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김기덕사건 공대위 회견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대위 주최로 ‘#STOP 영화계 내 성폭력 -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 영화감독 김기덕사건 공대위 회견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대위 주최로 ‘#STOP 영화계 내 성폭력 -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 권우성


'왜 지난 일을 이제야 공개하나?' 혹은 '대체 그 피해자가 누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던 한 여배우가 감독의 폭행과 강요를 고발하자 나온 일부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영화 <뫼비우스>(2013)에 출연했던 한 여배우 A의 사연에 136개 단체와 13명의 공동변호인단이 뭉쳤다.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이라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왜 이제야 들춰내냐고?"

이번 사건을 두고 나오는 여러 반응 중 부정적인 건 4년 전 일을 왜 이제야 들춰내냐는 물음이다. 회견에 참석한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2009년 고 장자연씨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국 연예 및 영화계의 뿌리 깊은 문제"라고 이 사건을 정의하면서 "원래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또 주변 사람들의 침묵 등으로 피해자가 나서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 운을 뗐다. 김민문정 대표는 "피해자는 지난 4년 간 일관되게 피해사실을 알렸고, 김기덕 감독의 처벌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며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알려진 대로 최초 여배우 A씨가 사건을 인지한 건 지난 2013년 촬영당시다. 서혜진 변호사에 따르면 A씨는 2013년 3월 2일 캐스팅 확정 후 <뫼비우스> 전체 분량 중 70% 정도를 찍은 시점에서 시나리오에 없는 연기를 김기덕 감독에게 강요당했고, 뺨을 맞았다. 이후 3월 13일 제작진과 상의 하에 하차를 결정했고, 피해사실에 대해 국가인권위와 여성 단체 등에 상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올해 전국영화산업노조 산하 영화인신문고에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한 뒤 검찰 조사까지 진행한 것.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는 "피해자가 상담을 받을 당시 어떤 변호사는 이런 사건을 잘 안다며 피해자에게 고소를 말리기도 했고, 여러 여성 단체들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돈 때문에 소송한다는 오해가 싫어서 피해자는 손해배상청구를 안 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이 사과한다고 하던데 이 사건이 사과로 끝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대표는 "촬영장에서 합리적 설명 없이, 대본에도 없는 걸 양해도 구하하지 않고 요구하는 건 연출이 될 수 없다"며 "하차 역시 김기덕 필름 측과 상의해서 결정한 건데 (김기덕 감독이 밝힌 입장문에서) 여배우가 무단 이탈했다고 비난하는 건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 역시 "폭행 사실이 있으면 그냥 사과하면 되는데 영화인 신문고 조사 과정에서 스태프가 증언하면 사과하겠다고 하더라"며 "이런 태도는 사건을 외면하려는 의도"라 해석했다. 안 위원장은 "현재 여성영화인 모임과 함께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며 "오래 전부터 실태조사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이제야 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폭행 및 베드신 강요? 김기덕 측 "사실관계 전혀 다르다"
김기덕 감독, 여배우 폭행 베드신 강요했다 '피소'

영화감독 김기덕사건 공대위 회견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대위 주최로 ‘#STOP 영화계 내 성폭력 -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 영화감독 김기덕사건 공대위 회견 ⓒ 권우성


"좋은 시나리오와 명망 있는 감독, 그리고 배우의 열정이면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촬영을 진행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연기하는 피사체만 남게 된다. 사실적 화면이 영화의 미덕이 되고 만드는 과정에서 폭행이나 강요가 발생해도 작품성과 감독의 연출 의도라는 말에 가려진다. 본래 영화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사람이 일하는 노동현장이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로 피해자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영화가 되길 바란다." (안병호 위원장)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왜 이제야 문제 삼느냐는 지적에 저 역시 개인적으로 그 당시 사건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피해자들이 처한 위계 구조에선 쉽게 말하기 어렵다"며 "해외에서도 이런 성적 폭력 피해자들의 약 80% 정도가 피해사실을 신고하지 않는다. 보복 두려움이나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 등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선정적 보도에 일침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검찰의 강한 수사와 언론의 선정 보도 자제를 촉구했다. 이명숙 대표는 "매년 언론이 이런 사건을 보도해왔고,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그만큼 사건이 많다는 뜻"이라며 "피해자들은 언론 보도로 인해 여러 불이익을 받을까봐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추측성 보도나 신상을 파헤치는 건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본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 검찰 조사 후 기소단계에서 기자회견 등을 하려 했는데 뜻하지 않게 언론 보도가 됐다. 여러 억측이 난무하는 걸 보고 급히 기자회견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 자릴 빌려 당부 드린다.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추측성 기사를 자제해주시라. 이 사건에만 연연하지 말고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인권 침해 실태와 해외 현장 실태 등에 관심을 가져주시라.

김기덕 감독 측에게도 알린다. (사건에 대한) 상당 증거를 보유 중인데 사실에 반하는 해명이나 주장이 없길 바란다. 또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신상털이나 악성댓글 등의 행위는 법적으로 반드시 강경 대응할 것이다." (이명숙 대표)

"인권침해로 만든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대위 주최로 ‘#STOP 영화계 내 성폭력 -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함께 한 활동가들이 ‘인권침해로 만든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언론은 추측성 보도와 신상파기를 중단하라’ ‘영화 현장에 사람이 있다’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인권침해로 만든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대위 주최로 ‘#STOP 영화계 내 성폭력 -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함께 한 활동가들이 ‘인권침해로 만든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언론은 추측성 보도와 신상파기를 중단하라’ ‘영화 현장에 사람이 있다’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권우성


현장에선 이후 대응 방안에 대한 말도 나왔다.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는 "여성영화인이 주축이 된 범영화인 성평등 대책 기구를 구상 중"이라며 "현재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오는 8월말까지 조사를 마치고 토론회를 거쳐 관련 기구를 만들 것"이라 밝혔다. 채 대표는 "그 와중에 이런 일이 생겨서 안타깝다"며 "여성뿐 아니라 언제 어떤 현장에서든 폭력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기덕 감독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8일 기자회견 이후부터 한 달 간 현장 내 폭행 및 강요 등에 대한 신고를 받는다(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02-599-0222, kcwr2017@gmail.com). 안병호 위원장은 "이걸 바탕으로 9월 중 토론회를 열고, 상설 기구화까지 논의할 예정"이라며 "영화계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임에도 여러 영화인 단체 중 4개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이번을 계기로 더 규합할 것이며, 이런 폭력문제를 더 이상 방조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회견 직후 공대위 소속 회원이 피켓을 들고 요구사항을 외치는 행사가 이어졌다. 이들은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함께 영화계 자정노력을 촉구했고, 인권침해 및 처우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와 관련 예산 마련을 요구했다. 또한 언론의 추측성 보도와 신상 파헤치기 보도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서울지방검찰청은 지난 7월 26일 김기덕 감독 사건을 접수받았다. 현재까지 관련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김기덕 뫼비우스 여배우 폭력 강요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