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이경영, 한국영화는 내 손 안에!   배우 이경영이 26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서 열린 제36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입장하고 있다.

배우 이경영. 제36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입장하던 당시 모습. ⓒ 이정민


"그리고 이경영."

오프닝이든 엔딩크레디트든 주연 배우 이름 뒤에 붙은 '그리고'는 단순히 조연을 넘어 해당 작품에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기여한 배우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가지고 있는 능력과 인지도에 비해 맡겨진 역할이 다소 작을 때 예우 차원에서 붙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배우가 이 수식어를 가장 많이 받았을까.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감히 그 이름을 짐작해 본다. 배우 이경영.

최근 <군함도>가 개봉해 나름 관객몰이를 했는데 벌써 이경영이 촬영을 마쳤거나 촬영이 진행 중인 작품만 해도 대 여섯 편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모티브로 한 영화 <게이트>,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크리처 영화 <물괴>,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강철비>, 실존인물을 소재로 삼은 <자전차왕 엄복동> 등.

충무로의 노예

 영화 <암살>에서 이경영은 친일파 강국 역을 맡았다.

영화 <암살>에서 이경영은 친일파 강인국 역을 맡았다. ⓒ 쇼박스


1987년 영화 <연산일기>가 스크린 데뷔(이경영 스스로는 임권택 감독의 1989년 영화 〈아다다>를 정식 데뷔라 말한다 - 기자 주)이고, TV 드라마 경력까지 치면 KBS 공채 10기로 1983년이 그의 프로 연기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출연작? 드라마를 제외하고 영화만 쳐도 약 110여 편이다. 여기에 드라마를 합하면 거의 140편 정도다. 연기 경력을 30년이라 잡으면 1년에 네 편 이상은 꼭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의 다작인생은 언제부터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2002년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 이후 9년 간 공백기를 가진 뒤로 알고 있다. 사실과 다르다. 1990년만 해도 <부활의 노래>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영심이> 등 세 편 이상을 했다. 물론 이때는 주로 주연이었고, 지금은 조연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

비중이 줄었기에 다작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균질적인 연기력과 이미지 소모를 생각하면 다작이 능사는 아니다. 스스로 "생계형 배우"라며 이를 별로 염두에 두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누구보다 자기 관리가 뛰어나지 않으면 근 5년 간 1년에 네 편 이상씩 출연하긴 어렵다.

그래서 생긴 말이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새가 이경영', '이경영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 '충무로의 노예' 등이다. 영화계에선 농담처럼 쓰이는 말이고 이경영 본인 또한 알고 있다. 요즘 기자들 사이에선 '자세히 보면 <어벤져스> 시리즈에 이경영이 출연한다'는 말도 돈다. 물론 이것 역시 농담이다. 그만큼 허를 찌르는 곳에서 그가 등장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충무로는 왜 이경영을 이토록 찾을까. 여기선 몇몇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연기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대중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인정받자"는 주의인 이경영은 현장 스태프나 동료 배우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와 친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경기도 일산 장항동에 위치한 종O족발을 알 것이다. 매일 그가 살다시피 하는 단골집인데 이곳에서 그의 출연작 대부분이 결정되기도 하고, 그가 다리가 돼 배우와 작품을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이른바 '이경영 사랑방'인 셈.

그와 같이 작업을 했던 한 관계자는 "이경영 선배는 출연료가 얼마라도 상관치 않고 일단 마음을 보시는 분"이라며 "그 분과 족발을 먹지 않고선 영화를 논할 수 없다"고 반농담조로 그에 대해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한번 일한 스태프들이 또 찾는 분"이라며 "작품의 예산에 맞게 그 분께 미안한 제안을 드려도 거의 외면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필수불가결 배우 vs. 부정적 여론

이 결정이 모두 그에게 득이 되는 건 아니다. 한 인터뷰에서 이경영은 "초심을 흐릴까봐 후회할 때도 있다"며 "(그럼에도) 내가 힘들 때 인정해주고 불러줬으니 거부할 수 없다"고 말
했다. 그가 겪은 부침이 곧 그가 연기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이경영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에 더 알고 싶다는 그에게 분기점이 된 작품인 <남영동 1985> 당시 인터뷰를 참고하자. (관련 기사: 이제 이경영에게 기지개를 허하라 http://bit.ly/T4ggtH)

보수 정권 하 압력도 알게 모르게 있었고, 단순히 그가 다작만 하는 배우였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작품이었는데 그는 선택했다. 그의 진정성을 본 것인지 <남영동 1985> 뒤풀이에서 많은 영화인들이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다. 당시 기자 역시 현장에 있었다.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이 뿌듯해하며 이경영을 바라보던 눈빛이 기억난다.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그는 요주의 정치범 등을 고문하는 기술자 이두한 역을 맡았다.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그는 요주의 정치범 등을 고문하는 기술자 이두한 역을 맡았다. ⓒ 엣나인필름


이 지점에서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바로 대중정서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으로 형사재판에서 유죄, 민사재판에서 5천만 원 손배 판결을 받은 후 결과적으로 그는 상업 영화계에서 9년 간 활동하지 못했다. 사실 영화 및 방송계에선 그 사이사이 그의 복귀를 타진했다가 번번이 대중의 강한 부정 여론에 막혀왔다. 2004년 SBS <애정만세>는 여론에 밀려 출연자체가 무산됐고, 2009년 MBC <돌아온 일지매>엔 출연분이 삭제되는 일을 겪었다. 영화 쪽에선 <종려나무 숲>이나 <눈부신 날에> 등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긴 했다.

그의 공백을 두고 김수현 작가는 2008년 한 공식석상에서 "문득 이경영이란 배우가 너무 오래 쉬는 것 같다"며 "연기자가 한 실수에 대해 자신들은 도덕군자인 양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 발언으로 난리가 나겠지만 그의 연기력을 인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에 대한 누리꾼들 여론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2012년 그는 한 방송에서 2002년 사건 이후 아들 등 가족과 10년 간 헤어져야 했던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공식적인 그의 영화 복귀작이 된 <남영동 1985> 홍보 과정에서 직접 발벗고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아까운 배우가 너무 오래 떠나있었다'(kyj***)는 류의 감탄 반응도 있었지만 '안 나왔으면 하는 배우 1순위' 등의 부정적 반응도 상당 수였다.

그는 2012년 이후 몇몇 매체와 간헐적으로 인터뷰했다. 최근 드라마 <비밀의 숲>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지만 SNS상에서는 그에 대한 부정 반응이 긍정 반응보다 훨씬 많다. 대부분 과거 사건으로 인한 캐스팅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내용이었고, 그의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다'는 발언이 맞지 않다"고 비판하는 이(danc***)들도 있었다.

이경영 딜레마

 영화 <소수의견>에서 이경영은 당국의 강제 철거 과정에서 용역의 폭행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 역을 맡기도 했다.

영화 <소수의견>에서 이경영은 당국의 강제 철거 과정에서 용역의 폭행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 역을 맡기도 했다. ⓒ 시네마서비스


대중정서와 충무로의 온도 차에도 불구하고 이경영은 오늘도 스크린에 이름을 올린다. <남영동 1985>와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약속> 등의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든 <제보자> <암살> <내부자들> <군함도> 등의 상업영화에서든 이경영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충무로는 의미적으로 기능적으로 이경영처럼 편차 없이 기량을 발휘할 기성배우, 게다가 영화의 예산과 외적 환경까지 배려할 배우는 흔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시간이 좀 지났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작품 출연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은 곱지만은 않다. 이것이 다작 배우 이경영이 처한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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