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S.E.S.가 16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다시 뭉친 바다, 유진, 슈는 2016년 12월 30일~31일 양일간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팬들을 만나 추억을 공유했다. 이날 콘서트에서 S.E.S.는 1990년대 활동 당시의 히트곡부터 새 앨범에 담긴 노래까지 다양한 곡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저는 그렇게,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들이 아이돌에 대해 무식에 가까운 편견을 쏟아내던 시기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S.E.S.에 열광했던, 이른바 S.E.S. 덕후였습니다. ⓒ SM엔터테인먼트


한국에 본격적으로 아이돌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1990년대, SM기획(현 SM엔터테인먼트)이 H.O.T.와 S.E.S.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부터입니다. 철저한 기획 아래 만들어진 아티스트들은 대중문화 시장을 정확히 저격했고, 이들이 음반을 낼 때마다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음반은 물론, 관련된 다른 상품까지 함께 소비하던 팬들의 모습이 당시 '신(新)풍속도'로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죠.

당시 아이돌에 대한 보도나 음악평론가들의 태도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한창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콘서트 티켓을 구하러 밖에서 밤을 지샌다', '아이돌의 염색이나 장신구를 아이들이 따라 할 우려가 있다'... 지금 시각으로 그때 기사들을 보면 상당히 촌스럽습니다.

저는 그렇게,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들이 아이돌에 대해 무식에 가까운 편견을 쏟아내던 시기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S.E.S.에 열광했던, 이른바 S.E.S. 덕후였습니다. '토토가 세대'로 불리는 아이돌 덕질 '1세대'죠.

그리고 세월은 흘러, 저는 이제 30대 직장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토록 우려하던 어른이 된 것 같진 않군요. 저는 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공부는 생존, 덕질은 삶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 어른들 말은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물론 공부, 중요하죠. 저도열심히 했습니다. 요즘처럼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제 세대 역시, 취업에 대한 고민이 컸습니다. 즉 공부는 생존이었죠. 어른들이 S.E.S. 따라다니는 남학생들 보며 혀를 찬 것도, '신성한' 교과서나 참고서에 연예인 사진이나 붙이고 다니는 걸 한심하게 생각했던 것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공부는 생존이나, 덕질은 삶이다." 그 시절, 교복 입고 공부했던 시간들은 갈 대학이 정해지는 걸로 그값을 치렀습니다. 중요한 시간이었지만 추억거리는 아녔죠. 정말추억으로 남은 건 S.E.S.에 열광하던 시간이었어요.

저는 아직도 처음 S.E.S.를 보았던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세 요정입니다!" 하고 소개하는데... 정말이지 이날 이때까지도 그렇게 폭력적인 요정은 본 적이 없습니다. 뭐랄까요, 유진, 슈, 바다 이렇게 세 멤버가 돌아가며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데, 그 모습은 마치 유진이 미모로 심장을 때린 후, 슈가 귀여움으로 가격한 뒤, 바다가 마이크로 머리를 내리찍는 것 같았죠.

그들이 3집으로 '여성 아티스트사상 최다 음반판매 기록'을 세웠을 때의 대견함, 정규 4집으로 당시 아이돌로는 정말 드물게 평론가들의 극찬 받았을 때(4집수록곡 'be natural'은 후에 소속사 후배 레드벨벳이 리메이크합니다)의 뿌듯함, 그리고 5집의 '달리기'가 해체를 암시하는 노래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의 서러움. S.E.S.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결국 제 10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제 10대는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 영어'가아니라, '덕질'이었습니다.

S.E.S. S.E.S.가 16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다시 뭉친 바다, 유진, 슈는 2016년 12월 30일~31일 양일간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팬들을 만나 추억을 공유했다. 이날 콘서트에서 S.E.S.는 1990년대 활동 당시의 히트곡부터 새 앨범에 담긴 노래까지 다양한 곡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SM엔터테인먼트


덕질, 심지어 '교육적'이다

이에 저는 감히 '아이돌 덕질' 1세대를 대표해 외칩니다. 공부 열심히 하십시오.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분들은 그 분야에 최선을 다하세요. 하지만 '엑소엘'도 하시고, '샤이니월드'도하시고, 'VIP'도 하시고, '소원'도 하십시오. 무자비한 한국 교육과정에서, 이들은 소중한 탈출구이며 사회인이 돼서도 남을 소중한 추억입니다.

여러분이 '엑소엘' 해야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덕질은 스스로의 취향을 이해하고, 같은 기호를 가진 이들과의 연대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님은 여초 팬클럽이 '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여성의 연대'로 작동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죠. 실제로 팬클럽 회원들은 가수의 성추행 피해를 대신 고발하기도 하고, 봉사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건 제 10대 시절엔 없었던 광경입니다. 시간이 흐른 만큼, 팬덤도 진화한 거겠죠.

새신부 바다, 신랑 사랑해! S.E.S. 멤버 바다가 23일 오후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에서 올린 결혼식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진과 슈와 함께 하트를 날리고 있다.

S.E.S. 멤버 바다의 결혼식 ⓒ 이정민


'돈 안 되는 일'에 시간 쓰기, 도리어 '어른들'이 배워야

예전에는 용돈을 쪼개 S.E.S.의 신보를 샀지만 이젠 제 월급으로 이들의 신보를 내려받습니다. 올해 1월 1일, S.E.S.는 20주년 기념 음반을 냈습니다. 12시로 넘어가는 딱 그 시점에 신곡 뮤직비디오를 틀었는데요. 아, 그건 4분 짜리 뮤직비디오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20년을 아련하게 만드는 연보랏빛(기자 주: S.E.S 팬클럽 상징색)색안경이었고, 제 삶에서 S.E.S.를 잊고 복닥거리며 살았던 지난 시간에 대한 위로였습니다. 무엇보다 지난날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20년 전의 내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 자란 제 자신에 대한 고마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돌에 대한 기호가 존중받기 시작한 시기는 한류의 시작과 맞물립니다. 결국, 돈이 되니까 이해해주고 받아들여 주기 시작한 겁니다. 이젠 국사 교과서에도 한류가 언급될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돈이 되고 또 '국위선양'이 되니, 이제야 인정 '해주기' 시작한 것 같아 서글픈 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한 번 외칩니다. 아이돌 덕질은 밥 먹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숟가락 들 힘은 그들에게서 나옵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갖은 열정을 쏟아부을 줄 아는 것. 이건 10대들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교육'이죠. 그러니, 10대 여러분, 앞으로도 당당하게, '열덕질' 하십시오. 저 역시, 앞으로도 변함없이, '친구' (S.E.S.공식 팬클럽)하려고요.

S.E.S. S.E.S.가 16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다시 뭉친 바다, 유진, 슈는 2016년 12월 30일~31일 양일간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팬들을 만나 추억을 공유했다. 이날 콘서트에서 S.E.S.는 1990년대 활동 당시의 히트곡부터 새 앨범에 담긴 노래까지 다양한 곡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아이돌 덕질은 밥 먹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숟가락 들 힘은 그들에게서 나옵니다. ⓒ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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