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아이언맨>의 대성공으로부터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간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18편의 영화들이 나왔는데, 대부분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슈퍼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써 왔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이 세계관의 19번째 작품으로, 지난 10년의 여정을 결산하는 이정표와 같은 영화입니다. 우주 곳곳에 죽음과 파괴를 몰고 다니는 존재 타노스(조쉬 브롤린)는 우주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인피니트 스톤 6개를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다 모으면 손짓 하나만으로도 전 우주의 생명체 중 절반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지요. 마블 세계관의 여러 슈퍼히어로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타노스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입니다.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소문난 잔치'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한 장면. 우주 전역에 파괴와 죽음을 몰고 다니는 타노스(조쉬 브롤린)은 우주 곳곳에 숨겨진 인피니티 스톤을 찾아내려 한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한 장면. 우주 전역에 파괴와 죽음을 몰고 다니는 타노스(조쉬 브롤린)은 우주 곳곳에 숨겨진 인피니티 스톤을 찾아내려 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개봉 전부터 역대 최고 예매율을 기록하는 등 각종 화제를 몰고 다녔고, 최근 극장 개봉작 중에서 딱히 볼 만한 작품도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매우 높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수작입니다. 영화적 재미뿐만 아니라, 슈퍼히어로 영화로서는 다루기 힘든 종류의 이야기를 하는 데까지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영화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세련된 액션 장면들이 수두룩하며,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연출이 좋습니다. 마블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지닌 독자적인 매력을 잘 살렸고, 이들이 서로 만나고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재미를 잘 포착합니다.

특히 사랑이나 우정, 가족애 같은 인간적 감정으로 얽힌 몇몇 캐릭터들이 처한 딜레마 상황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영화 내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우주 차원의 대전투에 통일성을 부여합니다. 사실, 이 영화는 보기에 따라서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민이라는 하나의 테마를 다양하게 변주한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일종의 교향곡이나 서사시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연출을 맡은 안소니 루소, 조 루소 형제는 원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감독을 맡으며 마블 유니버스에 합류했습니다. 과감하고 선 굵은 액션 연출과 인물의 내적 갈등을 외적 상황으로 쉽게 풀어내는 능력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지요.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들의 특성상 보여주지 못했던 유머 감각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마블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단독 작품에서 보여줬던 매력을 그대로 잘 살려서 한 영화 안에 담아냈다는 점입니다. 이전 작품에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주요 인물들뿐 아니라, 매력적인 조연들까지 깨알같이 활용하면서도 작품 전체의 톤을 유지해 나간 것이 돋보입니다. 특히 다른 작품과 섞기 힘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나 <토르: 라그나로크>의 개성 넘치는 유머 감각까지 고스란히 잘 살려낸 것을 보면, 이 형제 감독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마블 스튜디오의 이전 작품들을 챙겨보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닥터 스트레인지>와 <토르: 라그나로크>, <블랙팬서> 중에서 안 본 작품이 있다면 제대로 된 감상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나마 앞에 열거한 작품들은 다 나름대로 재미있고 볼 만한 작품이기 때문에,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이 억지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인간적 고민 담은 슈퍼히어로 영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이미지컷. 타노스에 맞서는 슈퍼히어로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이미지컷. 타노스에 맞서는 슈퍼히어로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슈퍼히어로 영화는 장르 상 액션 스릴러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주인공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거기서 탈출하게 됩니다. 영화 제작자들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화려한 볼거리를 특히 선호합니다. 커다란 영화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장관을 관객들이 좋아할 거라고 믿지요. 관객들 역시 슈퍼히어로 영화에 화려한 액션 장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슈퍼히어로는 태생적으로 드라마틱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일반인과는 다른 능력을 갖췄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물론, 타인과 바람직한 사회적 관계 형성이라는 과제를 늘 안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나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처럼요. 여기서 발생하는 슈퍼히어로들의 내적 갈등과 고통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풍부한 것으로 만듭니다. 

마블의 영화는 이런 슈퍼히어로의 사회적 관계와 내면 문제를 다루는 걸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초인적 인물이 보통 사람처럼 성장통을 겪고, 사랑이나 우정, 가족 관계의 딜레마 앞에서 힘들어할 때, 관객은 그 인물과 강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감정적 딜레마가 여러 번 겹쳐지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에까지 이어집니다.

이미 CG 기술은 인간의 상상을 가볍게 넘어서는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누구든 돈과 시간만 허락한다면 멋진 볼거리를 보여 줄 수 있지요. 그래서 더이상 볼거리만으로는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마블과 경쟁 관계인 DC의 슈퍼히어로 영화나 다른 세계관 영화들이 기대만큼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슈퍼맨과 배트맨이 역대급 액션을 보여주더라도, 킹콩이나 고질라 같은 거대 괴수들이 싸움을 벌여도, 관객이 정서적으로 공감할 만한 부분이 부족하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는 힘든 시대가 됐으니까요.

장르 규칙과 볼거리에 환호하는 것은 어쩌면 마니아 관객뿐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일반 대중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정서적 공감대를 통해 '저게 내 이야기야!'라고 외치고 싶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역사적인 성공 비결 역시 이런 일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포스터. 인간의 보편적인 고민을 중첩시켜 존재론적 고민을 논하는 데까지 이른 수작이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포스터. 인간의 보편적인 고민을 중첩시켜 존재론적 고민을 논하는 데까지 이른 수작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마블 조쉬 브롤린 루소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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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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