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과 김주하(오른쪽) 선수

김혜선과 김주하(오른쪽) 선수 ⓒ 박진철


전화위복. 최근 여자배구에서 뜨거운 화제가 된 김혜선 선수 이야기다.

김혜선(27세·163cm)은 지난 6월 30일 발표된 2017~2018시즌 구단별 선수 등록에서 흥국생명의 자유신분 선수로 공시됐다.

한국배구연맹(KOVO) 규정에 따르면, 자유신분 선수는 V리그 정규리그 4라운드 직전까지 모든 구단과 자유롭게 입단 계약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구단에서 함께 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상 방출인 셈이다. 한편, 은퇴 선수도 접수와 동시에 자유신분 선수로 전환된다.

김혜선은 밖으로 나오자 '백조'로 돌변했다. 2개 프로 구단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왔다. 김혜선이 가고 싶은 팀을 선택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혜선은 애초부터 선수 생활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러나 소속 팀의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흥국생명은 지난 5월부터 FA 이적-보상 선수-트레이드로 이어진 여자배구 대이동 국면에서 김해란(34세·전 KGC인삼공사)과 남지연(35세·전 IBK기업은행)을 영입했다. 김해란과 남지연은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도 동반 출전한 국가대표 리베로다.

흥국생명은 리베로만 김해란, 남지연, 한지현, 김혜선, 도수빈 등 5명이 됐다. 김혜선과 한지현은 2012~2013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5년 동안 흥국생명의 주전 리베로를 번갈아 맡아 왔다.

그러나 김해란·남지연 영입으로 2017~2018시즌은 사실상 경기 출전조차 어렵게 됐다. 흥국생명 입장에서도 리베로만 5명을 데리고 한 시즌을 치른다는 건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다. 누군가는 팀 전력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 대상으로 김혜선을 낙점했다.

이정철 "김혜선·노란·채선아, 3인 리베로 필요"

흥국생명은 처음에는 김혜선에게 임의탈퇴를 제시했다. 그러나 김혜선은 은퇴 선수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야 자유신분 선수가 돼 다른 팀으로 가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고심 끝에 자유신분 선수로 공시를 했다. 그러자 리베로 보강이 급한 팀들이 영입을 타진했다. 김혜선의 선택은 최근 IBK기업은행으로 기울었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김혜선 영입을 추진하고 있고 조만간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김혜선에게도 의사 타진을 했는데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은 현재 리베로 보강이 절실한 상황이다. 리베로 포지션에 노란(24세·167cm)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프트인 채선아(26세·174cm)를 2017~2018시즌에는 리베로로 포지션 변경을 하기로 했다.

이 감독은 "채선아는 올 시즌 리베로로 고정시킬 생각"이라며 "지금 리베로로 완전히 전환해서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혜선을 영입하더라도 채선아는 리베로로 고정한다"며 "안정적으로 시즌을 치르기 위해서는 리베로가 3명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란과 채선아가 한 시즌 전체를 주전 리베로로 활약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V리그는 6개월의 장기 레이스다. 리베로 풀 주전 경험이 있는 김혜선을 영입해 3인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게 이 감독의 복안이다. 김혜선은 2012~2013시즌과 2014~2015시즌에 흥국생명의 주전 리베로로 활약한 바 있다.

한편, 지난 4일 IBK기업은행은 세터 김하경(22세·174cm)과 레프트 백미은(21세·180cm)을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다. 김하경과 백미은은 현재 실업 팀인 대구시청으로 갔다.

이 감독은 "김하경과 백미은을 임의탈퇴 처리한 것은 나중에 IBK기업은행으로 다시 데려올 여지를 열어두기 위해서였다"며 "그 전에 다른 프로 팀에서 영입 의사가 있고 본인이 원한다면, 즉시 임의탈퇴를 풀어주고 보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차상현 감독, '임의탈퇴 남발' 끝내나

GS칼텍스는 올 시즌 임의탈퇴 선수가 없다. 정지윤, 최유정, 최소연을 모두 자유신분 선수로 풀어줬다. 센터 최유정(26세·185cm)은 현재 실업 팀인 포항시청으로 갔다. 라이트 최소연(21세·182cm)은 실업 팀을 알아보는 중이다. 노장 세터 정지윤(38세·178cm)은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임의탈퇴 족쇄를 남발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숙자, 양유나(이상 2014년), 장보라, 금혜인, 정서연(이상 2015년), 김지수, 안혜리(이상 2016년) 등 많은 선수를 임의탈퇴로 공시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부임한 차상현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다른 프로 구단에서 내일 영입해 간다고 해도 그것까지 다 허락해 줬다"며 "설사 다른 팀의 전력이 상승되더라도 선수의 입장을 우선 고려했다"고 말했다.

KGC인삼공사도 센터 이지수(21세·185cm)와 레프트 박소영(21세·178cm)을 임의탈퇴로 공시했다. 반면, 리베로인 손아영(23세·170cm)과 서선미(20세·163cm)는 자유신분 선수로 공시했다.

서남원 감독은 "동기생인 이지수와 박소영이 지난 시즌 중간에 몸도 아프고 힘들다며 팀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둘 다 아직 실업팀으로 가지 않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김주하, '무상 트레이드' 거절... 이미애, 대구시청행

현대건설은 레프트 김주하(26세·174cm)를 임의탈퇴로, 레프트 이예림(20세·175cm)은 자유신분 선수로 공시했다.

현대건설은 김주하를 A구단에게 '무상 트레이드'로 이적시켜 주겠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팀으로부터 선수나 현금을 받지 않고 그냥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다.

실제 A구단이 영입을 결정하고 김주하에게 의사 타진을 했다. 그러나 김주하가 가족과 상의 끝에 실업 팀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무산됐다. 자유신분인 이예림은 대구시청으로 갔다.

현대건설은 세터가 이다영 한 명밖에 없고, 리베로도 김연견과 박혜미 2명뿐이다. 두 포지션의 보강이 시급한 현대건설은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서 채우겠다는 생각이다. 올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 나올 유망주들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한국도로공사는 레프트 겸 리베로 이미애(20세·173cm)를 임의탈퇴로 공시했다. 반면, 세터 이경민(21세·178cm)과 리베로 차소정(20세·169cm)은 자유신분 선수로 공시했다.

김종민 감독은 "이미애는 본인이 힘들다며 팀을 떠나 임의탈퇴로 공시했다"면서 "현재 대구시청으로 간 상태"라고 말했다. 이경민은 다른 프로 구단에서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국생명은 임의탈퇴는 없고, 김혜선과 김재영을 자유신분 선수로 공시했다.

이숙자 해설위원, 은퇴식까지 했는데 3년째 '임의탈퇴'

이숙자 KBSN스포츠 해설위원(38세). '임의탈퇴'라는 제도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세터였던 이숙자 해설위원은 지난 2014년 6월 선수 생활을 그만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소속 팀이었던 GS칼텍스는 이 위원을 임의탈퇴로 공시했다. 그러나 GS칼텍스 구단은 2015년 1월 이숙자 해설위원에게 V리그 코트에서 화려하게 은퇴식을 열어주었다.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 없이 은퇴한 선수지만, 현재 이숙자 해설위원의 한국배구연맹(KOVO) 신분은 '임의탈퇴 선수'다.

이숙자 해설위원은 5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GS칼텍스에게 이제는 임의탈퇴를 풀어줄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얘기를 하는데, 왜 안 풀어주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구단에서 은퇴식까지 해줬고 이제는 선수 생활을 하라고 해도 못할 텐데, 종종 얘기를 해도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이나 돼야 풀어줄려고 그러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아마도 한유미, 김세영, 장소연 등 노장 선수들이 은퇴 후 복귀해서 다른 팀에서 맹활약한 사례가 있어서 그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임의탈퇴는 한 번 공시하면 소속 구단이 해지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다른 구단으로 갈 수 없고, 프로배구 선수로 뛸 수도 없다. 선수 신분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많은 제도이자, 노예 규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임의탈퇴 규정의 취지는 소속 구단은 계속해서 계약을 유지하고자 하나, 선수가 이를 거부하고 팀을 자의로 이탈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제도다. 또한, 은퇴한다고 얘기해 놓고 은퇴 공시로 자유신분이 되면 다른 팀과 계약하는 등 제도를 악용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단이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구단이 해당 선수가 팀에 필요없다고 판단해 사실상 방출하는 경우에는 규정상 자유신분 선수로 공시해서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팀의 전력 상승을 우려해 임의탈퇴로 묶어두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한, 감독·선수와 불화, 연봉 협상 실패 등으로 괘씸죄가 적용돼 임의탈퇴 처리를 한 경우도 있다.

이는 오로지 구단의 이익을 위해 선수 생명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임의탈퇴 규정을 하루 속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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