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0일. <W> 송재정 작가 기자간담회.

여전히 가시지 않는 < W >를 향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2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송재정 작가를 만났다. ⓒ MBC


<거침없이 하이킥> <크크섬의 비밀>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이 작품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송재정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하나, 그리고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결말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는 점 또 하나. 송 작가의 최근작 <W>도 마찬가지다. 지난 14일 종영한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W>의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웹툰과 현실을 넘나드는 판타지 로맨스로 유독 더웠던 지난여름을 더 뜨겁게 달궜던 <W>. 여전히 가시지 않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2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송재정 작가를 만났다. "<W>는 내 참회록"이라는 송 작가. 그녀가 <W>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래는 송재정 작가와 취재진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무척 길다. 하지만 끝났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W>의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을 위해, 현장의 대화를 최대한 담았다.

<W>는 작가 인생의 참회록

 더블유 캡처.

에서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 분)은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삶이 파괴된다. 송재정 작가가 강철의 고통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 MBC


- 지난 7월 <W> 제작발표회까지만 해도, 웹툰과 현실을 잇는다는 설정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고, '한국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갓(god)재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송 작가는 '갓재정'이라는 단어를 듣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 두 달 동안 작업실에만 박혀있다 나와 보니 작품에 쏟아지는 찬사가 아직도... 사람이 과소평가 받으면 짜증 나고 싫지 않나. 과대평가를 받으면 무섭고 두렵다. 지금 내가 그런 기분이다. 나를 향한 찬사는 과대평가라고 생각한다."

- <W>에서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 분)은 독자의 재미를 위해 파괴된 일상에 고통받는다. 사실 작가님 작품 주인공들은 유달리 고통받는 걸로 유명한데, <W>를 쓰면서 이전 작품 캐릭터들에 대한 미안함이 들진 않았는지 궁금하다.
"<W>는 내 참회록이다. 처음 모티브를 얻은 건, 고야의 그림이었다. 본래 순수 미술을 하는 광적인 화가의 모습에서 출발했는데, 그림을 영상으로 구현하기가 어렵더라.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화가로 설정하자니, 그런 수준의 그림을 매번 표현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같은 그림인 웹툰으로 설정을 바꿨다.

내가 표현하는 대상을 도구로 여길 것인지, 영혼이 있다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작가든, 화가든, 음악가든, 창작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을 거다. <나인>을 쓸 때, 연기하는 배우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선우'라는 인물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캐릭터를 죽이면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지만, 내가 심은 씨앗의 싹을 스스로 잘라낸다는 고통이 있다. 그걸 벗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죄책감도 들었다. 나 역시 시청자니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맥락 없는 죽음을 보며 분노하기도 했고.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고민에서 시작했다. 오성무(김의성 분)가 죽을 때도 마음이 아팠다."

- <인현왕후의 남자>와 <나인>은 시간을 넘나들었고, <W>는 웹툰과 현실을 넘나들었다. 시트콤에서 정극으로 넘어온 뒤 쓴 작품들이 대부분 차원이동물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시간, 공간... 다음은 어떤 차원을 넘나드는 작품을 쓸 지 궁금하다.
"시트콤에서 드라마로 넘어온 이유는, 시트콤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안 해 본 거 하고 싶어서였다. 사랑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는 시트콤에서도 할 수 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쓰려면) 굳이 드라마여야 할 이유가 없는 거다. 안 해본 거, 희한한 거, 특이한 거 하고 싶었고, 그래서 소재를 특이하게 잡았다. 차원이동물을 많이 하는 이유는 극적인 상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첩보원이나 군인이 아니더라도, 차원을 오가면 일반인에게도 생사에 쫓기거나 날아다니거나 없어지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나. 개인적으로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특별한 일을 겪는 것에 매력을 잘 못 느낀다. 평범한 사람을 극적인 상황에 빠트리기 위해 차원이동물을 많이 했다. 새로운 차원 이동물? 아이템이 있기는 하지만 봐야 한다. 지금 당장 할 순 없을 것 같다. 너무 어두운 내용이라. (웃음)."

여러 복선들

 송재정 작가가 <W>의 모티브를 얻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송재정 작가가 < W >의 모티브를 얻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이 그림은 결국 자신이 만든 창조물에 잡아 먹히고 만 오성무 작가의 결말을 예고하는 복선이었을까? ⓒ 프란시스코 데 고야


- "마지막 장면은 강철과 오연주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독자들이 욕을 하든 말든, 그게 가장 맥락 있는 'W'의 해피엔딩"이라는 강철의 대사가 있다. 해피엔딩을 염두에 둔 복선이었는지?
"복선은 아니었다. 그땐 엔딩을 어떻게 내야 할 지 나도 몰랐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의미있는 장면이었다. 독자들이나 작가, 창조한 사람이 생각하는 맥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결국은 강철의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한다는 강철의 의지가 담긴 대사였다."

- 하지만 결국 오연주는 가상의 인물인 강철의 사랑을 얻고, 실재 인물인 아버지를 잃어야 했다. 반쪽 해피엔딩인 셈이다. 이런 엔딩에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도 많았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엔딩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해피인지, 새드인지, 엔딩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옛날부터 욕을 많이 먹었고. (웃음) 그래도 요즘은 엔딩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려 애쓰고 있다. 엔딩이 시청자들의 기억에 얼마나 남는지 이제 알게 돼 조금 신경 쓰는 정도?

<W>도 물론 새드는 아니지만, 해피라고 생각하며 쓴 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도 치유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암시 정도로 끝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불만족스럽고 개운치 않은 엔딩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해피엔딩을 쓸 순 없었다. 내게는 엔딩보다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새드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강철이 죽었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취재진 웅성대자 웃으며) 아닌가?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이 말이 많았다. 엄마도 강철 죽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 하하."

- 시청자들이 끝까지 엔딩에 대한 불안감을 놓을 수 없던 이유 중 하나가 중반부 등장했던 반지 낀 시체의 존재였다. 많은 이들이 이 시체를 복선이라 추측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더라. 처음부터 복선이 아니었던 건가.
"(웃으며)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근데 마지막까지 (반지 낀 시체를) 이야기 하시더라."

"창작자와 창조물의 관계는 부모 자식과 비슷"

 더블유 캡처.

강철(이종석 분)의 인생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창조자 오성무(김의성 분)와, 그에 반발하는 창조물 강철. ⓒ MBC


- <W>는 강철과 오연주의 차원을 넘나드는 로맨스 외에도, 창조자과 피창조물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작가가 가상의 인물을 만들 때, 작가와 인물의 관계는 부모자식과 비슷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자식의 인생을 조율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이런 거에 질문이 많았다. 작가가 되고 나서는 자식이 아니라 작품으로 (질문이) 넘어간 거다. 내가 캐릭터를 만들고 그에게 히스토리를 주지만, 그렇다고 그 인물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다. 쓰다 보면 어느 순간 혼자 마음대로 굴러간다. 그걸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떤 연기자가 연기하느냐, 어떤 연출자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자식을 시집장가 보내는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자식과 캐릭터 모두, 떼어내야 하는 순간이 오고, 그럴 때면 고통이 온다.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너무 괴롭기도 하고. (오성무의 이야기는) 나로서는 간접체험 같은 거였다. 20년 글 쓰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건 내 창작품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창작자도 아니고. 내가 씨를 뿌렸지만, 결국은 스스로 자라나는 거다. <나인>의 박선우(이진욱 분)가 결국 정해진 운명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라면, 강철은 더 강한 의지를 지닌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내 바람을 표현한 거다. 그래서 이렇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일이 쑥스럽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작품이고, 여러분이 어떤 방향으로 작품을 해석하셨다면 그게 맞는 거다. 내가 대본을 올린 이유 중 하나도, 내가 이렇게 썼지만, 해석은 각자 시청자분들의 몫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완전한 자유의지에 대한 거니까."

- 마지막 회를 앞두고 모든 회차의 대본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품이 인기를 끌면 대본집으로 판매하거나, 드라마 DVD를 구매한 팬들에게 부록으로 제공하지 않나. 무료 공개는 이례적이었다.
"요즘은 글 잘 쓰는 많은 지망생이 소설보다 방송으로 온다.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소설과 달리, 대본을 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방송국에 들어와서야 대본이라는 걸 처음 봤다. 방송은 굉장히 대중 친화적인 매체인데, 정작 방송에 쓰이는 대본은 제한된 사람들만 접할 수 있는 거다.

대본집도 내봤는데, 출판까지 오래 걸리다 보니 드라마를 좋아하던 분들도 책이 나올 때쯤이면 잊어버리시더라. DVD도 마찬가지고. 공공적인 의미로 쓸 거면 핫할 때 내보내야 하는데(웃음). 마침 이번에 기회가 좋았다. 마지막에 2회가 남았다면 공개하지 못했겠지만 (결방으로) 한 회만 남은 상황이었다. 마침 연휴 첫날이라 마지막 회가 번외 편처럼 돼 버리기도 했고. 방송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W>에 관심 많을 때 공개하고 싶었다. 실검 1위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대본은 소설과 달리 치밀하지 않다. 잠재적인 작가들인 지망생들이나 청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소설책 보듯 대본에 접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본을 파일째로 올린 이유도 보면서 이리저리 가지고 놀아보라는 거였다. 이 대사를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든지, 나라면 이렇게 쓰겠다든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기 작품도 쓸 수 있을 거다. 내 대본을 더 멋있게, 재미있게 고칠 수 있는 아마추어분들이 계셨으면 좋겠다. 엔딩을 바꾸셔도 좋고."

차원 이동 매개가 없는 <W>

 더블유 캡처.

송재정 작가는 "이종석씨는 이 드라마의 모든 리얼리티를 구현해주신 분"이라면서 "만화같이 안 생겼으면 말이 안 됐을 텐데, 1회 보고 너무 감동했다"며 '만찢남' 이종석의 외모를 극찬했다. ⓒ MBC


- 같은 차원이동물이지만, 전작인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보다 <W>는 더 어렵게 느껴진다. 어느새 타임슬립이라는 소재가 익숙해져서일까?
"전작들은 향이나 부적. 이동의 매개체가 명확했다. 작품 안에서의 팩트와 인과가 분명히 있고, 주인공들은 매개체의 규칙을 밝혀내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W>에는 매개체가 없다. 그냥 인물의 인지, 자유의지인 거다. 의지대로 차원을 이동한다고 선점해버렸다. 나는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썼는데, 화면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이해도가 떨어질 거라는 걸 몰랐다. 인지라는 걸 영상으로 표현하게 쉽지 않으니까. 내 실수다.

사실 몇 년 사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데 꽂혔다.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을 보면 굉장히 자유로운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나인>까지만 해도 판타지지만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거기에 집착했는데 몇 년 사이 바뀌었다. 이제는 좀 더 자유롭다. 보시는 분들이 생소하고 이상하게 느끼실 수도 있지만, 곧 트렌드가 될 것 같다. <W>는 그 초기 시범단계다."

- 마술적 리얼리즘이 트렌드가 될 거라 예상하는 이유가 있나.
"큰 흐름이 있지 않나. 나는 <살인의 추억>도 <CSI>시리즈도 좋아했다. 10년쯤 전부터 리얼리티, 현실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 지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요즘은 이런 데 서서히 지겨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나부터도 그렇고. 요즘은 <왕좌의 게임>처럼 개연성은 없지만, 확 튀면서 놀라움의 세계로 바로 들어가는 게 재미있더라. 논리에 대한 설명을 굳이 하지 않아도 납득하고 넘어가는 거다. 논리를 넘어간다면 그다음엔 시각적으로 뭘 더 보여줄 수 있느냐겠지.

처음 <인현왕후의 남자> 할 때만 해도 내부에서 '이게 말이 돼?' 하고 갸우뚱하시는 분들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판타지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안다. 시청자분들 재벌 나오는 로맨스는 첫 회만 봐도 다 파악하지 않나. 판타지도 이제 그런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자신감으로 <W>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게 먹혔다는 게 신기하다."

강철이 죽었어야 했던 이유

 더블유 캡처.

강철이 웹툰 세계가 현실에 종속된 거라 여기고 죽음을 택하자, 완결과 함께 웹툰 속 세계가 멈춰버렸다. 하지만 강철이 마지막회, 강철이 두 세계를 대등하다고 인지하자, 웹툰 속 세계는 현실과 대등한 또 다른 세계가 됐다. ⓒ MBC


- 그런데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맥락들이 있다. 가령 초반에는 강철이 죽어 웹툰이 종영하자 웹툰 세계도 그대로 멈췄지 않나. 하지만 마지막에는 현실 세계에서 웹툰이 끝났음에도 웹툰 속 세상은 그대로 흘러갔다. 오류라고 지적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내 생각에서는 오류가 아니다. 인지의 차이가 있지 않나. 처음에는 강철이 웹툰 세계를 현실 세계에 종속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성무에게 총을 쏘고 절망한 거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 다시 자각했을 때는 종속된 게 아니라 두 세계를 대등하다고 봤다. 강철이 그렇게 인지한 순간 뛰어넘은 거다. 강철이 '내가 나를 소환한다'라고 하면서 두 세계를 대등하게 만들었으니 그때부터는 현실에서 웹툰이 끝난다 해도 그 세상이 끝나지 않는 거다. 결국 모든 건 강철의 의지에 달린 거다.

<나인>의 박선우는 결국 틀을 깨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었다. 하지만 강철은 그 틀을 부순 거다. 엄청나게 중요한 이야기라 강철을 죽였다 살리기까지 한 뒤 깨닫게 했던 거다. 내 입장에서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강철이 오겠다 마음먹었으니 온 거다."

- 복잡한 이야기다.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워 새로운 시청자의 중간유입 어려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높은 화제성에 비해 시청률은 다소 아쉬웠다. 작가로서 이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나는 늘 엄청나게 대중을 지향하며 글을 쓴다. 시청률이 너무 중요해 작정하고 쓰는데 뜻대로 안 될 뿐이다. (시청률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오해가) 늘 억울하다. (웃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이런 거다. 빠르고 깜짝 놀래키고 궁금해지는 거. 내가 좋아하니까 남도 좋아할 거라 착각하고 쓰는 거다.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 쓰는 거지. 근데 내가 아주 대중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걸 깨닫고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나름 노력한 건데. 하하.

시청률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시청률이 내게 보람을 주진 않지만, 내 다음 스케줄에 영향을 끼친다. 작가의 생존이 달려있으니까. 이번에는 1회 편집본을 보고 '되겠구나' 싶었다. 너무 감동받았다. 초반에 감독님이 잘 만들어주신 덕분에 시청률이 잘 나왔고, 덕분에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이종석과 한효주, 고맙고 미안하다

 MBC <W> 방송화면 캡처.

송재정 작가는 "나도 강철과 오연주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면서 "로맨틱하고 편안하게 연애하는 모습을 더 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 MBC


- 이 쉽지 않은 스토리를 해 내준 배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 같다.
"우선 이종석씨는 이 드라마의 모든 리얼리티를 구현해주신 분이다. 만화같이 안 생겼으면 말이 안 됐을 텐데, 1회 보고 너무 감동했다. 어마어마한 리얼리티를 구현해주신 거다 (웃음). 이종석씨가 강철과 본인의 공통점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 실제 만나보니 그랬고. 사실 강철은 30살로 나이가 설정됐지만, 내 나이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다. 내 마음대로, 만화 캐릭터고 많은 일을 겪었으니 이만큼 성장했겠지, 두려운 것도 없겠지 한 거다. 이종석씨는 45살의 마인드를 가진 30살의 강철을 연기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래도 끝까지 집중력 잃지 않고 해주셔서 너무 고마운 마음이다.

한효주씨께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오연주는 이리저리 뛰는 신도 많고 우는 신도 너무 많았다. 감정소모가 컸을 거다. 사실 오연주 캐릭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강철과 오연주의 순정만화 같은 로맨스와 피조물과 창조자의 대립 관계를 억지로 엮다 보니 혼란이 왔고, 그 부작용으로 오연주의 감정선이 너무 어려워졌다. 어떤 엔딩이 나더라도 오연주의 희생은 불가피해진 거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실수다. 쫑파티에서도 한효주씨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빚을 진 기분이다.

두 배우의 밝은 모습을 더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쓰다보면 결국 나도 가던 스토리를 따라 가게 된다. 후반부에 힘든 상황이 많았다. 둘의 알콩달콩한 모습 나도 보고 싶었는데. 로맨틱하고 편안하게 연애하는 모습을 더 보지 못해 아쉽다." 

 2016년 9월 20일. <W> 송재정 작가 기자간담회.

20일 서울 마포구 상암 MBC에서 열린 < W > 송재정 작가 기자간담회에서 송 작가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MBC


- 시트콤에서 정극으로 온 뒤, 유일하게 판타지가 아니었던 작품이 <삼총사>였다.
"<삼총사>하면서 사극은 내게 맞지 않는 장르라는 걸 알았다. 사극은 정사가 받침이 돼 있어야 하지 않나. 누군가에게는 정사가 있다는 게 힘이 될지 모르지만, 내게는 질주하고 싶은데 군데군데 기둥이 박혀있는 기분이었다. 내게 판타지라는 장르는 장애물 없이 질주할 수 있는 사막 같은 공간이다."

- 판타지 장르에 특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송 작가님의 장기는 로맨스가 아닌가 싶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신민(신지-최민용)', '민민(서민정-최민용)', '윤민(윤호(정일우 분)-서민정)' 커플 팬들의 기 싸움은 아직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W> 모두 인물들의 로맨스 요소가 등장했을 때 스토리나 캐릭터가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로맨스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작품을 쓸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인터넷에서 커플 팬들끼리 편 갈라 싸운 최초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다 같은 자식인데, 자식들이 재산가지고 싸우는 꼴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캐릭터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새드가 된 거다. (작품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때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그 후로 삼각관계를 잘 안 쓴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웃음)

사실 본격 로맨스는 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나이가 드니 흉내 내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 20대 때 시트콤 할 때는 내가 그 세대니까 공감하면서 썼는데, 지금은 추억을 더듬으며 쓰는 기분? 자신이 없어서 쓰고 싶어도 못 쓰지 싶다. 강철을 서른으로 설정하고 왜 마흔다섯 살처럼 만들어 놨는지 나도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늙은 마음을 넣었으니 종석씨도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래서 다음엔 주인공 나이를 좀 올려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만약 사랑 이야기를 쓴다면 중년들의 사랑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 이제 정말 <W>가 끝났다. 기분이 어떤지.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과대평가를 받아 무섭다. 이제부터가 큰일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잊힐 때까지 숨어서 안 나타나야 할 것 같다. (웃음)"

더블유 W 송재정 이종석 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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