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부산 해운대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너의 이름은> 기자 회견 현장. 왼쪽부터  배우 카미시라이시 모네, 신카이 마코토 감독, 배우 카미키 류노스케.

9일 부산 해운대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너의 이름은> 기자 회견 현장. 왼쪽부터 배우 카미시라이시 모네, 신카이 마코토 감독, 배우 카미키 류노스케. ⓒ 부산국제영화제


미야자키 하야오를 잇는 차세대 애니메이션 주자로 꼽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너의 이름은>은 그간의 작품과 다소 결을 달리한다. <초속 5센티미터>에서 <언어의 정원>까지 선보인 특유의 영상미와 음악성은 이어지지만 이야기의 방향과 주제의식 면에서 분명한 변화를 보인다. 보다 밝아졌고,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일까. 지난 7월 말 개봉 후 <너의 이름은>은 일본에서 6주 이상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2016년 들어 단연 최고 흥행작의 영광까지 안았다. 수치상 기록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대지진 이후 정서적으로 침체된 일본 사회에 이 작은 애니메이션이 던진 파장에 관객이 대거 응답하고 있는 모습은 한편으로 부럽기까지 하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이 작품이 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강수연 위원장이 "프로그래머들과 이 작품을 봤을 때 초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처럼 국내 관객들의 반응 또한 뜨겁다. 10일 현재 해당 영화의 표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상에 여기저기 문의 글이 올라올 정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과 비교했을 때 다분히 <언어의 정원>은 동화적이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카미키 류노스케)와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를 대비시키며 시공간을 뒤트는 설정이 담겼다. 잠에서 깰 때마다 영혼이 바뀌는 두 소년은 3년의 시차를 두고 살아간다. 문득 자기 안에 다른 존재가 들고남을 깨달은 직후 이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함께 파헤친다는 게 작품의 주요 골격이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풋사랑의 정서가 가득한 청소년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흐르지만 주요 사건들이 심상찮다. 혜성의 등장과 마을의 위기, 이걸 극복하기 위한 두 사람과 지인들의 고군분투 장면에선 동화적이라는 표현이 부끄러울 정도로 묘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특히 혜성 파편이 대거 마을을 뒤덮기 직전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소수 고교생들의 모습은 2년 전 4월 우리가 겪은 세월호 재난의 아픔이 떠올라 울컥하게 한다.

위험을 알리는 학생들에게 "마을에 가만히 있으라"는 자치장의 모습이 무척이나 닮아있다.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네 어른들, 정부 기관의 태도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의 학생들은 너무도 착하게 순응했고, <너의 이름은> 속 아이들은 저항했다는 사실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든 게 맞다"며 "망각에 저항하는 인물을 그리고자 했다"고 9일 기자회견 당시 말한 바 있다. 2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만 하라"며 망각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 일부 군상들의 모습이 매우 초라해질 만하다.

재난을 이기는 법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망각에 저항하기는커녕 우리는 쉽게 망각해오지 않았나. 숱하게 반복된 재난과 앞으로 예고된 재난을 애써 무시하지 않았나. 게다가 망각하는 것과 망각을 강요하는 것에도 큰 차이가 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생명에 대한 태도는 곧 그 사회의 성숙함을 나타내는 척도인 만큼 상식에 기초함이 옳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일부 아니 다수의 기득권은 눈앞의 이익을 쫓으며 단순한 진리조차 쉽게 무시하며 불의의 편에 서곤 했다.

아름다운 영상과 시종일관 밝은 톤으로 이어지는 <너의 이름은>이 어쩌면 우리에겐 아프고 무겁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주요 사건이 자연재해지만 <너의 이름은>의 정서는 반짝거리는 로맨스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모두가 남같지만 이어져있다'는 단순한 명제가 두 남녀를 잇는 끈이 되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아울러 방황하기 마련인 사춘기 소녀소년이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국내엔 내년 1월 중 개봉이 확정됐다. 그전 여유가 된다면 부산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너의 이름은 부산국제영화제 세월호 자연재해 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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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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