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리>의 한장면

<쇠파리>의 한장면ⓒ (주)영화사 그램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원 해욱(김진우 분)은 연인 수경(이연두 분)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 만식(정인기 분)과 누나 해선(김희정 분)은 넉넉잖은 살림 탓에 해욱의 신혼살림에 뭐 하나 보태줄 수 없는 게 못내 미안하다. 그러던 중 해욱의 아버지는 '돈 버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이웃의 말에 솔깃해한 회사의 투자설명회에 따라간다. '서우SPR'이란 이름의 이 회사는 목돈을 투자하면 매달 일정한 배당금을 지급하며 많은 수익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은다. 없는 재산을 모아 투자에 참여한 해욱의 아버지와 누나는 쌓여가는 배당금을 보며 행복한 꿈에 부풀지만, 갑자기 배당금 입금이 끊기고 회사 임원들까지 잠적하면서 자신들이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총 피해액 5조 원, 그리고 피해자 7만여 명. 영화 <쇠파리>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불법 금융 다단계 사기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각자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소시민들이 이들의 순진무구한 꿈과 희망을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는 과정을 날카롭게 바라본다. 해욱의 눈을 통해 전개되는 서사는 자본 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부각하고, 나아가 이에 맞서는 약자의 무력함을 조명하며 폐부를 찌른다.

 <쇠파리>의 한장면

<쇠파리>의 한장면ⓒ (주)영화사 그램


<쇠파리>는 소재와 설정 면에서 많은 부분 앞서 개봉한 <마스터>를 연상시킨다. 커다란 강당에 투자자들을 모아 현혹하는 투자설명회 장면, 서우SPR의 주상두 회장과 두 남녀로 구성된 악역 구도와 이들이 돈을 빼돌려 해외로 도피하는 전개는 특히 유사하다. 다만 블록버스터로서 스펙터클을 중심에 둔 <마스터>와 달리 <쇠파리>는 약자이자 피해자인 주인공의 힘겨운 사투에 방점을 찍는다. 치밀한 전략으로 기획되는 범죄와 이에 맞서는 고도의 두뇌 싸움을 그리는 대신 해욱이 겪는 시련과 고통을 아릿하게 그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영화 전반부, 직접적 사기 피해자로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만식과 해선의 에피소드가 눈에 걸리는 건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만식이 전세금까지 빼내어 마련한 돈을 하루아침에 잃고, 자신의 소개로 투자에 참여한 이들의 원망까지 받는 장면들은 특히 무게감이 상당하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이성을 잃은 채 돈을 되찾겠다며 거리를 방황하는 해선과 경찰서 앞에서 분신을 시도하는 만식. 이들의 심리는 단순히 '돈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넘어 '내가 망쳤다'는 자괴감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다단계' 시스템이 지닌 자본 논리의 무책임과 그 폐해를 의미심장하게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쇠파리>의 한장면

<쇠파리>의 한장면ⓒ (주)영화사 그램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잇따라 전시하던 영화가 중반 이후 사건 해결을 위한 해선의 여정으로 방향을 트는 지점은 다소 아쉽다. 주 회장 일당이 검찰과 경찰 윗선에 뒷돈을 건네 수사를 지연시키는 전개, 해선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이들의 함정들은 서사에 좀처럼 녹아들지 못한 채 작위적으로 남는다. 특히 해선의 방해꾼 또는 제한적 조력자로만 기능하는 경찰은 영화 전반의 사회 고발적 시선을 감안해도 설득력이 빈약하다. 여기에 해선이 또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해 조직한 일종의 자경단이 이렇다 할 의미 없이 소모되는 점은 상업영화로서 <쇠파리>의 패착으로도 비친다. 5월 중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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