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연은 이제 막 스무살이 됐다. 그는 "스무살이 되면 뭔가 세상이 '짠'하고 바뀔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에 고작 한 살을 더했다고 해서 변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진전이나 박물관에 가면 성인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정말 별다를 게 없었다."

대신 성인이 된 그는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개인 SNS 계정으로 국가의 중요한 기념일을 챙기는 일들. 방송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후원하는 팔찌를 차고 나오는 일들. 그의 인스타그램은 그래서 3.1 5.18 8.15 등 국가의 대소사로 빼곡했다. 곽동연은 "그동안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내왔던 것 같아 나부터라도 기억을 하자고 마음 먹었고 내 인스타그램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기념일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그것이 곽동연이 생각한 변하려는 노력 중 일부였다.

<구르미 그린 달빛> 속 이영(박보검)의 곁을 지켜준 호위무사이자 둘도 없는 벗이었던 김병연 역의 배우 곽동연을 지난 4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

'갓병연' 이전에 '갓동연' 있었다

곽동연은 18살이던 2014년 당시 MBC <나혼자산다>에 최연소 출연자로 등장했다. 당시 방송에서 그는 14살에 대전에서 서울로 와 그때부터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교복을 능숙하게 다려입거나 홍삼이나 비타민을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은 그가 자취하는 모습을 모니터링하던 다른 '무지개 회원'들에게는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일상이었다.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김병연 역의 배우 곽동연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기 시작한 곽동연. "다른 친구들보다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나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를 당하니 '나이가 어리지 않은 건 뭐지?'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생각을 많이 했다." ⓒ 이정민


중학생 이후 여러 우연이 한데 겹쳤다. 원래 곽동연은 합기도를 6~7년 정도 하고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가수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또 우연한 기회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15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3년 정도 했는데 2년차부터 회사에서 연기 수업을 시켜주었다. 음악을 하는데 감성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그런데 재미가 있었다. 혼자 더 연습하고 관심을 기울였더니 오디션에 보내줬다. 그 작품이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었다." 곽동연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배우 김상호의 아들 방장군 역을 맡았고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연습실-학교-집 이런 반복된 생활이 답답했고 밖에 나와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좋았다. 함께 소통하고 연기를 하다 보니 자유로웠고 답답함도 해소되더라. 그리고 연습생 생활을 접었고 연기 쪽으로 돌아섰다."

'미련은 없냐'고 넌지시 찔렀더니 "아니"라는 강한 대답이 돌아왔다.

"안 한다. (후회) 안 한다. 그때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고 연기에 집중했던 선택이 인생에서 탑5 안에 드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만난 <구르미 그린 달빛>

스무살이 되던 해 곽동연은 <구르미 그린 달빛>을 만났다. 그는 이 드라마가 "운명"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행운으로 느껴진다"고 그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촬영장에 가는 것이 매일 기다려졌고 참,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가 맡은 김병연이라는 역할의 캐스팅이 늦었지만 그는 머릿속에서 병연을 상상해갔다. "작품에 합류하기 전부터 시놉시스를 보았고 병연이라는 인물이 제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던 곽동연은 낮에는 액션스쿨에 가서 무사로 분하기 위해 연습을 했고 밤에는 대본을 붙잡고 인물을 분석했다.

"일본의 만화를 영화화한 <바람의 검심>을 많이 참고했다. 원래 재밌게 본 영화인데 병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시 생각이 나더라. <바람의 검심> 속 주인공인 켄신과 병연의 검술이 비슷했던 것 같다. 빠르고 날렵하게 움직이는 검술 스타일 같은. 그런 동작들을 어떻게 해야 멋있을지 참고했고 특히 엄청난 실력을 가진 무사들의 특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김병연 역의 배우 곽동연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기 공부를 참 꼼꼼하게 한다"는 말에 "이럴 때라도 공부 많이 해야죠"라는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 이정민


그는 여기서 직접 주먹을 쥐고 칼을 뽑는 모양을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말이 빨라졌다.

"드라마에 많이 나오지 않은 부분이긴 한데 검술을 할 때 칼을 정확하게 잡는 걸 '정검', 날이 뒤로 오게 잡는 걸 '역검'이라고 한다. 액션팀 형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를 하다보니 '정검'과 '역검'의 효과가 다르더라.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 혼자 알면 재밌으니까. 병연이 '정검'도 쓰지만 '역검'도 쓰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서 많이 반영됐다. 또 마지막 회에 보면 이영을 지켜보며 병연이 대나무 같은 걸 짚고 있다. 실제 역사 속 인물 김병연(훗날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추정)이 삿갓을 쓰고 죽창을 짚고 다녔다. 얼핏보면 대나무처럼 생겼지만 뽑아서 검으로 쓸 수 있는 걸 죽창이라고 한다. 실제로 소품팀에 죽창이 있는지 물어봤고 있다고 하셔서 (사용하게 됐다.)"

그가 공들여 준비한 김병연은 그렇게 "이영의 지렛대이자 아픈 손가락"(곽동연)이 됐다. "이영과 함께 성장했고 또 믿음을 주고 받는 '기브앤테이크'가 확실한 관계였다." 이영에게 받은만큼 그 또한 이영에게 주는 존재였던 김병연. 그랬기에 마지막회 역시 만족스러웠던 게 아닐까.

"사실 죽을 뻔했다가 죽지 않고 살아난 병연에 대해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 작가님께서 영이나 라온, 병연이는 힘들게 자라서 마지막까지 아픈 모습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다더라. 나를 죽이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영이나 죄책감을 가질 라온이나 전체적으로 슬퍼질 것 같다고."

피곤한 게 어른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김병연 역의 배우 곽동연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동연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도 책임감을 지는 것이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 이정민


이제 막 성인이 된 그에게 관례처럼 '어른'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스무살이 되니 주변 어른들과 술을 한 잔씩 한다"던 그는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른이 되고 안 되고는 책임감이 결정하는 것 같더라"고 답을 했다. "내 생각에 책임감이라는 게 꼭 자신이 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에도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같다."

그 대답의 연장선에서 그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가적 기념일을 기억하는 것 같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것들에 관심을 두는 일"을 언급했다. 그것이 어른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단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도 책임을 지려면 참 피곤할 것 같다"는 물음에 대한 곽동연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그게 어른인 것 같다. 피곤한 게. 진짜 어른들은 다들 피곤하게 살더라. 그리고 그게 피곤하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진짜 어른인 것 같다. 나는 어른이라는 '존재'와는 거리가 있고 빨리 그렇게 되고 싶진 않다. 몸소 느끼면서 변하고 싶다."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김병연 역의 배우 곽동연이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동연은 "메시지나 교훈이 있는" 그리고 "7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시청자가 많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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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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