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건' 김동현이 2016년의 마지막 날 멀리 라스베가스에서 승전보를 전해왔다.

UFC 웰터급 공식랭킹9위 김동현은 31일(한국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T 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UFC 207 대회에서 랭킹12위 타렉 사피딘(벨기에)을 2-1 판정으로 꺾었다. 옥타곤에서만 13번째 승리를 챙긴 김동현은 일본의 오카미 유신과 함께 역대 UFC 동양인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옥의 체급이라 불리는 웰터급에서 수년 째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김동현은 아시아가 낳은 최고의 UFC 파이터라 해도 손색이 없는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사피딘을 질리게 한 '스턴건'의 무한압박

 김동현은 UFC 17번째 경기에서 13번째 승리를 따냈다.

김동현은 UFC 17번째 경기에서 13번째 승리를 따냈다. ⓒ UFC.com


김동현은 전날 열린 계체 행사에서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관중들을 웃게 했다. 진지한 자세로 계체에 임하던 사피딘과는 대조적인 모습. 하지만 김동현은 계체가 끝난 후 사피딘과의 대면에서 완전히 바뀐 비장한 표정으로 사피딘을 응시했다. 도미닉 크루즈와 코디 가브란트 같은 날카로운 신경전은 없었지만 계체 행사에서 흔히 나오는 형식적인 악수나 포옹도 없었다.

본인과 상대의 부상으로 13개월 만에 치르는 복귀전이었지만 김동현의 얼굴엔 여유가 묻어 있었다. 햇수로 9년, 통산 17번째 옥타곤에 오르는 베테랑 파이터의 연륜이었다. UFC의 규정 때문에 약속했던 예능 프로그램의 챔피언 벨트는 차고 나오지 못했지만 대신 태극기를 양손에 높이 들고 입장을 했다(UFC가 국가대항전은 아니지만 김동현이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파이터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사피딘은 경기 초반 의외로 타격전 대신 그라운드 싸움을 걸고 나오며 김동현을 당황시켰다. 김동현의 영역인 그래플링 대결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김동현은 테이크다운을 당한 후에도 곧바로 일어나며 뛰어난 방어를 선보였다. 사피딘은 1라운드 중반부터 특유의 거리싸움을 이용한 스탠딩 타격전으로 김동현에게 많은 유효타를 날렸다. 김동현은 사피딘의 만만치 않은 타격에도 압박을 늦추지 않고 전진을 계속했지만 원하던 그라운드에서의 상위포지션을 점유하진 못했다.

1라운드에서 근소한 열세를 보였던 김동현은 2라운드에서 사피딘을 옥타곤 구석에 몰아넣고 클린치 싸움을 이어갔고 이 과정에서 사피딘의 안면에 효과적인 펀치를 꽂아 넣었다. 라운드 후반에는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는 듯 했지만 사피딘이 빠른 시간 안에 빠져 나왔다. 양 선수는 3라운드 초반 불꽃 튀는 타격공방을 펼치다가 클린치 공방을 벌이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김동현은 경기 종료 직전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키며 인상적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사피딘과 막상막하의 승부를 펼친 김동현은 2-1 판정으로 사피딘을 꺾으며 아시아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웠다. 비록 기대했던 화끈한 피니시는 아니었지만 김동현은 끊임없는 압박전략으로 사피딘을 질리게 만들었고 결국 승리를 가져 왔다(경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현장 인터뷰는 이어지지 않았다). 더불어 김동현은 조르쥬 생피에르, 맷 휴즈, 조쉬 코스첵에 이어 역대 UFC 웰터급 최다승 공동4위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가브란트와 누네즈, 도박사들 예측 비웃다

 로우지에게 모든 관심이 쏠렸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누네즈였다.

로우지에게 모든 관심이 쏠렸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누네즈였다. ⓒ UFC.com


준메인이벤트로 펼쳐진 남성 밴텀급 타이틀전에서는 도전자 가브란트의 패기가 챔피언을 침몰시켰다. 계체 행사 때부터 크루즈와 난투극 직전까지 가는 엄청난 신경전을 벌였던 가브란트는 경기 시작부터 챔피언 크루즈를 도발했고 1라운드 후반에는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경기 초반 분위기를 주도한 쪽은 분명 크루즈가 아닌 가브란트였다. 수많은 파이터를 울렸던 크루즈의 화려한 스텝도 가브란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가브란트는 3라운드 초반 강력한 하이킥을 적중시키면서 경기를 완벽히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왼쪽 눈 주변에 출혈을 일으킨 크루즈는 조급하게 경기를 풀어가다가 가브란트에게 큰 공격을 수없이 허용했다. 결국 경기 도중 춤을 추는 여유까지 부린 가브란트는 챔피언 크루즈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새로운 UFC 밴텀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크루즈에게 2번이나 패했던 팀 알파메일의 수장 유라이아 페이버도 후배로 인해 한을 풀었다.

국내에서는 김동현의 경기가 열리는 대회로 알려졌지만 사실 현지에서 UFC 207은 '암바여제' 론다 로우지의 복귀전이 열리는 대회로 훨씬 유명했다. UFC 입성 후 처음으로 도전자 자격으로 입장했지만, 로우지의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과거보다 훨씬 단단해진 근육은 그 동안의 훈련량을 말해주는 듯 했다. 라스베가스 관중들도 엄청난 함성으로 여제의 귀환을 환영했다. 오히려 챔피언 아만다 누네즈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을 정도.

하지만 충격적인 패배를 딛고 돌아온 로우지의 복귀전은 허무하게 마무리됐다. 경기 시작과 함께 누네즈와 타격 공방을 벌인 로우지는 누네즈의 강력한 펀치를 여러 차례 허용하며 다리가 풀렸다. 로우지는 거리를 벌려 가며 몸을 추스르려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타격을 허용한 로우지는 누네즈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허브 딘 주심은 더 이상 경기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해 스탠딩 상태에서 경기를 중단시켰다.

13개월 만의 복귀전에서 또 한 번 충격패를 당한 로우지는 경기 결과를 듣자마자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언제나 자신이 승리하던 무대에서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으니 그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컸던 모양이었다. 반면에 누네즈는 미샤 테이트에 이어 로우지도 꺾으면서 명실상부한 UFC 밴텀급의 최강자로 등극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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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김동현 타렉 사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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