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3년 차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전국 MBC 기자들의 가슴까지 두드렸다. 2012년 파업 실패 이후 패배감에 젖어있던 MBC 기자들의 마음에 막내 기자들의 용기가 불을 지른 가운데, 사측의 경위서 요구는 이런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사측의 경위서 제출 요구에 9일 MBC 선배 기자 96명이 후배들을 대신해 경위서를 쓴 데 이어, 지역MBC 16개 계열사 기자회 소속 기자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12일 공개된 "용기를 낸 막내 기자들을 위한, 지역 MBC 동료들의 경위서"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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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MBC 기자들은 영상을 통해 "우리의 자존심이자 존재 이유인 <뉴스데스크>가 철저히 망가지는 모습 앞에, 좀 더 몸을 던져 싸우지 못했다"면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졌고, 5년을 숨죽여 지냈다. 그리고 오늘의 MBC, 엠빙신을 함께 만들었다"고 반성했다.

이들은 "지역MBC는 서울MBC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면서도 "지역 뉴스라도 살려보고자 악착같이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다 같은 MBC였다"고 자조했다. 지역에서 세월호, 사드에 반대하는 지역의 목소리 등을 취재해 올려보내도, 서울 MBC 편집자들은 "동물, 날씨 등 일회성 사건 사고만 찾았다"면서 "그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만들었다"고 자책했다.

지역 기자들은 "서울 3년 차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에, 그들의 용기만큼 우리의 싸움은 치열했는지 부끄럽고 눈물이 났다"고 전하며 "시민들의 비난에도 촛불집회를 기록하고, 세월호를 취재하고, 부정부패를 감시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뉴스들이 제대로 방송될 수 있도록 싸우겠다"며 투쟁의 목소리를 냈다.

"삭제된 채널 MBC를 다시 여러분의 곁에 찾아드리겠다. 그때까지 손가락질을, 비난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용기를 낸 막내 기자들 고맙다. 우리도 함께하겠다"며 연대 의지를 전했다.

해당 동영상에 참여한 지역MBC 5년 차 기자는 "서울 기자회의 경위서 영상이 공개된 후, 전국 기자회에서도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면서 "이틀 만에 지역 16개 기자가 나눠 촬영한 영상을 편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기자회에는 취재기자뿐 아니라 촬영 기자들도 속해있는데, 촬영 기자들은 촬영, 편집 등의 방법으로 영상 제작에 참여했다.

 MBC 전국 16개 계열사 기자회 소속 기자들이, 서울 MBC 3년차 기자들의 반성문에 응답했다.

MBC 전국 16개 계열사 기자회 소속 기자들이, 서울 MBC 3년차 기자들의 반성문에 응답했다. ⓒ 전국MBC기자회


이 기자는 "서울과 달리, 지역 MBC의 경우에는 논조나 기조가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지속적인 자조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이전에는 지역에서 올려보낸 뉴스 중 기획, 발굴, 고발 기사 등도 서울 <뉴스데스크>를 통해 많이 전해졌지만, 요즘은 사건·사고나 날씨 관련 기사를 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뉴스데스크>의 신뢰도 하락과 비난은 지역 MBC 뉴스와 그 기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고, 이 때문에 "최근 몇 년간 매체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탈하는 기자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전국MBC기자회 측은 "서울 MBC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며, 지금까지는 한발 물러나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MBC 기자들조차 MBC 뉴스를 보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역 기자들의 위기의식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을 때, 막내 기자들의 반성문이 모두를 각성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번 영상에는 전국MBC기자회 소속 270여 명의 기자 중 74명이 출연했고, 영상에 등장하지 않고 카메라를 든 촬영 기자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다. 전국MBC기자회 측은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 뒤 이틀이 안 돼 영상이 나왔다. 만약 시간이 있었다면 더 많은 기자가 참여했을 것"이라는 말로, 지역 기자들의 뜨거운 열기를 전했다.

MBC 기자들은 "촛불집회에서 MBC 기자들을 향해 비난하고 욕하고 쫓아내시는 시민분들을 보며 오히려 감사했다"면서  MBC와 기자들이 각성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비난과 손가락질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아래는 전국MBC 기자들의 경위서 전문이다.

용기를 낸 막내 기자들을 위한, 지역 MBC 동료들의 경위서
'안녕들 하십니까'

지난 2013년 말 사회 문제를 한탄한 대학생들의 이 대자보가 확산될 때,
저희는 적극적으로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부패한 권력이 서서히 민낯을 드러내는 그 순간,
강자의 횡포가 심해지고, 약자의 고통이 커지는 그 지점에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공영방송에 몸담은 기자로서 여러분들의 '안녕'을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참담함, 부끄러움, 자괴감, 분노, 절망, 두려움에 치를 떨며 보낸 지난 5년.

저희의 자존심이자 존재 이유인 <뉴스데스크>가 철저히 망가지는 모습 앞에 좀 더 몸을 던져 싸우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먼저 살피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MBC는 서울MBC 말고도 16개 지역 계열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끈끈한 네트워크의 힘을 바탕으로 그 어떤 언론사보다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살아있는 뉴스를 전한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갔고, 사드 배치, 신공항 등 지역 현안들 앞에서 무엇보다 지역의 낮은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역MBC는 때론 서울MBC와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서울이라 다르다고 때론 포기했고, 지역 뉴스만이라도 살려보려고 악착같이 뛰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저희는 결국, 다 같은 MBC였습니다.

지역 현장에서 취재한 세월호 뉴스가, 사드를 반대하는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서울MBC를 통해 제대로 방송되지 못할 때.
살아있는 권력을 과감히 비판하는 뉴스가 비겁한 논리 앞에 부끄럽게 사장될 때.
동물, 날씨, 일회성 사건 뉴스만 찾는 서울MBC 편집자들의 구미에 맞게 뉴스를 만들었습니다.

MBC 뉴스가 망가지는 것에 화가 나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졌고, 5년을 숨죽여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MBC, 엠빙신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지역 촛불집회에서도 서울 광화문 못지않게 저희를 향한 시선은 따가웠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 3년 차 막내 기자들이 낸 반성문은 다시 눈물 나게 합니다.

그들의 용기만큼 우리의 싸움은 치열했을까?
막내들의 용기에 저희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더욱더 저희는 취재를 멈출 수 없습니다.
개쓰레기라고 하셔도, 촛불 집회를 기록할 것이고, 세월호를 취재할 것이고, 부정부패를 감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방송될 수 있도록 싸우겠습니다.
여러분의 안녕을 지켜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삭제된 채널 MBC를 다시 여러분의 곁에 다시 찾아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여러분은 손가락질을 멈추지 말아주십시오.
비난을 멈추지 말아주십시오.

공영방송 MBC 되찾겠습니다.
저희는 함께 싸우겠습니다.
이 싸움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용기를 낸 막내 기자들 고맙습니다. 우리도 함께하겠습니다.

- 강원영동MBC, 광주MBC, 대구MBC, 대전MBC, 목포MBC, 부산MBC, 안동MBC, 울산MBC, 원주MBC, 전주MBC, 제주MBC, 경남MBC, 춘천MBC, 여수MBC, 충북MBC, 포항MBC 기자회


MBC 반성문 경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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