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게이 친구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 그가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정체화하기 이전, 그는 같은 반의 동성 친구를 사랑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난생 처음 느끼는 감정 앞에서 당혹감을 느낀 그는, 마침 친구처럼 가감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학원 선생님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것이 자신에게 안겨준 당황스러움, 하지만 이를 누구에게 말 할 수 없다는 괴로움을 선생님에게 토로했다. 하지만 공감과 위로, 지지를 예상했던 그에게 돌아온 답은 다소 의외의 것이었다.

그 선생님은 그에게, 정말 그 감정이 사랑이 맞는지 혹시나 그 친구에 대한 깊은 우정을 사랑으로 오해한 것은 아닌지, 단지 그래서 느끼는 감정적 혼란은 아닌지 질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많은 수의 성소수자들이 처음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토로했을 때 비슷한 반응을 마주했다고 한다. 특히나 그 사람이 '미성숙'하다고 평가받는 청소년 시기였을 때 더욱 그러했다. 나는 궁금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유사한 상황을 겪게 된 걸까. 어째서 감정적 지지가 필요한 순간에, 그들은 자신을 진단하고 증상을 추궁하는 의사들을 마주하게 되었을까.

시험대에 오르는 사랑


흔히 사람들은 사랑이란 인종과 국경도 넘어선, 전 인류가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모든 사랑이 동일한 풍경을 마주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랑은 조금도 의심이나 질문받지 않으며,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심지어 권장되기도 한다. 가령 나의 경우 이성인 친구와 조금이라도 붙어다니면 '혹시 그 사람과 무슨 관계냐', '그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내가 극구 부인하면 돌아오는 답은 '이번 기회에 잘 해보라', '아직 잘 몰라서 그렇다'와 같은 것이다. 아마 내가 그 이성인 누군가와 단 5분만을 만나 후 '나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말해도, 아마 사람들은 내가 좀 유별나다고만 생각할 뿐 그 감정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늘상 질문을 마주하고, 계속해서 확인이 요청되고, 지속적으로 시험대에 오르는 감정이 존재한다. 그 사랑이 낯설거나 혹은 규범 바깥의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다. 가령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의 동성애가 그렇다. 이성간의 사랑만이 정상적이며 자연적이라는 믿음이 팽배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성애는 일탈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랑을 마주했을 때, 그 감정을 '잘 몰라서 하는 오해'나 '일시적 방황'으로 여기곤 한다. 이는 그 사랑을 마주한 이가, 이를 토로한 사람에게 애착이 있는가의 여부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가를 질문했다.

"글쎄, 간절함 같은 게 느껴졌어. 내 감정을 부인하지 말아달라는, 나를 스스로도 모르는 아이처럼 취급하지 말라는 간절함."

멈출 수 없는 감정

 이소라의 새 앨범 <그녀풍의 9집> 재킷

이소라의 새 앨범 <그녀풍의 9집> 재킷 ⓒ 세이렌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소라의 신곡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친구의 답이 떠올랐다. 이 노래에도 역시나 자신의 사랑을 질문받는 사람, 그 감정이 부인되는 화자가 등장하니까. 아마 화자의 사랑이 익숙치 않았던 누군가에게, 그 애정은 노래의 가사처럼 '보이지 않는 길'이나 '정상이 없는 산'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래에 등장하듯 그것을 헛수고나 무모한 짓이라 비웃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친구가 들었던 것처럼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설득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앞에서 화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 걸요'

나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그 친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유일하게 마주한 반응이 의심뿐인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할 수 있었냐고. 그 친구의 답은 이랬다. 그 감정을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말했고 자신도 가졌던 불확실함이 애정을 꺾을 수 없었을 때, 그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고. 노래의 가사처럼 자기가 그 사랑을 성취할 일말의 가능성도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 감정을 멈출 수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그것이 사랑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최근 새 앨범의 노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선공개한 이소라

최근 새 앨범의 노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선공개한 이소라 ⓒ 세이렌


'사랑이란 무엇인가'만큼 고루하지만 뚜렷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도 드물 것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고루하다'라고 느낄 만큼, 그 질문은 오랜 시간 계속 반복되어져 왔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질문에 대해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진 않다. 다만 나는 사랑이란 불가항력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저항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고, 그만큼 단단하기에 모든 질문과 시험을 뚫고 흘러가는 감정.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감정이 그런 종류의 것인지는 오직 당사자만이 확실히 알 것이다.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이 어떤 종류이든, 사랑을 느끼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던질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이 겨우 '의심'일까. 이미 괴로움을 겪는 사람에게 또 다른 시험과 혼란을 던져주어야 할까.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성소수자들 사이의 이소라에 대한 애정과 선호는 꽤 상당한 편이다.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그 마음이 비웃음 거리가 되고, 자신의 애정이 시험대에 오르는 경험은 이들에게 한 때의 과거였거나 현재진행형인 경우가 많은데. 하지만 나는 이소라에 대한 이 사랑이 성소수자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그런 인기가 빨리 사그라들기를 희망한다. 어떠한 사랑도, 그것의 다름으로 인해 불필요한 시험대에 오르거나 모멸당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친구들이 그녀의 노래를, 자신의 달라진 경험을 통해 이입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소라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성소수자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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