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팝엔터테인먼트


북극 접경의 작은 마을에 사는 로만(데인 드한 분)과 루시(타니아나 마슬리 분)는 연인 관계다. 각각 시체 이송 일과 택시기사로 생활하는 두 사람은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며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시가 남쪽 도시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질 위기를 맞는다. 애써 태연한 척하던 로만은 2주 후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루시에게 이별을 고한 뒤 술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는 함께 떠나 남쪽 도시에서 살자는 루시의 제안도 거절한 채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 신세까지 진다. 로만은 결국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루시와 함께 마을을 떠나기로 하고, 두 사람은 스노모빌을 타고 머나먼 눈길을 헤치며 남쪽으로 향한다.

영화 <투 러버스 앤 베어>는 세상의 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두 주인공이 사는 곳이 인적 드문 극지방의 어느 마을이란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에겐 각각 서로 닮았지만 다른 트라우마가 있다. 아버지에 대한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까지도 두 사람을 괴롭힌다. 루시가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것도, 로만이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영화는 내내 서로를 보듬는 두 연인의 모습을 담아내며 '끝자락'에서 '중심'을 향하는 이들의 여정을 세심한 시선으로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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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각자 '아버지'란 공통분모 위에 켜켜이 쌓인 두 주인공의 상처는 이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치명적이다. 죄책감이기도 하고 피해의식이기도 한 이들의 트라우마는 시시때때로 찾아와 두 사람을 괴롭히고 고독 속에 파고들어 숨통을 옥죈다. 과거 남쪽 도시에 살던 로만이 아버지에 얽힌 기억에서 도망쳐 북극 마을에 정착한 건 그래서다. 어린 시절부터 마을에서 자라온 루시의 경우는 반대다. 그는 마을에서 겪는 일상 곳곳에서 이젠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다. 같은 종류의 상처를 지닌 두 남녀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지만, 그들이 가야 하는 길은 확연히 다른 셈이다.

영화 중반 이후, 결국 의기투합한 로만과 루시가 스노모빌을 타고 남쪽을 향해 달리는 전개가 못내 불안한 건 그래서다. 이들은 길도 없이 펼쳐진 광대한 설원 위에 두 개의 점이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다른 누구도 없는 곳에서 오직 서로에게만 의지한 채 이어지는 두 사람의 여행은 퍽 즐거워 보이지만, 영화는 이들 앞에 어떠한 희망의 단서도 놓아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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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눈보라를 피해 버려진 군부대 시설에 들어간 뒤 겪는 에피소드들은 이들의 내면을 의미심장하게 조명한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족히 30년은 되었을 그곳에는 아직도 조명이 켜지고, 통조림 캔이 남아있다. 루시는 이곳에서도 아버지의 악몽에 시달린다. 로만은 공포에 떠는 루시를 두고 "내가 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를 죽이겠다"며 분연히 일어선다. 이 순간 전장에 나서는 군인처럼 결연한 그의 표정에서는 처연하고도 비참한 무력감이 동시에 엿보인다.

그렇게 <투 러버스 앤 베어>는 기억의 지리멸렬한 속성을 상기시키며 폐부 깊숙한 곳을 아릿하게 찌른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물리적으로 아무리 멀어진다 해도, 수년 혹은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다 해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도망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머릿속 문제를 태워버려야 한다." 극 중 로만 앞에 나타난 북극곰의 이 말은 기억을 대하는 영화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침내 '머릿속 문제를 태워버리기 위해' 엔딩 시퀀스에 이르러 영화가 선택한 여정의 종착지는 두 주인공에게 끝내 주어진 안식으로써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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