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포스터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포스터 ⓒ 소니픽쳐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유명세를 치른 많은 작품이 개봉 전부터 여러 가지 구설에 시달리게 되는 것처럼, 이 작품 <스파이더맨: 홈커밍> 역시 그랬다. 지난 두 번의 시리즈가 소니 단독 제작이었던 것과 달리 마블과의 합작을 통해 정식으로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한 스파이더맨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최초로 백인이 아닌 스파이더맨이 탄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끊임없이 나왔고, 동일한 캐릭터로 무려 세 번의 시리즈가 제작되는 유례없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로는 전에 없이 수다스럽고 가벼운 느낌의 분위기와 너무 어린 연령대로 설정된 부분이 또 한 번 관심을 끌었다. 마블의 입장에서는 관객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좋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이 보여주어야 하는 역할과 <어벤져스>의 시각에서 볼 때 스핀오프 격인 스파이더맨 개인의 시리즈의 흥행성이 주는 부담감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스파이더맨 : 홈커밍>은 이 모든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성공적인 작품이다. 마블이 이 작품을 얼마나 성의껏 대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02.
이 작품을 독립된 시리즈로 바라볼 것인지, 혹은 <어벤져스>라는 더 거대한 관점에서 하나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바라볼 것인지는 단순한 시각의 차이라 할 것이다. 다만, 이번 <스파이더맨: 홈커밍> 시리즈는 마블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그 가운데서도 어벤져스에 합류시키기 위함이 분명하기에 후자의 편이 더 넓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최근에 개봉한 마블의 캐릭터 시리즈들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것도 후자의 관점에 더욱 힘을 싣는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도 어벤져스의 스토리가 깊게 관여한 모습이었고, 올 10월 개봉 예정인 <토르  라그나로크> 역시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등의 외부 인물들이 함께할 예정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존재했던 원작들의 이야기를 잘 이어내고 있음은 물론, 어벤져스 팀에 합류할 스파이더맨의 미래에 대한 연결고리의 역할도 깔끔하게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비해 가벼운 느낌을 주는 스파이더맨

과거에 비해 가벼운 느낌을 주는 스파이더맨 ⓒ 소니픽쳐스


03.
이전의 시리즈에서 토비 맥과이어(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앤드류 가필드(어메이징 스파이더맨)가 보여줬던 모습과 사뭇 다른 스파이더맨의 이미지에 아쉬움을 느낄 팬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극 중 피터 파커(톰 홀랜드 역)의 나이 자체가 15세로 설정되어 있는 만큼 주인공의 정신연령이 갑자기 어려졌기 때문이다. 이 역시 마블이 스파이더맨의 이미지 변신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미시적으로는 이전에 존재했던 두 배우의 그늘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방법을 연령대를 바꾸는 것으로 선택한 것이며, 거시적으로는 어벤져스 팀이 갖고 있는 심오함과 무게감을 환기시키고 균형을 잡기 위한 인물로 스파이더맨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제기되었던 흑인 배우의 캐스팅은 원작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마블 캐릭터인 블랙 팬서와의 중복되는 이미지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인종과 관련된 문제는 피터 파커의 친구들을 다양한 국적인 인물들로 캐스팅하면서 해결하고, 스파이더맨의 이미지는 연령대를 조절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한 것이 지금의 방식이다. DC와 달리 오락성이 강한 마블의 성격상 현재의 스파이더맨이 보여주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고.

04.
이렇게 단시간에 큰 변화를 시도한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성공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그의 성장 스토리를 매끄럽게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번 작품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영웅의 활약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소년이 영웅으로서의 자각과 한계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 충실하면서도 오락성을 잃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닝 주니어 역)를 만난 뒤에 영웅이 되고 싶어하던 그의 모습은 탈고교급인 그의 천재성과, 파티에서 과시를 위한 착장을 고민하는 모습은 따돌림을 당하는 현실과 결합하여 이후 그가 성장하는 과정의 이야기에 적절한 밑거름이 된다. 입체적인 인물을 표현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원래의 모습과 계기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원작의 토니 파커가 갖고 있던 직업적 성격과 연령대, 성격 자체를 모두 재설정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더욱 중요했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으로서의 자각과 한계를 깨달아가는 파커.

영웅으로서의 자각과 한계를 깨달아가는 파커. ⓒ 소니픽쳐스


05.
앞서 언급한 평범한 소년이 영웅으로서의 자각과 한계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두 장면을 통해 구분되어 표현되고 있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승객들을 혼자의 힘으로 지키지 못했던 장면과 파티장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벌쳐(마이클 키튼 역)에게 협박을 당하던 순간. 이 두 장면은 히어로들의 겉모습에만 빠져 있던 파커에게 히어로로서의 자각을 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데, 전자의 경우가 두려움과 한계에 대한 자각이라면, 후자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가져야 할 의지와 정의에 대한 자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스파이더맨의 이야기에서 이 정도의 무게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빌런인 벌쳐에게 선택을 강요당하는 15세 소년의 모습에서 <다크 나이트>(2008)에서 봤던 중후한 배트맨의 고뇌를 엿본 기분마저 들었다.

06.
만약 이 작품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화만 시도했다면 그 의미 역시 퇴색하고 말았을 것이다. 새롭게 탄생한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은 겉모습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핵심에 위치하고 있는 부분들은 계속해서 이어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시리즈가 몇 번이나 모습을 바꾸면서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이 작품의 정수와 같은 슬로건은 파커의 삼촌이 남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각각의 시리즈에서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말이다. 처음으로 벤 삼촌의 죽음이 드러나지 않은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역할을 토니 스타크가 대신하는 모습이다. 혼자의 힘으로 유람선을 구하지 못한 패배감과 실망감에 무력해진 파커에게 건네는 한 마디가 과거 벤 삼촌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트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더 이상 그 수트를 가져선 안 돼.'

 벤 삼촌을 대신해 파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토니 스타크

벤 삼촌을 대신해 파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토니 스타크 ⓒ 소니픽쳐스


07.
이번 작품에서는 빌런의 이야기도 빠뜨릴 수가 없을 것 같다. 확실히 마이클 키튼이 보여주는 연기는 배역에 관계없이 사연을 만들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 이전에 아드리안 툼즈(마이클 키튼 역)라는 캐릭터는 하나의 인물로 완벽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가 왜 세상을 등지고 악역을 자처할 수 없었는지는 물론, 모든 빌런이 마음 속 한 곳에 갖고 있을 불안감에 대한 표현까지 모두 말이다. 그 동안 마블이 보여준 대부분의 악역들은 정신이 이상하거나 앞뒤 가리지 않는 악함으로 힘의 우위만을 고민했었지만, 이번 작품의 벌쳐는 자신이 왜 음지에서 활동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로 표현된 것이다. 자신의 악행을 어벤져스에게 들킬까 고민하는 빌런이라니. 또한, 시리즈 최초로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알고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으니, 앞으로 이 시리즈 안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도 또 다른 흥미로 남는다.

08.
기존의 작품을 리부트하는 작업은 관객들의 익숙함을 이용한다는 것과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반대로, 철저한 재해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 익숙함이 독이 되어 관객들에게 지루함으로 남게 될 여지도 있다. <판타스틱 4>나 최근 <미이라>의 리부트가 그랬다. 특히 <미이라>의 경우에는 8년이나 지난 지금 과거의 수익보다도 낮은 결과물을 받아 들었으니, 손익분기점은 넘겼을지 모르나 유니버셜 픽쳐스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리부트는 설명한대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앞으로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는 알 수 없지만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작품에 담겨 있다. 물론 10대가 되어버린 스파이더맨이 과거의 거미줄 키스와 같은 짜릿한 장면을 보여주기는 더 이상 어렵겠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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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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