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폴로지 스틸컷.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길원옥 할머니.

▲ 영화 어폴로지 스틸컷.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길원옥 할머니. ⓒ 영화사 그램


영화 <어폴로지>(Apology)를 보고왔습니다. 그리고 리뷰를 작성하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멍. 그리고 20분이 지났습니다.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려 애써도 쉽지 않습니다. 아마 전 세계의 모든 언어도 이 감정을 설명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언어의 무기력함을 절감하며 어떻게든 언어로 이 감정을 풀어낼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못난 사람입니다. 주인공 중 한 분인 중국의 '차오' 할머니는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해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언어가 부재합니다. 그 때문에 벌써 이 글이 부끄럽습니다. 내가 그들을 '이야기한다'는 그 사실로 인해 필연적으로 이 글의 시작은 반성입니다.

일반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대중에게 재현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피해자'입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 그것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해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그들이 고국에 돌아와 그 오랜 시간 진술을 하지 못한 이유는 비단 일본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가부장적 순결이데올로기, 남성에 의한 젠더폭력, 민족주의, 국가의 행정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폭력, 국제정치 등 우리 사회 속 다양하게 뒤얽힌 폭력에 의한 다층적 층위의 피해자입니다.

두 번째는 '운동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 증언한 이후로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고 다양한 여성단체가 이들의 존재(동시에 폭력의 존재)를 알리고자 고군분투합니다. 1992년 1월부터 시작된 '수요시위'는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운동은 할머니들의 입에서 손으로, 손에서 발로 이어지는 구체적 활동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의 언어 속에서 우리는 용기와 동력을 얻습니다. 이들은 결코 피해자 혹은 증인으로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대의 구심점이자 활발한 운동가입니다.

피해자 그리고 운동가. 이 둘은 퍽 잘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이질적 기대를 받는 대상입니다. 많은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는 방식에 있어서 여전히 피해자에게는 슬픔과 수동성을, 운동가에게는 분노와 능동성을 대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 <어폴로지>에서는 피해자와 운동가 사이 비어있는 할머니들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길원옥 할머니는 언론사 인터뷰를 씩씩하게 마치신 후에 홀로 책상에 엎드려 앉아 거친 숨을 내쉽니다. 그는 남북한 여성들이 만나는 행사가 끝난 이후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도 안나"라고 합니다. 차오 할머니는 길을 걷다 말고 잠깐 쉬는 와중 부축을 하려는 촬영 팀을 향해 "늙으면 죽어야지"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할머니들이 '할머니'가 아닌 피해자, 운동가로서 재현되는 방식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들의 인간됨을 잊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수치심

영화 어폴로지 포스터.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20만명,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9명, 국내 생존자 39명.
우측은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

▲ 영화 어폴로지 포스터.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 20만명,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9명, 국내 생존자 39명. 우측은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 ⓒ 영화사 그램


길원옥 할머니의 출국길, 일본에서의 행보 그리고 수요시위에서도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집니다. 번쩍 번쩍. 영화를 보는 내가 어지러울 지경인데 할머니는 오죽 피곤하셨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번쩍이는 플래시 속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할머니들의 경험 그리고 삶은 어떤 주제로서 재단되고 소비됩니다. 정작 피해자와 운동가 사이 비어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플래시가 터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비어있음을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가장 일상적인 할머니들을 그려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볼 수 있습니다.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자신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한테도 끝내 알리지 못하였습니다. "떠나버릴까 봐" 이야기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자녀들에게 과거를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중국의 차오 할머니의 딸은 할머니가 53세 때 입양한 딸입니다. 어렴풋이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 할머니가 겪은 경험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할머니의 증언집을 통해 비로소 그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할머니가 일본군의 자식을 몰래 들판에서 출산하고 위안소의 본인의 손으로 아기의 목을 졸라 죽인 이야기, 마을에서 학살당한 여성들 이야기 등.

위안부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과 재현 방식, 이야기 속에 그들의 가족들은 많은 경우 생략됩니다. 나 역시 이미 언론에도 나오고 활동도 하시는 할머니들의 가족들이니 당연히 지지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델라 할머니는 "죽어도 말 못할" 사람이 바로 가족이라고 합니다. 할머니의 수치심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 가장 가까운 수치심은 사실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우리는 연대해야 합니다. 비어있는 할머니들의 경험을 인정하고, 그들의 인간됨을 더 적극적으로 목격하여 촘촘하게 연대해야 합니다. 길을 걷다 지친 차오 할머니를 기다리고, 자식들에게 말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옷을 곱게 차려입는 아델라 할머니를 기다리고, 고된 일정에 책상에 엎드려 거친 숨을 내쉬는 길원옥 할머니를 기다리며 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발은 항상 땅에 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선생님이 언젠가 해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은 연구자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저는 지금 그것을 연구자에서 모든 사람으로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땅은 나 혼자 밟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밟을 때때론 의미 있는 장소가 되고 때론 길이 됩니다. 함께 땅을 밟는 한, 우리는 언제나 연대할 수 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어폴로지>.


어폴로지 위안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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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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