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13일, 신인 선수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개최했다. 오리엔테이션의 주요 주제는 프로 선수로서의 매너와 각별히 주의해야 할 사안들이었다. 첫번째 멘토 강사로 삼성 이승엽이 직접 강연에 나섰다. 독보적인 대기록을 세운 현재 진행형 전설인 이승엽의 조언은 신인 선수들에게 묵직한 무게로 전해졌다.

 13일 열린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에서 부정방지 교육 강사로 나선 전직 투수 박현준

13일 열린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에서 부정방지 교육 강사로 나선 전직 투수 박현준 ⓒ KBO


이승엽의 강연 이후에는 부정방지를 위한 교육이 이어졌다. KBO는 교육의 강연자로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초청했다. 그는 바로 전 LG 트윈스 투수 박현준이었다.

KBO리그의 대선수이자 현역 선배로서 신인들의 귀감이 된 이승엽과는 상반된 처지였다. 승부조작을 저질러 영구제명이 된 전직 선수가 부정 방지 교육을 위한 살아있는 교보재로 나서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박현준은 후배 선수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

  2017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 시간 계획. 부정방지 교육으로 박현준이 직접 강연에 나섰다.

2017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 시간 계획. 부정방지 교육으로 박현준이 직접 강연에 나섰다. ⓒ KBO


박현준은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8번) 지명을 받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였다. 사이드암 투구폼으로 뿌리는 빠른 속구와 탄탄한 하드웨어로 경희대 재학 시절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박현준의 첫 소속팀은 젊은 투수 자원이 많았던 SK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들의 집중 관리를 받았었다. 그만큼 박현준은 장래가 기대되는 뛰어난 유망주였다.

 주목받는 유망주였던 SK 시절 박현준

주목받는 유망주였던 SK 시절 박현준 ⓒ SK 와이번스


SK 시절 미완의 대기였던 박현준은 입단 2년차던 2010년 4:3 트레이드를 통해 LG에 입단하게 된다. LG 입단은 박현준의 선수 인생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 전환점이 되었다.

 2010시즌 박현준의 팀별 기록. LG로 이적한 후 좀더 안정된 피칭을 보이며 선발 기회를 잡았다.(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2010시즌 박현준의 팀별 기록. LG로 이적한 후 좀더 안정된 피칭을 보이며 선발 기회를 잡았다.(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 케이비리포트


SK에서는 기존 투수진이 원체 두터워 좀체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반면 LG에서는 박현준을 꾸준히 선발로 기용했다. 트레이드 후 9경기에 선발로 등판한 그는 아주 뛰어난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적 전에 비하면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여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2011시즌은 박현준에게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개막전부터 선발로 활약한 박현준은 본인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새롭게 장착한 포크볼을 주무기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11년 5월 3일 두산 전은 박현준의 진가가 드러난 경기였다. 두산을 상대로 어린이날 시리즈 첫 선발투수로 등판한 박현준은 완봉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무려 10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인생 최고의 피칭을 보였다.

 LG 시절  박현준은 잠실라이벌 두산에 강한 '두산 킬러'의 면모를 보이며 LG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LG 시절 박현준은 잠실라이벌 두산에 강한 '두산 킬러'의 면모를 보이며 LG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 LG 트윈스


또한 6월 4일에는 리그에서 처음으로 전구단 상대 승리를 달성하며 다승 1위를 질주했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전반기의 좋은 페이스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다. 팀의 4강을 위해 무리한 것이 화근이었다. 짧은 휴식과 불펜 기용으로 체력이 떨어져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박현준의 밝은 미래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이제 첫 발을 내딛은 이 선발투수는 단순히 LG의 미래를 넘어 한국야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에이스로 떠올랐다.

 2011시즌 다승 순위. 박현준은 시즌 13승을 거두며 팀내 최다승을 기록했다.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2011시즌 다승 순위. 박현준은 시즌 13승을 거두며 팀내 최다승을 기록했다.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 케이비리포트


그러나 화려한 날들은 거기까지 였다. 박현준은 2012시즌 개막을 앞두고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며 영구 제명되고 말았다. 한국야구의 미래로 여겨졌던 투수 박현준의 경력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야구선수로는 다시는 용서받지 못할 행동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 것이다. LG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박현준은 어리석은 행동으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영원히 떠나야 했다.

그렇게 야구계를 떠나 다른 생업에 종사하던 사연 많은 박현준이 KBO리그 신인을 대상으로 한 부정 방지 교육에 강연자로 나선 것이다. 박현준 개인에게는 부끄럽고 불편한 자리였겠지만 의무감을 느낀 그는 용기를 냈다. 그리고 기꺼이 교보재가 되었다.

어리석은 선택으로 야구 선수로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후배들에게 직접 보여주며 승부조작에 대한 뼈저린 후회가 담긴 진심어린 경고를 전했다.

 승부조작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고액 FA 계약도 가능했을 박현준. 야구웹툰 야알못 42화 [박현준. 만약에..편] 중

승부조작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고액 FA 계약도 가능했을 박현준. 야구웹툰 야알못 42화 [박현준. 만약에..편] 중 ⓒ 케이비리포트 작품


박현준에게 할애된 강연 시간은 애초 30분이었다. 하지만 박현준은 그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승부조작이 근절되어 더 이상 언론에 본인의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당부를 끝으로 감정이 북받친 듯 10분 만에 강연을 마무리하고 강연장을 떠났다.

박현준이 승부조작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박 FA 계약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한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영구제명되었고 그 사실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다만 확실히 평가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승부조작으로 야구계에 큰 상처와 오점을 남겼던 박현준이 자신이 저지른 과오로부터 도망가거나 변명하지 않고 과거의 잘못을 직시했다는 점이다. 본인의 잘못에 대한 솔직한 심경과 승부조작의 위험성을 후배 신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KBO가 주관하는 공개 행사에 강연자로 나선 용기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박현준의 이번 강연이 금지약물 복용, 음주운전 사고, 불법 도박 및 스포츠 베팅 등 숱한 일탈을 저지르고도 '야구로 보답' 운운하며 본인의 과오를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했던 스타 플레이어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

강연자로 영구제명된 박현준을 초빙하는 전향적 태도를 보여준 KBO 역시, 금년만 시행하고 마는 단발성 교육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일탈 행위를 저지른 전현직 선수들이 박현준처럼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제대로 속죄할 수 있는 공식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기록 참고: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KBO기록실, 스탯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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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정민 필진/ 김정학 기자) 이 기사는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에서 작성했습니다. 프로야구/MLB필진/웹툰작가 상시모집 [ kbr@kbrepor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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