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in!! Is it in!! Is it in!! Sean Raggett for Lincoln City!!"

경기를 보고 있던 모두가 미쳐버리던 순간이었다. 잉글랜드 5부리그 소속팀 링컨 시티의 수비수 션 레거트(23)의 슈팅이 득점으로 인정된 그 순간이었다. 몇 분 뒤 경기가 종료된 그 순간은 링컨 시티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었다. 모두가 끝날 것이라 예측했던 링컨 시티의 돌풍은 번리로 잠재워지지 못했다.

17년 전, 프랑스에도 링컨 시티와 같은 종류의 커다란 돌풍이 프랑스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 돌풍은 프랑스 4부리그의 칼레에서 시작되었다. 칼레의 돌풍을 일으킨 이들은 호나우두, 말디니, 라울 같은 슈퍼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와 비슷했다. 편의점 점원, 은행가, 공무원, 학생, 정원사 등등.. 그들은 오전에는 일을 하고 밤이나 주말에 모여 축구를 즐기는 철저한 아마추어들이었다. 그러나 2000년에 그 아마추어들이 보여준 돌풍은 그 어떤 프로보다 훌륭했다.

시작은 충분히 가능할 법한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16강전에서 AS 칸을 상대로 승부차기 혈전 끝에 승리한 것이 그들의 이름을 알렸던 최초의 바람이었다. 8강에서 만난 팀이 프랑스의 강호 스트라스부르였던지라, 모든 이들은 칼레의 대패를 예상했다. 그러나 칼레의 폭풍은 아직 그칠 때가 아니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칼레는 스트라스부르를 2:1로 꺾고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이때부터 전 세계가 칼레의 스토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칼레의 홈구장은 수용 인원이 1000명도 채 되지 않았고, 이조차도 비가 오면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고, 선수들은 완전한 아마추어였다. 이런 팀이 세계적 축구 강국이었던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컵 대회에서 일으킨 돌풍은 이미 그 상태로 모두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칼레의 4강 상대팀은 98-99시즌 리그 앙의 우승팀이었던 지롱댕 보르도 FC였다. 칼레의 홈구장은 너무나 열악하여, 이 경기는 보르도의 홈구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쿠프 데 프랭스를 올라오면서 늘 그랬듯이 칼레의 압도적 패배가 예상되었으나, 칼레 시민의 절반이 넘는 4만명 정도가 '혹시나' 하는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원정길에 함께했다.

그리고, 칼레 시민들의 간절한 희망을 등에 업은 칼레는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킨다. 보르도를 3-1로 대파한 그 순간,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뒹굴었고, 모든 축구팬들이 들썩였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몽드>는 이 승리 이후 칼레에 대해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 라고 극찬했고, 전 세계에서는 칼레에게 축하메세지를 보내왔다. 이제 작은 도시의 작은 아마추어팀 칼레는, 칼레 시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간절한 희망을 등에 업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생드니 스타디움, 칼레와 낭트의 쿠프 데 프랭스 결승전이 있던 이 날 경기장에는 칼레의 승리를 염원하는 많은 축구팬들이 찾아왔다. 이 날의 경기가 얼마나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마저 이 경기를 두 눈으로 지켜보기 위해 참석했다.

킥 오프 이후 35분이 지났을 때 경기장 내의 모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를 지켜불 수 밖에 없었다. 칼레의 공격수 제롬 디티르트가 구석에서 왼발 슈팅으로 선취골을 넣은 것이다. 그의 환희에 찬 복싱 세레모니는 칼레 시민들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들 그라운드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그러나 돌풍은 거기까지였다. 후반 5분, 혼전상황에서 시비에르스키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불운하게도 후반 추가시간에는 헐리우드 액션으로 인해 페널티킥을 내주며 2:1로 역전당했다.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칼레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누워서 울고, 관중들은 심판을 향해 야유했다. 하지만. 칼레의 돌풍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낭트의 주장이었던 미카엘 랑드루는 칼레의 주장 레지날 비크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단상 위에 올라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분노하던 그라운드의 관중들은 모두 환호하고, 박수쳤다. 티비로 그 경기를 보던 모든 프랑스 시민들 역시 그러했다. 경기를 직접 지켜본 프랑스의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오늘 경기는 두 팀 모두가 승리자이다. 낭트는 경기에서, 칼레는 정신에서 승리하였다"라고 말하며 양 팀의 모든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2000년 칼레의 돌풍은 비로소 막을 내렸다. 어쩌면 배드엔딩으로,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말이다.

지금, 2017년, 링컨 시티와 서튼 유나이티드의 돌풍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미 어제자 경기에서 번리FC를 꺾은 링컨 시티는 '역사상 최초의 5부리그 소속팀의 FA컵 8강 진출' 이라는 기록을 써냈다. 지금부터는 그들이 가는 길이 곧 역사가 된다. 같은 5부리그 소속의 서튼 유나이티드는 오는 화요일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 아스날FC 와의 결전을 앞두고 있다.

2016년 레스터 시티의 동화가 이루어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5부리그 소속의 두 팀이 제 2의 칼레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 그들은 완전한 프로도 아니고, 심지어 약하다.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2000년 칼레의 그것과 같다. 그리고 그 열정이 많은 사람들이 이 약팀들을 응원하는 이유가 된다. 필자 역시 이번 만큼은, 이 약한팀들이 승리하길 바란다. 2000년의 칼레의 사례를 보면 공은 둥그니, 나는 그것이 가능하리라 믿고 있다. 아마도 모두가 나처럼, 제 2의 칼레를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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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jun_0312 에 약간의 수정을 거친 이후 올라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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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에 관해 글 쓰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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