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자립심을 키워준다. 바닥에 떨어지면 쉽게 깨지는 유리 식기 대신,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식기를 구비한다. 집 안에 압축 손잡이를 설치해 혼자서도 집 안을 누빌 수 있게 해준다. 삶을 살아갈 때 위축되게 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나아가 장애인의 일상생활, 학습, 여가 활동 등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도움을 주는 공학을 학문적 용어로 '보조공학'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말하는 보조공학은 유형의 기계(機械)부터 무형의 서비스(보조공학 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반의 것)를 말한다.

 형인 고두식은 동생 고두영의 자립을 돕는다.

형인 고두식은 동생 고두영의 자립을 돕는다. ⓒ CJ엔터테인먼트


살아있는 보조공학이 된 조정석

유도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던 동생 고두영(도경수 분)은 불의의 사고로 실명한다. 고두식(조정석 분)은 감형을 위해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15년간 연락도 하지 않았던 동생을 찾아간다. 처음엔 티격태격 하지만 이내 형 두식은 때론 동생의 눈이, 믿음직한 심리적 기둥이 돼 사고 이후 두문불출하던 두영을 한발짝씩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영화 초반 깔린 '영화를 위한 이야기'들이 끝나면 본격적인 보조공학으로 두식의 역할이 시작된다. 두식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동생에게 장애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늘 말해준다. 연애에서도 늘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위트 있는 대사로 두영이 가진 장애의 짐을 내려놓게 한다. 때론 두영의 길잡이가 돼 한쪽 팔을 내어 준다. 두식은 두영이 가진 장애의 짐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두영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후반부에는 '흰 지팡이'를 구매해 두영에게 선물해 준다. 자존심 때문에 지팡이를 쓰기 싫어했던 두영에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 더 '간지'가 난다"는 말을 해주며, 두영이 생각하는 지팡이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부끄러움과 불편함의 해소, 그리고 독립

 영화 <형>의 배우 박신혜.

영화 <형>의 배우 박신혜. ⓒ CJ엔터테인먼트


두영의 유도 코치였던 이수현(박신혜 분) 역시 하나의 보조공학으로 다가왔다. 수현은 두영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운동을 그만둔 것을 늘 아쉬워했다. 아쉬움이 큰 만큼 그는 두영이 다시 운동하기를 원했고, 두영에게 '패럴림픽 출전'을 권한다. 하지만 두영은 자신이 가진 장애가 부끄러워 도전하기를 꺼렸다. 그때 수현은 "불편한 건 도와줘도 부끄러운 건 못 도와준다"라는 말을 하며 두영의 마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여기에 두식의 권유까지 얹혀 두영은 다시 운동을 하게 되고, 패럴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두영은 두식과 수현을 통해 부끄럼과 불편함을 해소했다. 자립심과 독립심도 갖게 됐다.

학문으로써의 보조공학, 실생활에서의 보조공학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장애인의 자립심과 독립심 고취에 있다. 많은 부모가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 없어도 스스로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고 사회에 적응하길 원한다. 그리고 그게 맞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은 그들의 권리다. 동시에 그들이 사회에 거리낌 없이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국가의,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 사회의 의무다.

기계로서의 보조공학이 물리적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보조공학이라면, 국가와 우리의 의무는 서비스적 보조공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은, 두 가지 모두 발맞춰 나가야 한다는 데에 있다. 성숙한 사회라면 장애나 장애인을 부정적 시선으로 보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형>은 '내가 사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는 성숙한 사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영화 <형>은 유쾌하게 풀었지만 울림이 남는 영화였다.

영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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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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