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함도> 관련 이미지.

영화 <군함도>의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2년 사이 134명의 사망자 발생, 해저 1000m의 깊이와 평균 섭씨 45도의 환경.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 사이에서 '지옥도'라 불린 군함도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약 5년간, 그러니까 해방을 앞두고 약 천 명에 가까운 조선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강제징용을 왔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혹은 보상이 없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류승완 감독은 기괴한 기운을 풍기던 군함도의 사진 한 장에 영화화를 결심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군함도>다. 오는 26일 개봉을 앞두고 19일 언론에 선 공개된 영화는 일단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판타지였다. 감독의 바람내지는 일반 시민들과 피해자들이 한 번쯤은 꿈꿔봤을 대탈주극으로써 말이다.

치밀한 묘사와 캐릭터  

축구경기장 2개를 붙인 정도의 크기로 군함도는 거센 파도와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닫힌 공간이다. 시사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을 탈출시키고 싶었다"던 류승완 감독 말에서 알 수 있듯 <군함도>를 추동하는 가장 큰 에너지는 그곳을 빠져나가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간 대립이다. 이 힘의 균형이 뒤바뀌고, 때로는 팽팽하게 맞서면서 극의 갈등 역시 커지거나 잦아드는 식이다.

사실 개봉 전까지 <군함도>를 두고 국수주의, 쉽게 말해 '국뽕영화'가 짙게 깔려 있을 거라는 선입견들이 많았다. 감독이 직접 "항일 영화가 아닌 반전영화"라 설명하기도 했지만, 근 3년 내 등장했던 일제강점기 영화에 대한 관성 탓인지 의심의 시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개된 <군함도>가 정말 그런 작품일까. 소재와 설정 때문에 일본군 내지는 간수들과 치열하게 대립하는 이야기가 꽤 나온다. 격한 전투 장면 또한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꽤 담백하게 읽힌다. 원인은 바로 영화 속에 등장한 다양한 인간 군상과 치밀한 묘사에 있다.

 영화 <군함도> 관련 이미지.

영화 <군함도> 속 이강옥(황정민)은 경성 반도호텔 소속 악단의 단장이다. 딸 소희(김수안)는 노래와 춤에 소질이 있는 재기발랄한 캐릭터.ⓒ CJ엔터테인먼트


이야기는 크게 네 인물을 축으로 나아간다. 가장 눈에 띄는 게 밴드 단장으로 일본인과 적극 교류하며 꽤 호의호식하는 이강옥(황정민)과 그의 딸 소희(김수안)이다. 경찰에 적당히 뇌물도 바치며 단원들과 함께 어둠의 시대 속에서 나름 높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한다. 종로를 주름잡던 건달 최칠성(소지섭)과 전사를 알 수 없으나 억울하게 군함도로 끌려와 위안부가 되고만 오말년(이정현)은 그 시대를 살며 숱한 고초를 겪었을 민초를 상징한다. 여기에 독립운동 주요 간부를 군함도에서 빼오라는 명령을 받고 잠입한 박무영(송중기)은 영화 중반부터 군함도 내 질서를 흔드는 인물로 기능한다.

이 인물들은 저마다 군함도에 들어온 사연과 처한 상황이 다르다. 아니 다르다고 믿는다. 적절히 상황에 따라 주류에 편승해 온 이강옥은 군함도 내에서도 자신 만의 영역을 구축해 작은 실리를 챙겨가고, 다른 인물들은 역시 서로를 경계하거나 적당히 협력하며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안타깝지만 누구는 죽고 난 살 수 있어'라는 처세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이들 안에 깊이 각인돼 있다.

그런 인물들이지만 군함도를 빠져 나가야 겠다는 목적은 같다. 재밌는 지점은 강제 노동 중인 조선인들을 더 심하게 억압하고 수탈하는 이가 바로 같은 조선인이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연대하려는 와중에서도 끊임없이 대립하고 방해하는 이들 역시 조선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선과 악의 이분법 구도가 아닌 지극히 살아있는 개인들의 다양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영화 <군함도> 관련 이미지.

영화 <군함도> 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분명한 상징들

"당시 기록을 보면 나쁜 일본인만 있던 것도 아니었고 착한 조선인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이 힌트다. 애초에 비겁한 인간이라 생각하던 인물이 영화 속에서 강한 감동을 주기도 하고, 강인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힘없이 쓰러지기도 한다. 물론 일부 캐릭터는 감정의 고조를 위해 소모적으로 쓰인 면도 보이지만 대체로 조연들까지 캐릭터의 성격이 살아있다는 건 <군함도>의 미덕 중 하나다.

상업영화 특성상 <군함도> 역시 대규모 전투 장면과 강옥의 부성애, 칠성과 말년의 애정선에 공을 들인다. 하지만 영화의 진짜 묘미는 주요 캐릭터 틈에서 살아 숨 쉬던 조연, 단역 캐릭터다. 그런 의미에서 명망 있는 독립운동가 윤학철 역을 소화한 이경영을 유심히 보자. 뛰어난 언변과 지도력으로 군함도 내 조선인들에게 절대적 지지와 존경을 받는 인물이 영화 속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니 말이다.

 영화 <군함도> 관련 이미지.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또한 영화엔 류승완 감독이 작심하고 심어놓은 여러 상징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탈출을 놓고 조선인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장면. 억압에 순응하며 일본군이 추가로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자는 쪽과 진실을 똑바로 보자며 뭐든 해보자는 쪽이 격렬하게 토론하는 가운데 후자 쪽 사람들이 말없이 자신들의 촛불을 든다. 충분히 우리 사회 곳곳에 깃들어 있는 '촛불시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부당한 권력을 유쾌하게 전복시킨 시민들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존경 내지 오마주가 아닐까 한다.

아마 극적인 감정의 몰아침이 덜해서 일부 관객에겐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에 집중하다 보면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분명하다. <군함도>의 정체성은 감정의 과잉을 외치는 항일영화가 아닌 각성하는 개인들을 위한 영화였다. 다만 담백함과 화려함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지 못한 후반부의 몇몇 장면은 옥에 티다. 칠성과 말년의 애정선은 그래서 뜬금없게 다가온다. 이들 캐릭터가 소모적으로 쓰였다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한 줄 평 : 시대에 박제되지 않은 사람들, 그 자체가 <군함도>의 미덕  
평 점 : ★★★☆(3.5/5)

영화 <군함도> 관련 정보
감독 : 류승완
각본 : 류승완, 신경일
출연 :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제작 : 외유내강
공동제작 : 필름케이
제공 및 배급 : CJ엔터테인먼트
크랭크인 : 2016년 6월 17일
크랭크업 : 2016년 12월 20일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132분
개봉 : 2017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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