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관련 사진.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속 한 장면. 이슈에 다소 가린 모양새이지만, 이 영화만 놓고 볼 필요가 있다.ⓒ 전원사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속 영희(김민희 분)는 독일 어느 도시에서 한 번 서울 강릉에서 한 번 지인들에게 묻는다. "나 여기서 살까 봐"라는 물음에 무심한 듯 지인들은 "그래 보라"고 반응한다.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신작인 이 영화를 관통하는 유일한 키워드는 아마 뿌리 없는 삶이 아닐까 한다. 독일과 한국, 이렇게 두 개의 챕터로 나뉜 영화는 겉으로 보면 이야기의 연속성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관객 입장에선 충분히 영희 속 정서에 집중해 볼 수 있다.

한 노장 감독과 사랑에 빠졌던 배우는 독일에서 기다리고 한국에선 체념한다. "난 이제 남자 외모 안 봐. 잘 생긴 남자는 얼굴값을 해"라며 "그 사람이 올 거예요"라고 말하는 영희와 "남자들은 다 병신 같다"며 "지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하면서 (감독과의 만남을 보고) 불륜이래"라고 툭 던지는 영희는 그 간극이 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영희는 지인들의 손가락질이든 감독의 무책임함이든 결국 상처 입었다.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던 영희는 아마 마음으로 몇몇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일에 감정 이입하며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는 주변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그래서 자신의 뿌리를 거세한 채 독일로, 다시 한국으로 떠나고 돌아옴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사랑의 자격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김민희, 공식적으로 연인 인정! 13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에서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연인관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연인사이임을 인정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배우 김민희가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장편영화다. 23일 개봉.

13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가 열렸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연인관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연인 사이임을 인정했다.ⓒ 이정민


영화가 흐르는 내내 관객 입장에선 헷갈릴 수 있다. 홍상수, 김민희라는 현실의 존재들 이야기로 읽고선 실컷 욕해볼 수도 있다. 그러는 순간 우린 모두 영희의 적이 된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단순히 이 두 사람의 선택을 '변명' 내지 '해명'하는 텍스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자전적 의도는 없다. 개인적인 디테일을 쓰긴 하지만 (진실함에 다가가기 위해) 그걸 새롭게 재배열한다"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밝힌 홍상수 감독의 말을 존중하자. 앞서 언급한대로 반응하는 것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일종의 해석이 들어간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상식 혹은 국민 정서를 운운하며 현실에서의 두 사람을 비난하는 게 무조건 옳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본다. 강릉에서 모처럼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영희는 은근슬쩍 과거 관계를 떠보는 그들을 일갈한다. "사랑해봤나요? 아니 사랑받아봤나요?"라 되묻던 영희는 "받을 자격도 없는 것들이"라고 쏘아붙인다. 영화 통틀어 유일하게 영희의 감정이 가장 복받치는 지점이다.

"사랑이 어디에 있어요? 보이질 않는데. 보여야 어디서 사기라도 하죠. 저는 할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충분히 다 했어요. 가치도 없는 것들 그리 생각하기도 싫고. 곱게 사그라들면 좋겠어요. 그게 백번이고 나아요. 다 자격 없어요! 비겁하고 추한 짓은 다 하면서. 사랑받을 자격 없어요!"

그녀의 남자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속 한 장면.

이 영화에서 흔들리는 건 그녀만이 아니다.ⓒ 전원사


뿌리 없는 영희라 표현했지만 정말로 뿌리를 잃은 건 그녀의 지인들과 남자들이다. 영희의 오랜 선배 명수(정재영 분)는 오래전 그에게 40만 원을 빌렸다. 술기운이 가득 올라왔을 무렵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척하며 명수는 "언젠가 갚으려 했다. 이자까지 담았어!"라며 5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넨다.

해변에서 우연히 과거 영화 스태프들과 만난 영희는 그들에게 이끌려 또 다른 술자리에 간다. 거기엔 바로 그의 옛사랑이자 '유부남 감독' 상원(문성근 분)이 앉아 있다. 불편한 기운, 또 그걸 내색하지 않으려는 민망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영희가 상원을 툭 하고 자극한다. "사랑하고 계세요?" 결국, 상원 역시 감정이 복받쳐 올라 자신을 쏟아내며 울먹인다.

"그때부터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정상이 아니야. 후회하는 데서 벗어나야지. 괴물이 되는 것 같아. 그래, 후회해. 매일매일 후회하고 살지. 후회해서 뭐해. 누군 좋아서 하냐. 그런데 그것도 자꾸 하다 보면 달콤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상원의 대사 중)

고개 숙인 상원을 향해 영희는 다시 평상심이 담긴 눈빛으로 쳐다본다. 김민희의 연기가 빛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명수, 상원은 자신들이 영희로부터 진 몇 가지 빚을 탕감받는다. 따지고 보면 진짜 뿌리 없는 이들은 영희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일 수 있다. 선택하고 후회를 반복하는 상원이나 강릉에 카페를 차리고 터전을 잡았지만, 왠지 모르게 무기력하기만 한 명수, 그리고 이들과 관계를 맺고 영희를 알기 시작하는 지인들은 모두 사랑을 묻는 영희 앞에 아무 말이 없다. 영희의 또 다른 선배 준희(송선미 분)만이 영희의 정서적 신호를 감지하고 "평생 친구가 되어줄게"라며 감응할 뿐이다.

혼자이거나 함께하거나

영화 내용에 대한 설명이 다소 장황해졌다. 정리하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그것이 가진 무게감의 팔 할 이상을 김민희에게 지우고 있다. 김민희는 그걸 기꺼이 안았고, 훌륭하게 운반했다. 비현실적이자 비선형적인 이야기가 겉멋에 함몰되지 않고 감정의 승화까지 비약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김민희 덕이다. 몇 초의 짧은 그 순간에도 갖가지 감정이 흘러가는 그의 얼굴은 곧 이 영화의 인장과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홍상수 감독 역시 한 걸음 더 땅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사실 그의 근작 몇 편에선 일종의 권태감이 느껴져 크게 감흥이 없던 차였다. 홍 감독 특유의 인물 비틀기와 감칠맛 나는 대사는 여전했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선 설익은 관조가 느껴져 내심 불편함도 있던 차였다. 그의 말대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진실함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했고, 꽤 묵직하게 그 노고가 마음에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 감독 역시 김민희에게 빚졌다.     

"바람 불어와 어두울 땐, 당신 모습이 그리울 땐, 바람 불어와 외로울 땐, 아름다운 당신 생각. 잘 사시는지, 잘 살고 있는지,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됐는지.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됐는지." (영희가 카페 앞에 홀로 몸을 기우뚱 거리며 부르던 노래)

한 줄 평: 김민희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한 송이 꽃으로 남았다
평점: ★★★★(4/5)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포스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포스터. 이 영화의 무게감은 김민희의 것이다.ⓒ 전원사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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