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회를 맞는 여성인권영화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당사자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단순한 진심'입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여성인권이 침해되는 현실은 분명히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과 진심. 이 진심을 담아, 마흔여섯 편의 상영작을 선보입니다. 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관객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주변에 있던 여성들에게 농구를 좋아한다고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농구를 좋아하는 다른 여성을 만났고 여자농구팀을 꾸리기로 했다. 불꽃같은 여자들의 농구모임이라는 뜻의 '불꽃여자농구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홍보했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호응해줘서 금방 농구팀이 꾸려졌다.

농구의 기본 동작인 드리블, 슛 그리고 규칙도 모르는 여자 다섯 명이 운동장에 엉거주춤하게 섰던 것이 불꽃여자농구팀의 시작이었다. 나는 농구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같이 일하는 남성들과 점심시간에 농구를 했다. 농구를 하는 과정은 재미있었지만, 체격이 크고 움직임이 거친 남성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고, 자연스럽게 생기는 스킨십을 경계하게 되는 것이 힘들었다. 남성들과의 실력차이, 일방적인 가르침, 그리고 여성들을 '봐주면서'하는 모습들도 불편했다. 이런 이유들로 점점 흥미를 잃었고, 점차 운동장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온통 남자들만 있는 대학 운동장에 불꽃여자농구팀이 모였다.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다른 남성들의 비웃음을 사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농구가 시작되자  앞선 걱정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운동장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경기 후에는 코트 옆에 앉아 짜장면을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일상의 고민에서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농구를 하면서 우리는 여성들이게 몸을 쓴다는 경험이 얼마나 박탈되어 있는지 알았고, 그냥 여자들끼리 함께한 경험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서로를 얼마나 친밀하게 해주는지 알게 되었다.

여성들의 공동체가 주는 힘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난소 싸이코단>의 이미지. 몸을 부딪히며 쌓는 우정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난소 싸이코단>의 이미지. 몸을 부딪히며 쌓는 우정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인권영화제


몸을 부딪히면서 쌓은 서로에 대한 신뢰, 지지의 경험. 이것들은 여자들끼리 농구를 하면서 얻은 뜻밖의 선물이다. 나는 이 선물을 얻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평소 내가 속한 공동체는 나에게 편한 공간이었는가?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의 상황이 아닐 것이다. 여자농구팀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여성들에게 '비빌언덕'이 없다. 주변에 여성이 맘편히 쉬고 놀고, 서로를 지지해줄 수 있는 공동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주변에는 끊임없이 성폭력 사건들이 일어나고, 2차 가해 또한 일상이 된다. 대부분의 공동체에서는 여성들은 항상 처신을 조심하고, 말을 조심하고, 자기검열 해야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스트LA도 그렇다. 인종차별, 가부장제, 가난, 500년 식민지배의 역사 등에 의해 이 지역의 여성들은 억압받아 왔다. 하지만 이렇게 억압받는 여성들이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이스트LA에서 비혼모로 살아가고 있는 젤라는 주변의 여성들과 함께 난소싸이코단을 결성했다. 난소싸이코단은 이스트LA 지역의 유색인 여성 자전거단이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밤거리를 누비며, 서로를 통해 위안을 받는다. 달빛라이딩을 하며 서로를 확인하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보호해줄 수 있는 공동체를 찾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함께 싸워 '탈취한' 것들


지지받는 경험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스스로의 편이 되지 못했던 우리는 이 경험들을 통해서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더욱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불꽃여자농구팀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감정들, 에너지들을 더 많은 여성들과 함께 나누기로 했다.

그렇게 온통 남자편만 드는 세상에서 여성주의적 액션을 하는 불꽃페미액션이 탄생했다. 불꽃페미액션은 더 많은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강남역 사건 이후 밤길 걷기(달빛시위)를 제안했다. 수십에서 백여명의 행진 참가자들은 두 시간이 넘도록 길 위에서 소리쳤다. '두려움을 넘어 밤길을 되찾자' 참가한 사람들이 이 사회로부터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얘기하면 서로에게 박수쳐주고 함께 울었으며 무한한 지지와 공감을 보냈다.

밤길 걷기를 하는 중간중간에 우리를 향해 욕을 하는 남성들을 향해서는 큰소리로 싸워 그 남성들을 몰아냈다. 이 경험은 난소싸이코단의 여성들의 경험과 상당부분 오버랩되었다. 그 많은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공동체, 각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공동체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스트LA에서 라이딩을 하는 여성들로부터도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제는 불꽃여자농구팀, 불꽃페미액션, 최근 들어 시작한 줌바댄스 모임까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움직이고 있다. 어떤 모임이든 상관없이 우리 모임에 참여한 여성들은 스스로에게 어떤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경쟁, 피해서사, 두려움, 고립감이 주를 이뤘던 그동안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서로와의 만남 속에서 실낱같은 가능성을 발견한다. 온통 남자들의 것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나의 언어를 찾고 나를 지지해줄 공동체를 만난다는 것. 우리에게 그것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고 희망이다. 지구반대편에서 달빛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있을 여성들 또한 그럴 것이다. 이들에게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 마음을 보내고 싶다. 당신 곁의 '난소 싸이코단'을 만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윤신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여성인권영화제 홈페이지 http://fiwom.org/fiwom/
* 영화를 풍부하게 보는 법, 피움톡톡!

'피움톡톡'은 여성인권영화제가 자랑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영화와 관련된 주제를 심도 있게 파헤쳐 보는 토크쇼입니다. 올해는 총 13개의 '피움톡톡'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델마와 루이스> 또한 피움톡톡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0월 13일, 7시에 정희진 여성학자와 함께 진행됩니다. 예매 및 기타 정보는 여성인권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fiwo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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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는 폭력 없는 세상,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1983년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이주여성문제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으로부터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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