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혹은 대학 아마추어 선수들은 졸업 학년에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한다. 마치 고3이 수능 이후 대학에 원서를 내듯 자신이 교내 팀에서 보인 성적으로 프로 팀에 이력서를 내는 셈이다. 프로 구단은 이를 면밀히 파악해 대성할 선수를 중심으로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한다.

그런데 지금껏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받은 이들이 모두 잘 된 건 아니다. 오히려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받았지만 더 잘 나가는 선수들도 많다. 그렇다면 그 많던 상위 라운드 지명 선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이들 중심으로 현재 활동을 알아보았다.

1. 성남고 천재 내야수 고영민(2002년 2차 1라운드 두산 베어스)

한 때 잘 나가는 2루수였던 고영민 고영민을 2017시즌에 다시 볼 수 있을까?

▲ 한 때 잘 나가는 2루수였던 고영민 고영민을 2017시즌에 다시 볼 수 있을까? ⓒ 두산 베어스


천재 내야수로 이름을 날리던 고영민. 고영민의 모교인 성남고는 2000년 청룡기 고교야구를 제패했던 최강 팀이었다. 그 당시 고영민은 한 학년 후배였던 지금은 KT 위즈에서 뛰고 있는 박경수와 함께 성남고 키스톤 콤비를 이뤘다.

2002년 2차 1라운드로 상위 지명된 고영민은 2006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2007년엔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해 군면제를 받고 2009년 WBC에도 출전한다. 고영민은 화려한 커리어와 함께 '이익수', '변태주루', '변태수비', '국가대표 2루수' 등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다녔지만 이후 2009년부터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안고 살게 된다.

재활군과 2군, 1군을 오가다가 2015시즌 후 우여곡절 끝에 FA 자격을 얻게 되지만 아무도 그를 원하는 팀이 없었고 결국 다시 두산 베어스와 1+1년 5억원이라는 초라한 조건으로 도장을 찍게 된다. 하지만 2016시즌 후 두산 베어스가 +1년의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그는 현재 다른 팀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몸상태만 좋다면 수비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선수이니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길 바란다.

2. 좌완 파이어볼러 전병두(2003년 2차 1라운드 두산 베어스)

은퇴식 날 1군 마운드에 올라선 전병두 1군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오랜 기간 재활을 했지만 결국 은퇴식날이 되어서야 올라올 수 있었다.

▲ 은퇴식 날 1군 마운드에 올라선 전병두 1군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오랜 기간 재활을 했지만 결국 은퇴식날이 되어서야 올라올 수 있었다. ⓒ sk와이번스


SK 왕조 시절의 전천후 좌완 투수. 전병두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3년 두산 베어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8순위 상위 지명을 받는다. 이 젊은 좌완 투수는 두산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는 않았지만,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고 2005년 7월 리오스, 김주호 이 두 선수와 2:1 트레이드로 기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 된다.

2005년부터 기아에서 공을 던지면서 나름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한 성적을 거뒀는데 2008년 5월에 기아는 전병두, 김연훈을 SK에 주고 이성우, 채종범, 김형철을 데려오는 2:3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그의 세 번째 이적이었다.

의도치 않게 저니맨이 된 전병두는 2008년 SK로 와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2008년 트레이드 후 6경기에서 5번의 선발 출장을 하였고 21이닝을 던져 1승 1패 2.5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후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김성근 감독 밑에서 선발, 중간,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나왔고, 3년 간 총 293.1이닝을 던져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팀의 2010년 우승에 큰 공헌을 한 선수였다.

그를 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어주었던 김성근 감독이 2011년 8월에 경질된다. 그리고 이후 SK 투수들이 줄줄이 수술대에 오르게 되고 김성근 감독의 혹사 논란이 불거졌는데 수술을 받은 이들 중 한 명이 전병두였다. 그를 정상급 좌완 투수로 만들어준 감독이기도 했지만 부상을 안긴 감독이기도 했다. 전병두는 왼쪽 어깨 회전근 재건 수술을 받았는데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재활군에서 복귀를 노렸지만 결국 컨디션이 예전 상태로 돌아오지 못 했다. 전병두는 2016년 10월 8일 은퇴식 이전까지 다시는 1군 마운드를 밟지 못 했다.

3. 사이드암 145km, 이왕기(現 이재율)(2005년 1차 지명 롯데 자이언츠)

힘차게 공을 뿌리는 이왕기 수많은 선수들이 입스로 인해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이왕기도 그 중 한 명이다.

▲ 힘차게 공을 뿌리는 이왕기 수많은 선수들이 입스로 인해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이왕기도 그 중 한 명이다. ⓒ 롯데 자이언츠


부산고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이왕기.(현재는 이재율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지만 이왕기로 표시하겠다.) 그는 사이드암이면서 145km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였다. 2003년 대통령배에서 중간 계투로 나와 7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왕기는 2005년 롯데 자이언츠의 부름을 받았다.

2005년 양상문 감독이 이끌었던 롯데에 입단하자마자 1군 마운드에서 활약한 이왕기는 패전조부터 시작해 필승조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그에게 입스(yips, 불안증세)가 찾아온다. 인터뷰에 나온 그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2006년 시즌 앞두고 스프링 캠프를 소화하며 어느 때보다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노장진 선배가 나간 마무리 자리를 놓고 나랑 최대성이 후보로 꼽힐 정도였다. 기대를 갖고 대구 원정에서 시즌 개막전을 치렀고, 첫 게임에서 세이브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사직 홈으로 돌아와서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됐다. 4점차 상황에서 경기 막판에 올라갔는데 투수 발판이 미끄러워 스파이크가 계속 미끄러졌다. 결국 홈런 2방을 맞고 최대성으로 교체됐다. 다음날 윤학길 투수 코치님이 발판이 미끄러워지지 않게끔 만져주셨는데 이상하게 마운드에 오르면 미끄러워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때부터 자신감 없는 투구를 계속했다. 구속은 148km까지 끌어 올렸는데 제구가 안됐다. 필승조에서 점차 패전조로 신분이 뒤바뀌면서 내 야구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그 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중)

그리고 2007년 5월 22일 광주 기아전에서 12회초 이종범 선수 머리에 공을 맞추는 헤드샷 사건이 발생하고 이왕기는 6월에 1군에서 말소된다. 그 후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8년 상무에 입단하지만 제대를 7개월 앞두고 십자인대 파열을 당해 의병 제대를 했다. 물론 재활을 거쳐 다시 롯데에 복귀했지만 끝내 1군 마운드에 못 오르고 2012년을 끝으로 방출당한다. 2013년에 당시 선동렬 감독이 이끌었던 기아 타이거즈에서 그의 손을 잡아주지만 3군에만 머무르다가 시즌 후 다시 방출당한다.

입스를 고쳐보려고 김성근 감독이 이끌었던 고양 원더스에도 입단한 이왕기. 이름도 이재율로 개명하며 각오를 다지지만 입스를 고치지 못한 채 2014년을 끝으로 그는 다시는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현재는 기아 타이거즈에서 스카우터로 일하고 있다.

4. 광주일고 에이스 고우석(2003년 1차 지명 기아 타이거즈)

광주일고에서 김대우와 원투펀치로 활약하다가 기아 타이거즈로부터 1차 지명을 받은 투수. 고우석은 고교시절 대통령배와 청룡기, 황금사자기 등 모두 8경기에 출전해서 30.2이닝동안 삼진 29개를 빼앗으며 방어율 3.82로 모교의 대통령배와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청룡기에서는 3승을 거두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해 팀 공헌도를 인정받던 전도유망한 선수였다.

입단 첫 해에 58이닝을 투구하면서 3승 1패 2홀드 3.8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팬들에게 기아 마운드의 미래를 이끌 자원으로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면서 팬들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고, 이듬해 병역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상무에 입대한다.

고우석은 상무에서 2005년 5월 8일 열린 현대와의 2군 경기에 등판해 9이닝 던지는 동안 30타자를 상대하며 몸에 맞는 공 1개와 2개의 볼넷, 8삼진을 기록하며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며 다시 팬들의 기대를 받게 된다. 하지만 2006년 어깨 충돌 증후군 수술을 받고, 2007년 3경기에 나와 5이닝 6실점 10.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한다. 2012년 4월엔 연장 승부에서 등판해 1.2이닝을 던지고 2003년 9월 10일 이후 3138일 만에 승리를 챙기기도 했지만 결국 2012년 시즌이 끝나고 팀에서 방출되었다.

5. 혜성 같았던 신인, 제춘모(2002년 2차 1라운드 SK 와이번스)

말 그대로 혜성 같이 등장했다.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 우선 지명으로 뽑힌 선수. 2002년 스무살 나이로 그리 강한 팀이 아니었던 SK에서 30경기에 나와서 27경기 선발등판을 했고, 총 146이닝을 던져 9승 7패 4.6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니 말이다. 이듬해엔 35경기에 나왔고 10승 6패로 SK 투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한몫 했다.

하지만 2004년 어깨 부상으로 4승에 그친 뒤 선발 자리에서 이탈한다. 그는 2005년에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다가 2008년 4월 팀에 복귀했다. 하지만 너무 운동을 쉰 탓일까? 구속이 130km도 나오지 않았고 2군을 전전했다. 2009년부터 2년 간은 1군 출장 기록이 총 4경기였고, 2011년엔 그마저도 없다. 아예 1군에 올라오지 못 했다.

2012년에는 1군에서 세 차례 선발 등판을 했고 비록 승은 없었지만 그 해 5월 17일엔 7이닝 동안 109개의 투구를 해 3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탈삼진 1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호투를 펼치기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제춘모는 2014년 0.1이닝 1실점 27.00의 기록을 끝으로 프로생활을 마감했고 현재는 SK 코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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