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중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중국 축구협회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하여 리피를 새로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리피 감독은 유벤투스-인터밀란 등 명문팀들을 지휘하며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명장이다. 2006년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독일월드컵 우승까지 일궜다. 2012년부터는 '중국의 맨시티'로 불리는 광저우 헝다 지휘봉을 잡고 중국 슈퍼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달성하며 중국과 아시아 축구 사정에도 밝다. 세계 축구 역사상 유럽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우승을 모두 거머쥔 감독은 리피가 유일하다.

중국 축구는 현재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1무 3패의 성적으로 A조 최하위에 그치고 있다. 가오 홍보 전 감독은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중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선 진출을 일궈냈지만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탈락했고 이후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못하고 있다.

외국인 감독의 영입은 중국 축구로서 분위기 반전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인 셈이다. 중국축구협회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광저우 헝다) , 그레고리오 만사노(베이징 궈안), 스벤 고란 에릭손(상하이 상강), 거스 히딩크 감독 등 다양한 외국인 명장들을 후보군에 올렸으나 결국 중국축구에서도 가장 신망이 높고 검증된 경력을 지닌 리피 감독을 최종적으로 낙점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 위한 마지막 승부수 던진 중국

한국축구로서도 리피 감독의 등장은 신경이 쓰이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A조에 속해 있다. 한국은 지난 9월 홈에서 열린 중국과의 1차전에서 3-2로 신승했으나 내용 면에서는 꽤 고전했다.

한국은 현재 2승 1무 1패로 조 3위에 그치고 있어서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설까지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하다. 남은 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승점을 만회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과는 내년 3월 원정경기를 남겨두고 있는데, 리피처럼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명장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

백전노장인 리피 감독은 광저우 사령탑 시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통하여 K리그 구단들과도 여러 차례 격돌한 바 있어서 한국축구에 대하여 잘알고 있다. 이탈리아 대표팀 사령탑을 두 번이나 역임했을 만큼 대표팀 운영과 월드컵에 대한 노하우도 풍부하다.

하지만 리피 감독이 부임한다고 해서 중국이 당장 달라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리피 감독은 2010년 이탈리아 대표팀의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을 기점으로 지도자로서 하향세를 걷고 있는 감독이었다.

광저우에서의 성공도 구단의 막대한 투자와 외국인 선수들의 비중이 컸다는 분석이다. 리피 감독이 광저우 지휘봉을 잡을 때만 해도 중국 슈퍼리그는 광저우 외에는 그 정도의 선수층을 구축한 팀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장쑤, 상하이, 베이징 등 수많은 구단들이 경쟁적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철저하게 자국 선수들만으로 구성된 대표팀에서도 리피 감독이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최근 '축구굴기'를 표방하며 자국 축구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지만 정작 대표팀의 경쟁력은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중국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엄정난 자본을 앞세워 수준급 외국인 선수와 지도자들을 대거 영입하며 단기간에 전력을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정작 자국 선수 육성이나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는 부족한 실정이다.

오히려 과거 사우디나 카타르처럼 실력이 떨어지는 자국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서 비싼 몸값을 받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기량이 정체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부족하다. 태업이나 파벌 문화가 만연하는 등 자국 선수들의 프로의식 역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바 있다. 호세  카마초(스페인)-알랭 페렝(프랑스)-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세르비아)-아리에 한(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감독들이 중국대표팀을 거쳐갔다. 하지만 일시적인 성과를 거둔 적은 있어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대부분이 성적 부진으로 인한 여론의 압박과 중국축구계의 텃세, 그리고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며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리피, 중국 외국인 감독 잔혹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국내에서는 최근 이천수 해설위원의 '중국 현지화' 발언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외국인 선수들이라고 해도 중국에서 2~3년 뛰다보면 중국 리그 수준에 맞게 하향평준화가 되어버린다는 지적이다. 물론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틀린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는 선수만이 아니라 감독도 마찬가지다. 구단의 든든한 재정지원과 외국인 선수들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클럽은 그래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중국 대표팀은 전혀 다른 환경이다.

리피 감독의 경력을 돌아봐도 그가 이끌었던 유벤투스나 이탈리아 대표팀, 광저우 등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팀들이이었다. 하지만 전력이 떨어지는 약체팀이나 리빌딩이 필요한 팀을 오랫동안 이끌며 성적을 낸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리피 감독은 이미 칠순을 바라보는 고령이기도 하다. 광저우 감독에서 사임한 것이나 이전에도 중국대표팀 감독을 제의받고도 한 번 거절했던 이유 역시 나이로 인한 체력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부족한 시간과 열악한 환경, 그에 반비례하는 높은 기대치 속에서 리피 감독이 중국축구의 부활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리피 감독 역시 중국대표팀을 거쳐간 역대 외국인 감독처럼 '중국화'가 되어버리고 말 것인가. 한국축구로서는 내년 3월 벌어질 리피 차이나와의 대결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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