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의 황금기는 80년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장르 전통에 동양 정서를 접목한, 인상적인 명작들을 선보이며 아시아 영화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던 때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이 흘러 90년대 중반 쯤부터는, 이전의 성공한 영화들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 아류작들이 범람하면서 홍콩 영화의 인기는 급속히 사그라들게 됩니다.

영화 <공조>는 안타깝게도 바로 그런 90년대 중반의 홍콩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과하게 진지한 액션신, 그럭저럭 재미있는 코믹한 장면, 감동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빤히 보이는 패턴 등이 골고루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사운드 상태도 먹먹하게 뭉개져서 들리기 때문에 옛날 영화 보는 듯한 느낌을 제대로 줍니다.

 영화 <공조>의 한 장면. 위폐 찍는 동판을 회수하라는 비밀 임무를 띠고 북한측 대표단에 일원으로 입국한 북한 형사 림철영(현빈)은, 남측에서 ㅅ공조 수사를 빌미로 붙여 준 위장 파트너 강진태(유해진)과 파트너가 된다.

영화 <공조>의 한 장면. 위폐 찍는 동판을 회수하라는 비밀 임무를 띠고 북한측 대표단에 일원으로 입국한 북한 형사 림철영(현빈)은, 남측에서 ㅅ공조 수사를 빌미로 붙여 준 위장 파트너 강진태(유해진)과 파트너가 된다.ⓒ CJ엔터테인먼트


일단 이야기의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위폐를 찍는 동판을 회수하기 위해 그것을 훔쳐간 반역자 차기성(김주혁)을 뒤쫓는 북한 형사 림철영(현빈)은, 남한에서 위장 파트너로 붙인 생계형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와 짝을 이뤄 사건을 해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전개가 산만하기 때문에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사 목표인 차기성을 추적하는 과정이 너무 단순하게 처리돼 있고, 과하게 힘을 준 액션 장면들은 부담스러우며, 코미디를 시도한 부분들은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전체 이야기와는 딱히 연관성이 없는 편입니다. 이 영화를 볼 때는 좀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끌리는 포인트가 있을 때만 잠깐씩 집중해서 보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길입니다.

이런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열쇠는 남한 형사 강진태라는 캐릭터가 쥐고 있습니다. 직업만 형사일 뿐 진짜 별 것 없는 보통의 40대 가장인 그는 40,50대 '아재'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만한 배역입니다. 하지만 초중반 전개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내면의 가치나 재능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 보니 영화 전반에 걸쳐 민폐 끼치는 우스꽝스런 꼰대 캐릭터처럼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에 7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한 <럭키>와 비교해 보면, 이런 캐릭터 설정이 왜 문제인지 확실해집니다. 냉혹한 킬러였으나 기억을 잃고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된 주인공 형욱은 특유의 깔끔함과 완벽한 칼솜씨, 인간적 매력을 선보이며 주위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이런 인물에게는 관객도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전반부에 형욱이 쌓아 놓은 호감은 후반부의 이야기가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관객의 흥미를 붙들어 놓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영화 <공조>의 한 장면. 강진태(유해진)은 직업이 형사일 뿐 한국의 평범한 가장의 현실적인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러나 주인공으로서의 남다른 면모가 없기 때문에 관객이 마음을 주기 어렵다.

영화 <공조>의 한 장면. 강진태(유해진)은 직업이 형사일 뿐 한국의 평범한 가장의 현실적인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러나 주인공으로서의 남다른 면모가 없기 때문에 관객이 마음을 주기 어렵다.ⓒ CJ엔터테인먼트


유해진이라는 능력 있는 배우가 연기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공조>의 강진태와 <럭키>의 형욱에 대해 관객이 호감을 느끼는 정도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두 영화의 최종 흥행 성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대목인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했지만 <공조>의 흥행 성적은 <럭키>의 절반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현빈, 유해진, 장영남은 이미 기대치가 정해져 있는 배우들이고, 영화에서도 그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 줍니다. 때문에 좀 더 눈길을 끄는 배우들은 김주혁과 임윤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역 차기성 역할을 맡은 김주혁은, <비밀은 없다>에서 연기했던 비열한 캐릭터에 이어 자기 확신으로 가득찬 악당 역할을 인상깊게 소화했습니다. 유해진의 철없는 처제 역을 맡은 임윤아는 주책스러운 연기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영화 속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들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 영화 산업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성수기 개봉 영화들은 웬만해서는 흥행에 실패하지 않고, 비수기에도 심심치 않게 흥행작이 나오며, IPTV를 중심으로 한 2차 판권 시장도 커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으로만 만들면 금전적인 면에서 크게 손해 보지 않는 구조가 정착되었습니다. 게다가 영화 스태프들의 인건비 문제가 현실화 되는 등 전반적인 제작 여건이 많이 좋아진 상태입니다.

이럴 때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마음입니다. 예술적 판단이나 상업적 고려를 할 때 긴장을 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작품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공조>가 보여 준 아쉬움도 그런 '무긴장 상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영화계는 매너리즘의 함정에 빠져 관객에게 외면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영화 <공조>의 포스터. 최근 한국 흥행작들보다는 90년대 홍콩 영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듦새가 아쉽다.

영화 <공조>의 포스터. 최근 한국 흥행작들보다는 90년대 홍콩 영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듦새가 아쉽다.ⓒ CJ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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