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의 한 장면.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의 한 장면. ⓒ 시네마달


국민의 다수의 반대 속에,지난 28일 국정 역사교과서가 베일을 벗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국민이 검토해 달라"고 했다. '복면 집필' 등 무수한 비판과 추측에 휩싸였던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시나 현장검토본이 공개되자마자 논란과 비난의 소용돌이에 또 다시 휩싸였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대리 집필 의혹 속에, 현대사 영역 집필진에 순수 역사학자가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는 이 코미디와 같은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을 위한, 잘라 말해 오로지 '아버지 미화'를 위해 '봉헌'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비극은 이러한 영향 아래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 '친일'이 그 뿌리로 박히게 되면서 내용 역시 (부정적인 면의)미화나 (긍정적이니 면의)축소가 이뤄진다는 점이리라.

교육부의 검토본에서 유관순 열사의 내용은 축소되고, '박정희' 관련 서술이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와 관련해, 철학자인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박근혜 정부가 벌인 가장 비극적 행위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려고 한 거다. 마치 이승만 정권이 우리 대한민국의 정통성인양, 임시정부 역할도 부정하고 말이다. 이 역시 고대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경거망동을 일삼은 거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우리 역사가 얼마나 끊임없이 조작돼 왔는지 알 수 있다. 최순실 같은 인간조차 뭔가 조작해서 우리 민족을 완전 자기의 죄악의 은폐 수단으로 생각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우리 역사가 왜곡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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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성 부정은 이 정부의 비극적 행위"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 관련 인터뷰로 <오마이스타>를 만난 도올 김용옥.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 관련 인터뷰로 <오마이스타>를 만난 도올 김용옥. ⓒ 이정민


자신이 주연(?)을 맡은 다큐멘터리 <나의 살던 고향은>(24일 개봉)에 대해 도올은 "(박근혜 정부가 벌이고 있는 역사 왜곡) 여기서 해방시키는 역할, 역사에 대한 감을 잡는 역할을 이 영화가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 '역사에 대한 감'은 해방 이후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친일'의 망령을 제거할 수 있는 또 다른 민족적 지평일 것이다.

도올은 이 지평을 바로 '고구려'에서 발견코자 한다. 눈 빠른 관객들은 이미 <나의 살던 고향>의 영어 제목 'GOGURYEO'에서 알아챘을지 모른다. JTBC <도올은 차이나>를 시청했던 관객들이라면, "지금부터 단군 이래 없었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한다"며 "고구려사는 곧 현대사다"라던 도올 특유의 일성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은 이 연장선상에서 광활했던 옛 고구려 땅을 찾아 떠난 도올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부터 극장용 다큐멘터리는 아니었단다. 중국 연변대학에서 객좌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엮은 <도올의 중국 일기>를 온라인 기록물로 남겼고, 영화화를 위해 이 영상을 '제대로' 매만졌다.

그리하여, 한국 극장가에서 흔히 만나보기 힘든 무게 있는 '에듀멘터리'(에듀케이션+다큐멘터리)가 탄생했다.  물론, 그 중심엔 인지도 면에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대중 철학자 도올이 있다. 
 

도올이 전하는 흔치 않은 '고구려' 에듀멘터리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의 한 장면.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역사가가 역사를 쓰려면 땅을 밟아야 한단다. 성벽을 타고 올라서도 쉼 없이 말을, 강의를 이어간다. 광개토대왕비를 찾아가선 공안 모르게 '몰카'를 찍다 걸려선 촬영에 지장(?)을 주기까지 한다. 브라운관에서 만난 듯 친근하다가도 어느새 진중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서재인 듯한 공간에서 편안하고 또 심각하게 주제와 관련된 이어갈 때면 영락없는 철학자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 도올은 주몽의 최초 도읍지인 옛 '환인' 지역, 지금의 흘승골성에서부터 이집트 피라미드에 버금간다는 환도산성의 무덤 떼, 한국인들에게 파헤쳐져 더 안타까운 미천왕의 서대묘, 압도적인 스케일의 광개토대왕비, 북한에 인접한 압록강변, 현재까지 성곽터가 남아 있는 발해 도읍지 등을 두루두루 돌아본다.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탄식하며, 감격에 겨워 삼배며 오배까지 절을 올리기도 한다. 중국에서든 한국에서든, 고구려의 기상과 현재적 의미를 설명하는 도올의 목소리는 끊임이 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친근하고 친절하다.

이러한 여정과 중간 중간 삽입된 도올의 영상 강의가 가리키는 지점은 결국 대한민국 국민들이 넓힐 수 있는 상상의 영토다. "우리의 역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영토에만 갇혀서, 전 우주를 배경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도올의 주장은 <나의 살던 고향>을 통해 그럴 듯한 피와 살을 부여 받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세계의 중심축이라 생각했던 고구려인들의 거대한 세계관이 우리 역사의 진행과 더불어 축소되어 내려간 것을 반성해야 한다. 과연 오늘날 조선왕조를 거쳐서 오늘의 문명국을 건설했다고 하는 우리들이 과연 우리 자신을 이 거대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런 기개만이라도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도올이란 일개 철학자의 주장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올의 생생한 강의 위로 펼쳐지는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와 유적들은 분명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더욱이 도올은 지금껏 변치 않고 버티고 선 그 지역에 일본군에 쫓기던 독립군이, 만주와 연변을 드나들던 선조들이, 그리고 그와 멀지 않은 거리에 북한 동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시진핑 주석과 중국 정부의 현재를 분석하는 도올이 그리 호락호락 고대사만 읊을 거란 선입견을 가졌다면,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국정 역사교과서 시대를 위한 다큐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의 포스터.

영화 <나의 살던 고향은>의 포스터. ⓒ 시네마달


<나의 살던 고향은>은 그러나 도올이 중심이면서 도올의 '얼굴'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실제로도 그렇다. 카메라는 도올이 가리키는 그 옛 고구려 영토들에 더 관심이 많다. 추위와 싸워야 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그 '광활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에듀멘터리'라 밝혔듯, 비록 '여행다큐'는 아니지만 도올의 철학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서적인 환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류종헌 감독은 "도올 선생님이 느낀 그 감정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나이 칠십에야 (이 지역을) 찾아왔다고 한탄"하는 도올이 전하고자 하는 그 대륙, 아니 고구려의 스케일은 류 감독의 영상과 도올의 설명이 곁들여지며 관객들에게 한층 더 쉽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영화의 말미, 도올은 강 건너 북한의 모습을 바라보고, 옛 고구려의 영토를 상상하며 눈시울을 적신다. 그리고 직접 학생들과 불러 젖히는 가곡이자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은'은 묘하고 찡한 감흥을 전달한다.

언뜻 '국정 역사교과서 시대에 필요한 다큐'라는 <나의 살던 고향은>의 홍보 문구가 다시 눈에 들어 왔다. 역사 교육은 결국 역사관과 세계관을 어떻게 키우고 기를 것이냐의 문제다. 이 정부가 기를 쓰고 박정희 정권과 유신을 미화시키려는 이유이고, 또 도올이 이 정부의 비극을 "정통성 부정"이라고 비판하는 맥락도 다르지 않다. '건국절 논란'도 마찬가지고.

도올이 비판하는 그 협소한 역사관과 세계관이 통일신라 중심의 역사 기술이 주를 이루면서 공고히 됐다는 사실은 여러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도올은 그래서 <나의 살던 고향은>을 통해 고대사부터 현재를 가로지르는 '광활한 상상력'과 '민족적 기개'에 대해 논한다. 중국과 관련해, 현 중국의 경제력이란 '달'만이 아니라 과거 그 영토와 결부됐던 민족사란 '숲'을 보자고 말하는 셈이다. 과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는 배제하는 균형을 견지한 채로. 

2016년에 맞이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무후무한 퇴행의 시대, <나의 살던 고향은>은 분명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의 어떤 대안이자 일부 보완재로 기능할 수 있는 다큐다. '에듀멘터리'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새삼 도올이란 철학자가 달리 보일 만큼.   

도올 나의살던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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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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