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세상의 끝>의 루이. 그는 자기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단지 세상의 끝>의 루이. 그는 자기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엣나인필름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시(時) <방문객> 중에서

서른넷 청년 루이(가스파르 울리엘 분)는 고향을 떠난 지 12년 만에 집을 향한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아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게이이자 성공한 작가인 그를 맞아 가족들은 화려한 식사 자리를 준비하고 자신을 꾸미기에 분주하다. 어머니(나탈리 베이 분)와 형 앙투안(뱅상 카셀 분),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 분), 그리고 처음 만나는 형수 카트린(마리옹 꼬띠아르 분)까지. 네 사람은 루이를 환대하면서도 미묘하게 날을 세우고, 루이는 이들과 한나절을 보내며 자신의 죽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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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가족과 재회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이 오랜 세월 가족을 떠나 있던 루이를 돌연 가족 앞에 내세우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이후 루이는 여동생의 방을 구경하고 형수에게 조카 이야기를 듣는다. 온 가족과 어머니가 차려준 점심을 마친 뒤에는 형과 함께 차를 타고 담배를 사러 나선다. 돌아와서는 또 다 같이 디저트를 먹는다. 그사이 수많은 말들이 오간다. 서로가 웃고 울고 화내고 싸우는데 그게 왜인지는 좀처럼 속 시원히 드러나는 법이 없다. 그렇게 말미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가족의 재회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도 답을 내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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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흐릿하지만 강렬하게 자리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보를 철저하게 제한하고 감정을 부각하는 영화의 태도가 큰 몫을 한다. 루이가 과거 집을 떠난 계기나 그동안 겪어온 삶, 그리고 형수 카트린과 형 앙투안, 어머니와 쉬잔, 쉬잔과 앙투안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갈등까지. 루이와 네 가족 사이에 자리한 12년의 공백 앞에서 이들은 너무나도 할 말이 많은 동시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반가움과 애증, 동경, 원망, 멸시, 열등감… 관계마다 각각 다른 결로 뒤섞인 감정들은 어떤 이유도 목적도 드러내지 않은 채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이는 스크린 밖 관객에게도 각자 채워야 할 공백이 된다.

실내 로케이션과 클로즈업 샷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연출은 인물들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데 주효하다. 특히 영화 초반부 집 안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짝 비추는 시퀀스는 처음 대면한 루이와 가족들 사이의 긴장감을 더할 나위 없이 절묘하게 포착한다. 이 밖에도 루이를 통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인물들의 감정은 줄곧 닫힌 공간 속에서 터질 듯 높은 밀도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는 일견 아이들 간의 싸움으로 한 거실에 모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대학살의 신>(2011)을 연상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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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세상의 끝>은 <로렌스 애니웨이>(2012)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스물여덟 살의 캐나다 출신 영화감독 자비에 돌란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극작가 장 뤽 라갸르스의 동명 희곡을 모티브로 지문 없이 대사로만 이루어진 원작을 스크린에 옮겨냈다. 지난해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수상을 비롯해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오는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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