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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간식을 사러 빵가게에 갔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직업이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전업주부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다. 내가 빵가게 자동문을 넘어설 때마다 아주머니께서는 왜 젊은 사람이 집에만 있냐고 걱정 반, 오지랖 반이다. 같은 말도 반복해서 듣다보니 나 또한 살짝 떳떳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젊은 사람이 전업주부이면 왜 떳떳지 못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건가. 그 아주머니의 눈에는 젊은 노동력을 썩히고 있는 내가 조금은 한심스럽게, 조금은 걱정스럽게 비춰진 듯하다.

전업주부로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건 집에서 '논다'는 편견이자 오해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전업주부는 스스로에게, 남편에게, 부모님에게, 이웃에게 '논다'는 오해를 받고 떳떳지 못하게 살아가야하는 걸까?

전업주부가 담당하는 장보기, 설거지, 빨래, 청소, 요리, 육아, 공과금 납부 등 각종 뒤치닥 거리는 노동에서 제외되는 행위란 말인가?

"비고용 상태에서도 시간과 권한을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게 쓰도록 공정하게 분배하라는 투쟁은 어쩔 수 없이 무력화되었다. 급여를 주는 직장에서 벗어나 일을 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된다. 인간의 자율적 행위는 고용수준을 위협하고, 사회적 일탈을 일으키며, 국민총생산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그런 행위는 부적절하게 불리는 '노동'일 뿐이다. 노동은 더 이상 인간의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적 투자와 어울리지 않게 결합된 기괴한 요소를 의한다. 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무직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동네일에 관여하는 활동적인 여성은 '노동'하는 여성과 차별된다."
-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전업주부가 '논다'는 오해를 받게 만들고, 가사노동이 '노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한마디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길들여진 우리의 시야 탓일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지적처럼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모든 활동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왜곡안경 말이다.

나를 걱정하시는 빵집 아주머니 또한 그러한 맥락일 것이다. 맞벌이하면서도 먹고살기 힘든 퍽퍽한 세상살이에 돈 나오지 않는 가사노동에만 전념하고 있는 전업주부인 나의 모습은 체제에 올바르지 못한 태도이다.

하지만 나에겐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아이양육,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될 수 있는 한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아이'만이 갖을수 있는 정서적 유대관계의 형성은 물론이고, 아이를 잉태시킨 '엄마-아빠'를 알아가기도 전에 어린이집으로, 할머니에게로 떨어져서 자라야 하는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워킹맘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나는 '돈'이나 '커리어'로는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아이와의 시간'에 더 가치를 두는 편일 뿐이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있어 '희생'이 아닌 '축복'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100일 밖에 안된 신생아, 혹은 돌쟁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여성도 일을 하라고 장려하는 현 체제의 양육정책도 못마땅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최소 30개월-보통은 기저귀를 떼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월령-은 회사 눈치보지 않고도 집에서 마음편히 양육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이다.

주변 전업주부들을 관찰해 보면, 그들 스스로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돈이나 벌걸, 집에서 뭐하는 거람' 하고 푸념하는 엄마들, 아이와 남편 외에 본인 스스로에게는 관심을 갖지 못하는 엄마들, 가사노동 외에 여백의 시간을 동네 수다쟁이 아줌마들과의 뒷담화, 혹은 쇼핑으로만 가득 채우는 아줌마들.

모두 자존감 없는 전업 아줌마들의 유형이다. 그들의 행위엔 '나'가 없다. 여분의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 보람있게 보내지 못하고 '나'는 텅 비워둔 채 남편과 아이를 위한 희생이라 여기며, 남편의 승진이나 아이의 성적이 자신의 노고를 증명해 줄 거라 착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당당한 전업주부란 남편,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가사노동 자체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열심히 가사노동을 하면된다. 영양가 있고 맛있는 요리를 가족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연구하고, 핸드메이드 소품을 만들거나 깨끗하고 안락한 집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스스로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 한다.

나 또한 가사일만으로는 보람을 느끼지 못한 채 전업주부생활이 길어지면서 사회인으로서는 퇴화되어가는 스스로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숙고의 시간을 거쳐 뒤늦게 찾아낸 나의 생활이자 꿈이 된 글쓰기! 별다른 글재주가 없는 내가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게 된건 일종의 만용(蠻勇)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보람을 찾게 된 이상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소박한 바람이라면 만용의 추동력이 되어주는 '지혜를 배우고 사유하는 즐거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노년이 되어서도 유지하고 싶을 따름이다. 여백의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전업주부인 나는 워킹맘 못지 않게 바쁘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작가가 되고싶은 작가인 나. 나는 나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네이버블로그 <느리게 걷는 여자>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전업주부, #이반 일리치, #누가나를쓸모없게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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