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팔리아치'의 임세경(오른쪽, 넷다 역)과 칼 태너(카니오 역). 무용 코러스의 가면은 팔리아치의 내면을 상징한다.

국립오페라단 '팔리아치'의 임세경(오른쪽, 넷다 역)과 칼 태너(카니오 역). 무용 코러스의 가면은 팔리아치의 내면을 상징한다. ⓒ 문성식


국립오페라단(단장 김학민)의 <팔리아치 & 외투>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월 6일부터 9일까지 공연됐다.

이번 공연은 세계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는 소프라노 임세경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팔리아치(팔리아초의 복수, 이태리어로 유랑배우를 의미)' 시작, 박진감 넘치는 부점 리듬의 장중한 서곡이 기대감을 준다. 어두운 극장 앞, 토니오 역 바리톤 박정민이 중후하고도 안정된 톤으로 '연극은 허구가 아닌 실제 삶을 이야기한다!'라는 긴 노래로 관객을 극으로 인도한다. 이윽고 화려한 DIN DON 네온사인이 켜지고, 배우를 기다리는 관객의 경쾌한 합창(그란데오페라단, CBS소년소녀합창단), 그리고 유랑극단장 카니오와 부인 넷다, 그녀의 애인 실비오가 등장한다.

1막 2장 화려한 여주인공 대기실이다. 넷다(소프라노 임세경)가 'Oh che volo daugelli(저 하늘 높이)'로 새처럼 훨훨 날고픈 마음을 표현하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토니오가 '내 몸이 기형이고 굽은 건 알아(so ben che difforme)"라며 넷다에의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녀는 비웃는다. 3장 실비오와의 아름다운 듀엣이 이어지고, '내일 아침에 (함께)떠날 거지'라고 실비오가 노래한다.

임세경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음과 풍성한 성량 외에도, 작은 제스처 하나로도 매혹적인 뉘앙스를 표현하며 과연 세계적인 오페라가수 다운 면모를 보였다. 실비오 역 바리톤 서동희 역시 훤칠한 외모와 바리톤 음색에 서정성까지 갖춰 임세경과의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4장, 실비오가 도망가고, 그를 놓친 카니오(칼 태너)가 부르는 '의상을 입어라(Vesti la giubba)'는 고단한 광대의 삶에서 실제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공감을 주며 브라보를 받았다.

2막 1장은 코메디아 델라르테(16-18세기 이탈리아 즉흥 희극) 형식의 극중극이 재밌는데, 가벼운 바로크 음악 선율과 춤, 제스처가 마치 주인공 카니오를 조롱하는 듯하다. 극 안에서도 아내가 바람을 피우자, 카니오는 '아니오, 나는 팔리아초가 아니오(No, pagliaccio non son)"라며 이성을 잃고 결국 넷다와 실비오를 죽인다. '희극은 끝났어(La commedia finite)"라는 그의 비장한 외마디가 음악과 함께 장렬하다.

 국립오페라단의 푸치니 '외투'중 최웅조(오른쪽, 미켈레 역)와 임세경(조르젯타 역). 음산한 배와 밧줄이 정처없는 항로, 족쇄같은 인생의 굴레를 상징한다.

국립오페라단의 푸치니 '외투'중 최웅조(오른쪽, 미켈레 역)와 임세경(조르젯타 역). 음산한 배와 밧줄이 정처없는 항로, 족쇄같은 인생의 굴레를 상징한다. ⓒ 문성식


후반부는 푸치니 '외투'다. 푸치니의 대부분 오페라가 베리스모 시기에 작곡되었지만 낭만적인 선율성 때문에, 오직 '외투' 만이 베리스모 오페라로 분류된다. '외투'는 파리의 센 강변이 배경이다. 4도, 5도의 푸치니 특유 이국적인 느낌에 3박자의 피치카토와 슬러가 출렁이는 물결을 표현하는데, 이것이 곡 전반을 지배한다.

임세경과 칼 태너는 앞 '팔리아치'의 화려했던 모습에서 상반되는 하층민의 역에도 금세 몰입되었다. 배의 물건을 옮기는 분주한 하역장, 미켈레는 하루 일을 끝내고 조르젯타에게 입맞춤하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고향 파리시절의 도시 삶을 꿈꾸는 젊은 아내 조르젯타는 인부들과 술과 춤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중 루이지와의 춤이 심상찮다.

하역장 뒤편 모습으로 무대가 회전되고, 조르젯타의 내면이 꽤 긴 시간동안 표현된다. 집시여자 프루골라(메조소프라노 백재은)가 '이 자루 안에 신기한 물건들이(Se tu sapessi gli oggetti strani)'라며 건네는 모피, 보석 등 화려한 물건에 조르젯타는 설렌다. 백재은은 가사에 따라 부드럽고도 얇은 발성을 오가며 배역을 멋지게 선보였다. 이어 밀회의 불안한 감정을 '오 루이지!루이지(O Luigi!Luigi!)'에서 음산한 피치카토와 불협화음, 조르젯타의 흐느낌과 루이지의 강렬한 고음의 열창이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베이스바리톤 최웅조는 증오와 결의에 찬 미켈레 역을 훌륭히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안 들려! 조용하군!(Nulla! Silenzio)!'는 저음 붓점 반주와 차가운 금관음색 속에 베이스바리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아내의 밀애장면을 발각하려는 긴장감과 고뇌, 분노를 최웅조는 느린 호흡으로 죄여오며 잘 표현했다. 미켈레는 그가 무심코 붙인 담뱃불을 연인의 신호로 알고 온 루이지를 밧줄로 죽여 외투로 덮는다. 1년 전, 이들 부부의 아들이 살아있을 때 온기를 주었던 그 외투다. 외투를 펼쳐 루이지의 죽음을 알게 된 조르젯타는 경악하고, 미켈레는 그녀를 갑판 안으로 밀어넣으며 장렬한 음악과 함께 극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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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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