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송 투 송> 관련 사진.

영화 <송 투 송> 포스터. 몽환적인 음악과 화면이 특징이다. ⓒ CGV아트하우스


* 이 기사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래를 들었다. 너무 좋아 몇 백 번을 연달아 듣는다. 그리고 질리기 시작한다. 그 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를 듣게 된다. 질려 버린 노래는 더 이상 감정의 회로에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한다.

테렌스 말릭 감독의 최근작, <송 투 송> 은 노래에서 노래로 설렘이 옮겨가듯 사랑에서 다른 사랑으로 옮겨가는, 혹은 돌아오는 네 남녀의 순간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굵직하고도 피상적인 인연들을 얽고 섥는다. 

새내기 뮤지션인 페이(루니 마라 분)는 파티에서 잘 나가는 뮤지션, BV(라이언 고슬링 분) 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BV 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그의 친구이자 성공한 프로듀서인 쿡과도 밀회를 즐기며 두 남자 사이를 오간다. 쿡(마이클 파스빈더 분)은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웨이트리스, 론다(나탈리 포트먼 분)를 유혹하고 그들은 곧 결혼 하지만 둘 다 행복을 영위하지 못한다.

가득한 번뇌들

영화는 이 네 사람 틈에서 자라고 소멸하는 사랑을 음악으로, 영상으로, 그리고 4명의 내레이션으로 전달한다. <씬 레드 라인> 이나 <트리 오브 라이프> 같은 작품들을 통해 보여졌던 테렌스 말릭의 명상적이고 목가적인 스타일이 이 영화에도 투영되어 있지만 <송 투 송>이 전작들과 가장 차별되는 점은 음악과 독백들이다. 위에 언급한 줄거리의 굵은 획을 제외한 공간들은 음악과 네 인물들이 스치는 작은 인연들의 번뇌 가득한 독백들로 채워진다. "인간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how devastating to be a human being…) 라고 읊조리는 루니 마라의 오프닝 내레이션은 이 독백들의 서막이다.  

<송 투 송>의 가장 큰 약점은, 등장인물들이나 카메오들의 독백 혹은 내레이션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와 기승전결 혹은 인과와 거의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이미지와 대사, 이야기 등도 논리적 일치를 추구 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이 비관습적인 것은 확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지 못한다.

<씬 레드 라인> 에서 펼쳐낸 자조적이고 철학적인 자연의 이미지들(예. 전쟁터 한 가운데의 정적이 흐르는 숲 속, 등장인물이 쓰다듬는 나무의 롱 테이크)이 전쟁의 악마성에 중독되어 가는 병사들의 일말의 인간성(humanity)을 잘 드러내 주었던 반면, <송 투 송>의 추상적 이미지들, 예컨대 인물들을 보여주다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마오리 족의 문신이나 그로테스크한 피어싱의 클로즈 업 등은 관념적인 개연성 조차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 투 송>의 뛰어난 점을 꼽자면 내레이션과 독백에 쓰였던 대사들이다. 인과관계를 철저히 재지만 않는다면, 몸에 새겨 넣고 싶을 정도로 멋진 대사들이 넘쳐난다. 전반적으로 훌륭한 번역이지만, 원문이 더 놀라운 대사들이 꽤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대사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송 투 송> 관련 사진.

ⓒ CGV아트하우스


[하나] "I don't believe I sell myself for money, but I sell an illusion. I sell a man's fantasy."

"나는 내가 돈을 위해 나를 팔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아. 대신 나는 환상을 팔아. 남자들의 환상을…"

론다와 한 중년의 창녀가 호텔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창녀가 창문을 바라 보며 말한다 (두 캐릭터가 섹스를 한 것인지는 묘사 되어있지 않으나 서로 옷을 챙겨주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지만 희미하게 억울함과 서러움이 묻어난다. 창녀는 남자 고객들을 끄는 노하우가 생겼으며 이젠 본인이 그것에 선수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비법'은 의외의 것이다.

"I try to keep the cookie jar closed."

"나는 쿠키병을 절대 열어주지 않아." 

Cookie jar는 속어로 여성의 성기를 뜻하지만, 그녀는 이 대목에서 그것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cookie'는 그녀의 영혼을 뜻한 것이다. 몸이 아닌 환상을 팔아 돈을 벌지만 가슴 속의 '쿠키'는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이란 의미 일 것이다. 창녀의 대사는 영화 말미에 돈과 쾌락을 쫓은 결혼과 끝끝내 타협하지 못한 론다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복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둘] "I took sex, a gift – I played with it. I played with the flame of life."

"난 섹스를 택했어. 선물이지. 내가 갖고 놀게 된. 인생의 불꽃을 갖고 논거야"

영화 끝 부분에 등장하는 페이의 나레이션이다. 그녀는 BV를 사랑하면서도 쿡과의 가학적인 섹스 관계를 털어내지 못한다. 페이는 뮤지션으로 뚜렷이 성공하지 못했고 집도 없이 그때 그때 사귀는 사람의 집에 얹혀 살며 생활하는 '한심한' 청춘이다. 탁구대 사이의 공처럼 두 남자 사이에서 그녀는 타인의 목적으로서만 살아간다. 물론 이것도 그녀의 선택이다. 몸을 누르고 할퀴는 가학적인 섹스만이 이런 어정쩡한 그녀에겐 자극이고 '불꽃'인 것이다. 그러나 생각 해보면, 누구는 아니겠는가. 한심한 인생을 살고 있던 아니던, 누구인들 몸을 누르고 할퀴는 인생의 불꽃 같은 것을 가지고 놀아보고 싶지 않겠는가.

 영화 <송 투 송> 관련 사진.

ⓒ CGV아트하우스




[셋] What don't I know? – How to feel. How to yearn. How to be sick down to your bones.

"내가 뭘 모르지?" 라고 묻는 BV 에게 전 여자친구가 하는 대답이다.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원하는지. 어떻게 뼛속까지 아파하는지." 

시제는 현재지만 과거에 내가 뭘 몰랐냐는 질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의 상당 부분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대목만큼은 앞 뒤 안 봐도 훤히 알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느낄 줄 모르는' 남자들 때문에 답답하다. 영원한 연애의 번뇌가 아닐 수 없다.

<송 투 송>의 또 다른 볼 거리라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등장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들이다. 이기 팝,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패티 스미스 등이 등장인물들이 교차하는 공간 곳곳에 튀어나와 인생을, 음악을 말한다. 영화의 전체적 만족도를 떠나 이것만으로도 선물 같은 스펙타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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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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