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벨은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인물이다.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벨은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인물이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벨(엠마 왓슨 분)은 아버지 모리스(케빈 클라인 분)와 단둘이 살고 있다. 운명적인 사랑과 모험을 꿈꾸는 벨은 마을에서 괴짜 취급을 받고, 뭇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청년 개스톤(루크 에반스 분)의 구애에도 관심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밖 산을 향한 모리스는 길을 헤매다 우연히 폐허가 된 성을 발견하고, 무심코 그곳에 발을 들였다가 장미 한 송이를 꺾은 일로 야수에게 갇히고 만다. 이에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따라 야수의 성에 찾아간 벨은 야수에게 자신이 아버지 대신 성에 갇혀 지내겠노라 자처한다. 졸지에 아버지와 헤어진 벨 앞에 촛대와 시계 등이 나타나 말을 걸고, 그는 야수를 포함한 성안의 모든 이들이 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미녀와 야수>는 1991년 제작된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재현한 작품이다. 모티브만 가져다 각색한 게 아니라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따른 리메이크작인 만큼 이렇다 할 새로운 요소는 없다. 다만 최첨단 CG 기술로 스크린 위에 재탄생한 극 중 세계는 디즈니가 시각화할 수 있는 판타지의 현주소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거대한 성에 사는 야수를 비롯해 살아 움직이는 온갖 존재들은 인간 소녀 벨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굵직굵직한 지점마다 아름답게 흘러 퍼지는 뮤지컬 넘버들은 영화 속 화룡점정이다.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초반 드러나는 벨에 대한 설정들은 페미니즘 담론이 본격화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새삼 시사하는 바다 크다. 전쟁 영웅이자 마을의 리더 격인 개스톤의 청혼을 거절한 채 마을 밖 세상을 꿈꾸는 벨은 '결혼'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귀속성을 보란 듯 거부한다. "여자가 결혼을 못 하면 나이 들어 거지꼴이 된다"거나 "여자아이는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마을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도서관을 드나들고 이웃 여자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벨의 모습은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인상 깊게 각인된다.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서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벨은 아버지(남성)가 딸(여성)을 구원하는 가부장적 구도의 정반대 편에서 아버지 모리스를 찾아 나서고, 부당함과 맞선 끝내 결국 그를 구해낸다. 처음엔 야수에게 잡혀 저주의 성에 갇힌 모리스를, 그다음엔 마을 사람들의 '마녀사냥'에 맞서 그를 구한다. 여기에 콤플렉스와 고독감으로 똘똘 뭉친 야수의 인간미를 끌어내는 것도, '진정한 사랑'을 처음 맛보게 하는 것도 벨이다. 영화 중반 이후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걱정하는 벨의 모습에 그를 성 밖으로 떠나보내는 야수의 결정은 '남성을 교화하는 여성'으로서 벨이 이뤄낸 최고의 수확이다.

 야수를 가르치는 여자. 우리가 알던 기존의 그 벨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야수를 가르치는 여자. 우리가 알던 기존의 그 벨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벨과 모리스, 야수와 대조적으로 개스톤을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군중'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 광기를 대변한다. 벨을 향한 소유욕에 눈먼 개스톤이 모리스를 산속에 버려두고, 겨우 마을로 돌아온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에피소드들은 벨을 대하는 야수의 태도와 교차하며 불편하게 다가온다. 특히 온 마을 사람들이 이러한 개스톤의 선동에 휩쓸려 모리스를 가두고 끝내 야수의 성에 쳐들어가는 클라이맥스 신은 그 정점이다.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라 내면"이라는 영화의 메시지와 맞물려, 인간의 모습을 한 군중은 일견 야수 일행보다 더 큰 저주를 받은 존재처럼 보인다.

음침하면서도 환상적인 성 안팎의 분위기, 촛대로 변신한 시종 르미에(이완 맥그리거 분)와 시계 콕스워스(이안 멕켈런 분) 등 성에 사는 캐릭터들은 나름의 개성 덕분에 인상적이다. 다만 예닐곱에 달하는 이들 캐릭터는 '신스틸러'라기엔 다소 도구적으로 소모되고, 특히 깃털 먼지떨이로 표현된 플루메트(구구 바샤-로)는 다분히 작위적인 데다 스와로브스키(영화의 협찬사) 브랜드 로고를 연상시켜 눈에 걸린다. 여기에 벨 역을 맡은 엠마 왓슨의 연기는 안정적이지만, 어디까지나 원작에 충실한 캐릭터는 시각적 화려함을 추구하는 연출 속에서 좀처럼 돋보이지 않는다. 성과 마을을 오가는 벨의 서사가 투쟁으로까지 확장하지 못한 채 모험으로만 그치는 이유다. 16일 개봉.

 조연 캐릭터들의 도구적 소비는 아쉽다.

조연 캐릭터들의 도구적 소비는 아쉽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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