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애담>의 한 장면.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니, 참 반갑다.

영화 <연애담>의 한 장면. 이런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니, 참 반갑다.ⓒ 인디플러그


이 여자 윤주(이상희 분), 32살 미대 대학원생인 그는 졸업 전시를 앞두고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우연찮은 두 번의 마주침. 저도 모르게 호의를 베푼 그 감정이 끌림인지 호감인지 중요치 않다. 그래서, 연애와 담을 쌓고 살아왔음에도, 처지가 그리 넉넉지 않음에도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

이 여자 지수(류선영 분), 편의점에서 자신에게 담배를 대신 사준 '그 여자'가 싫지만은 않다.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라고는 하지만, '알바'하는 가게까지 찾아온 그 여자는 꼭 자기를 보러 온 것만 같다. 한데, 그 감정이 사실은 낯설지만은 않다. 지수에겐 딱히 그 만남에 용기가 필요치는 않아 보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이현주 감독의 데뷔작 <연애담>은 오롯이 이 윤주와 지수의 만남과 관계에 (말 그대로) 집중하는 흔치 않은 한국영화다. 관계의 시작, 그 이후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그리는 이 동성 간의 멜로드라마는 그래서 더더욱 '감성'의 영역이 도드라진다. 언제나 그렇듯이, 멜로는 감성이 '8할' 아니던가.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사정

 영화 <연애담>의 한 장면. 생생하고도 절제된 두 사람의 베드신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영화 <연애담>의 한 장면. 생생하고도 절제된 두 사람의 베드신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인디플러그


용기를 낸 윤주가 지수에게 다가가고, 그런 윤주를 지수는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연애인지, 동거인지, 사랑인지 모를 관계가 지속하는 순간, 두 사람 모두에게 일상의 변화가 스며든다. 관계가 지속하면서 찾아오는 변화와 함께 외부로부터 결정된 환경적 요인까지 끼어든다. 그러나 끝끝내, 윤주의, 지수의 감정을 변화시킨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 '감정'의 여백을 채워 넣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흔치 않다'는 표현을 쓴 건 그래서다. 두 주연배우의 연기는 물론, 최대한 절제한 것 같은 음악이나 짧지 않은 호흡으로 정제된 편집 등 영화의 요소요소 모두 두 캐릭터의 감정과 감성을 되도록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대신, 과잉은 없다. 상업영화에서 지겹도록 보아온 "여기서 이런 감정을 터트려야 해"와 같은 '가이드라인' 식 음악과 편집, 촬영 말이다.

또 윤주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는 한 캐릭터에게 기울어졌다기보다 이 레즈비언 멜로를 '초심자'와 일반관객까지 아우르려는 감독의 배려와도 같아 보인다. <연애담>을 두고 '섬세함'과 '절제'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심지어, 표현 그대로 윤주는 '연애 입문자'다. 한국영화에 있어서 확실히 '낯선' 주인공 둘의 빈번한 '투 샷'이 거부할 정도가 아니라면, 충분히 절제됐지만 무척이나 생생한 둘의 베드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연애담>은 분명 감독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올해의 수확'으로 꼽힐 만한 장편 데뷔작이라 할 만하다.    

'한국판 <캐롤>'이라는 선입견을 버린다면

 영화 <연애담>의 한 장면. 동시대성을 가진,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영화 <연애담>의 한 장면. 동시대성을 가진,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인디플러그


지난 24일 기준으로 관객 1만 명을 돌파한 <연애담>은 지난 17일 개봉하기 전 이미 적지 않은 수의 '팬덤'을 확보하고 있었다. 상반기 개봉한 '레즈비언 멜로' <캐롤>(2월 개봉)이나 '퀴어'의 요소를 띤 <아가씨>(6월 개봉)의 자장이라 넘겨짚을 필요는 없다.

5만 관객을 동원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4)로 더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무의미하다. 단지,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를 통해 간간이 출현했던 퀴어 로맨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졌을 뿐이랄까. 퀴어 장르라는 한 우물을 파온 이현주 감독의 단편 <바캉스>(2014), <Distance>(2010)도 그런 작품이었다.

<연애담>에 호의적인 관객이라면, 바로 여기에 주목했을 것이다. 판타지의 요소나 장르적인 감성을 모두 걷어낸, 서구나 영미의 레즈비언 커플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자신을 감춘 듯 그러나 우리의 바로 옆에서 각자의 일상을 살아 내는 그 32살 윤주와 20대 지수의 삶을 펼쳐내는 그 동시대성 말이다.

퀴어영화가 으레 위치시킬 거라 예상되는 갈등요소도 최소화시켰다. <연애담>에서 성 소수자에게 들이닥치는 '한국식' 파국이나 신파적 감성은 찾아볼 수 없다. 지수의 아버지나 윤주의 친구가 가진 '호모포비아'와 대면할 때도, 담담해서 더 절절하다. 술에 취한 윤주가 이성애자인 남자 '사람' 친구에게 절절한 감정을 쏟아낼 때도, 카메라는 멀찍이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볼 뿐이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관습적 형식이라기보다 윤주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좀 더 냉정하게 전달하는 장치에 가깝다. 그리고 이 서늘한 카메라는 마지막 장면에서, 윤주와 지수의 애매모호한 감정을 잡아낼 때 그 기능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동시대성과 감정의 포착으로 말미암아 <연애담>은 사랑과 연애에 대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성애자'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작품이라 우길 생각은 없다. 아니, 확실히 그 반대편에 가깝다. 또래 여성들이라면 더없이 공감할 만한 미세한 감정의 결들이나 대사, 행동들에 공감했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는 데서 확연하다. 다만, 소수자성을 굳이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전이되는 감정들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주목할 만한 여성 감독, 배우들의 출현

<연애담>의 수확은 더 있다. 올 한해 영평상 감독상과 신인상을 받은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과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을 비롯해 개봉을 앞둔 <미씽: 사라진 여자>의 이언희 감독 등 여성감독들의 활약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을 추가해도 좋을 것이다.

섬세한 연출력을 바탕으로 단편부터 장편까지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이현주 감독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 궁금해진다. 이미 이현주 감독은 <연애담>으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제32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신인감독 경쟁 부문, 제35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부문, 제64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신인감독 경쟁 부문 등에 초청받으며 신인감독으로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물론 관객들의 눈에 먼저 들어온 이들은 두 배우의 앙상블일 것이다. 독립/단편 영화계에서 이미 '스타 배우'로 불리는 윤주 역의 이상희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으로 "<연애담> 발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수 역의 류선영.

<연애담>으로 관객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두 배우는, 아마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효신-시연' 이후 레즈비언 커플로는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주목받은 여배우로 남게 될 전망이다. 더불어 독립 장편극영화로서는 오랜만에 1만 관객을 돌파한 <연애담>의 잔잔한 흥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지켜보도록 하자.

 영화 <연애담>의 공식 포스터. 이 감독, 이 배우들을 발굴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큰 영화이다.

영화 <연애담>의 공식 포스터. 이 감독, 이 배우들을 발굴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큰 영화이다.ⓒ 인디플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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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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