참 좋았는데. 당신이 내 곁에 있을 때 내 말이 들리지 않나요, SOS. 당신이 내게 준 사랑 외엔 아무 것도 날 구원할 수 없어요, SOS......"

이렇게 사랑이 고픈 이가 어디 있을까요. 구원해 줄 이는 당신밖에 없다고 'SOS'를 칩니다. 하지만 제가 이 노랠 그리 듣고 부른 것은 사랑이 고파서가 아닙니다. 탈출하고 싶어서입니다. 공부와 시대와 청소년이라는 굴레를. 그러니까 가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SOS'라는 단어만 믿고 애청했던 겁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까지 만들어 우리 학생들을 들볶았습니다. 세상은 새마울운동이 한창이고요. 늙수그레한 사회 선생님은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이야 말로 일본의 메이지유신처럼 이 나라를 강대국으로 이끌고 이 민족을 살릴 것이라고 항변하는 강의를 서슴지 않았고요.

배터리가 본체보다 더 큰 라디오를 들었다

 ABBA의 <Live At Wembley Arena> 앨범 재킷

ABBA의 앨범 재킷 ⓒ Universal

대학생인 형님 누나들은 나름대로 장발, 나팔바지, 미니스커트라는 탈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어린 학생이라 장발, 나팔바지를 입을 수도 없었습니다. 시대와의 불화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제게는 유일한 탈출구가 트랜지스터라디오였습니다.

이 트랜지스터라디오로 말할 것 같으면, 라디오 본체보다 배터리가 더 컸습니다. 라디오에 큰 배터리를 고무줄로 동여매 책상 귀퉁이에 놓고 틀어댔죠. 요즘 라디오처럼 성능이나 좋은가요. 찌직찌직 소리를 내면 손으로 한 번 때려주면 나아지는 그런 라디오였습니다.

KBS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단골 애청 방송이었고요. 고 이종환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리 달콤할 수가 없었답니다. TBC(동양방송)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도 잊을 수 없는 프로그램입니다. 때론 그 수험공부로 바쁜 학생이 방송국에 노래 신청 엽서를 보내기도 했답니다. 물론 번번이 퇴짜였지만 말입니다.

반 친구 중 하나는 자신이 보낸 엽서가 방송을 탔다며 온 학교가 떠들썩하게 자랑질을 하기도 했죠. 이건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을 딸 확률인 거죠. 신청 엽서를 별나게 꾸미면 된다는 일종의 방송 선택 엽서 노하우도 떠돌던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손가락 한 번 까닥하면 노래 신청이 가능한 요즘은 맛볼 수 없는 희열이었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빼먹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그건 어머니의 잔소리입니다. 잠 좀 자야겠는데 라디오 소리 때문에 잘 수가 없으시다고. 방이 한 칸이었거든요. 지금처럼 이어폰이란 게 있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인데, 그땐 그런 게 없었는지, 있는데 저만 몰랐는지, 하여튼 날마다 어머니의 지청구를 먹어야 했답니다.

요즘 같으면 수험생과 같이 밤을 세우는 어머니가 많은 시댄데, 제 학창시절엔 그런 부모님은 희귀하던 때라서 어머니 잘 주무시라고 착하게 볼륨을 줄이곤 했습니다. 어려운 방정식도 아바와 함께 풀었습니다. 영어 공부도, 역사 공부도 아바가 곁에서 도와줬죠. 하하하.

지금 같으면 산란해서 공부가 될 턱이 없는데, 그땐 그렇게 공부가 잘 될 수가 없었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실은 'SOS'뿐 아니라 아바의 모든 노래를 즐겼습니다. 'Dancing Queen',  'I Have A Dream', 'Mamma Mia', 'Honey, Honey', 'Andante Andante' 이루 다 말할 수 없죠. 솔직히 당시엔 음반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고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아바에겐 무한 미안합니다. 억눌린 감정과 질풍노도의 시절, 사회적 압제까지 맞물리면서 힘들었던 제 학창시절은 아바가 있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이리 잘 늙어가고 있는 건 아바 때문일 겁니다. 아바!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공모] 내 인생의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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