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MBC <서프라이즈> 출연 배우들.

ⓒ 김윤정


 2016년 8월 MBC <서프라이즈> 출연 배우들.

지난 18일, 경기도 양주 MBC <서프라이즈> 촬영 모습.ⓒ 김윤정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 경기도 일산 MBC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출발한다. 이 버스에 탄 배우들은 그야말로 팔색조다. 일본 순사도 됐다가 독립운동가도 되고, 톱스타가 됐다가 조선의 국모가 되기도 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목적지는 대개 경기도 양주. 이들은 이틀 동안 총 여섯 편의 드라마를 찍어야 한다.

<서프라이즈> 촬영장은 늘 시간과의 전쟁이다. 매주 목요일은 외국인 배우들의 분량이, 금요일에는 한국인 배우들의 분량이 촬영된다. 대본이 나오는 건 보통 수요일. 등장인물에 맞는 배우들의 캐스팅이 이뤄지고 바로 이튿날부터 촬영이 시작되는 셈이다. 한국인 배우들은 대본이 나오는 순간 고정 출연자에게 맞는 배역이 결정된다. 10년 이상 출연한 배우들이라 배역만 봐도 딱딱 결정되기 때문이다. 캐스팅에 대한 고민은 대부분 외국인 배우들에 대한 것이다.

"실존 인물을 베이스로 하니까 아무래도 싱크로율이 중요해요. 똑같을 수는 없지만, 이미지 정도는 맞춰줘야 하죠." (한종민 PD)

1인 3역 만능맨, <서프라이즈> 13년 차 바딤

뜨거운 <서프라이즈> 현장 지난 11일, 경기도 양주 MBC문화동산에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촬영장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인 바딤을 만났다. 러시아 출신인 바딤은 2003년부터 <서프라이즈>에 출연했다. 현재는 배우는 물론, 외국인 배우 캐스팅 매니저, 통역까지 맡고 있다.

바딤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촬영장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 외국인 배우 캐스팅 매니저, 통역은 물론 배우로 출연도 한다.ⓒ 김윤정


"바딤! 바딤!"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바딤을 찾는 외침이 들린다. 러시아 출신인 바딤은 <서프라이즈> 촬영장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 2003년부터 <서프라이즈>에 출연한 바딤은, 현재 캐스팅 매니저와 통역까지 도맡고 있다. 그는 캐스팅부터 진행까지, 외국인 배우들의 핵심이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 친구의 소개로 출연하게 된 <서프라이즈>는 이제 바딤의 직장이 됐다. 외국인 출연자들 대부분은 바딤의 SNS에 올라온 오디션 공고나, <서프라이즈>에 출연했던 친구들의 소개를 통해 방송에 출연한다.

배우들 대부분은 한국어에 서툴다. 지난 18일 녹화에 참여한 15명 남짓 되는 배우 중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는 바딤을 제외하면 세 명 정도. 다른 배우들은 자기 분량이 아닐 때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휴식을 취하지만, 바딤은 종일 카메라 곁에 붙어 다니며 감독의 디렉션을 통역해준다. 출연은 물론, 저녁 시간 외국인 배우들이 먹을 피자를 사러 다녀오는 것까지 모두 바딤의 일이다.

 2016년 8월 MBC <서프라이즈> 출연 배우들.

2016년 8월 MBC <서프라이즈> 출연 배우들.ⓒ 김윤정


"수요일에 대본이 나오면 역할을 보고 배우들에게 연락해요. 총 50~60명 정도 되는 배우 풀에서 고르기도 하고, 맞는 친구가 없으면 새로운 친구를 캐스팅하기도 해요. 연기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못하지만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하루종일 걸리는 촬영은 힘들어요. 하지만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새로운 경험이라 재밌어요." (바딤)

미국, 캐나다, 크로아티아... 출신국은 다르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스칸은 2년째 <서프라이즈>에 출연하고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그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 그는 "소련 이야기인데 러시아 국기가 사용되거나, 분단국가 시절 독일의 이야기인데 지금의 독일 국기 나오거나 할 때는 웃겼다"며 애정 어린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스칸은 "<서프라이즈>에서 우리나라(우즈베키스탄)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신기했다"면서 "방송에 출연하면서 다른 나라 역사에 대해 배우고 알게 되는 일들이 즐겁다"고 말했다.

로버트는 7년 전 주한 미군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제대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한국이 좋아 떠나고 싶지 않았다"는 로버트는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서프라이즈>에 출연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말고는 연기 경험이 없었다는 그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평범한 내가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신기하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꼭 한국에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캐나다 출신 아히안, 1년째 한국을 여행 중인 크로아티아 출신 여행객 빅터, 중후한 이미지로 대통령·교황·판사 전문 배우라는 폴란드 출신 제이슨 등 <서프라이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출신 국가도, 직업도, 한국에 온 계기도 모두 다르다. 이들에게 <서프라이즈>는 특별한 경험과 함께 꽤 짭짤한 수익을 올려주는 즐거운 아르바이트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제가 출연한 영상 클립을 보여주곤 해요. '잘살고 있구나'하고 좋아해 주시죠. 좋은 친구들도 만나게 해줬고, 배우는 것도 많아요. 정말 재미있어요." (아히안)

알바로 연기하는 배우, 연기하려고 알바하는 배우

외국인 배우들이 아르바이트 삼아 <서프라이즈>에 출연한다면, 한국인 배우들은 <서프라이즈>에 출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2014년 야채 가게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서프라이즈> 대표 배우 김민진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당시 김민진이 방송에서 밝힌 월 평균 수입은 100만 원. 뜸한 달은 70만 원 정도. <서프라이즈>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배우들은 생활고보다 더 힘든 건 불규칙한 캐스팅이라고 말한다.

"이번 금요일에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수요일이 돼야 알 수 있어요. 내용에 따라 결정되니까요. 오늘처럼 어린아이가 메인이 되는 이야기라면 (고정) 배우 중 몇 명은 쉬어야 해요. 저는 주로 중년 이상 역할을 맡는데, 젊은 부부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분량일 때는 제가 쉬게 되는 거죠. 알 수 없는 기다림이 제일 힘들어요." (배우 손윤상)

<서프라이즈> 8년 차 배우 손윤상은 <서프라이즈> 녹화가 없는 날에는 서울 암사종합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판다. 이미 밤 10시가 넘은 시각. 아직 찍어야 할 분량이 꽤 남았다. 촬영을 마치고 바로 시장으로 가야 한다는 그에게 '피곤할 텐데 어쩌냐'고 걱정하자 "힘들어도 먹고 살려면 별수 있느냐"고 웃었다.

그는 "내가 선택한 길이니 (힘들어도) 상관없다"면서 "장사를 하면서 방송일이 더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었다던 그는 "새벽 시장에 나가 일해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한 거구나 깨달았다"고. 그는 "<서프라이즈>의 친근한 이미지가 장사에도 도움이 되니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손윤상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많다. 손윤상은 "방송에서 봤다고 깎아 달라, 서비스 달라 하는 분들도 계셔서 난처할 때도 있지만, 악역을 연기한 다음 날은 '이렇게 선한 사람이 왜 나쁜 놈 역할을 했느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다"며 웃었다.

 2016년 8월 MBC <서프라이즈> 출연 배우들.

ⓒ 김윤정


 2016년 8월 MBC <서프라이즈> 출연 배우들.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김난영과 손윤상. 장난스레 대화를 나누다가도 촬영이 시작되자 바로 감정 연기를 시작했다. 빠른 촬영 일정에 쫓기며 훈련된 순발력은 <서프라이즈> 배우들의 최대 장점이다.ⓒ 김윤정


친구처럼 이웃처럼... 친근함은 양날의 칼

<서프라이즈> 배우들은 연예인이라는 느낌보다 편안한 이웃처럼,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06년부터 출연해 온 <서프라이즈> 11년 차 배우 김난영은 "중국에 여행을 갔는데 어느 아저씨가 '어느 동네 사느냐', '어느 학교 나왔냐'고 묻더라"며 웃었다. <서프라이즈> 배우들은 '고향 사람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이같은 친근한 이미지는 배우들에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한국인 배우들은 모두 연기가 본업인 프로 연기자들이다. 매회 다른 인물의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서프라이즈>의 특성상, 출연 배우들은 매주 한 편 이상의 단편 영화/드라마 경험치를 쌓아온 셈이다. 순발력과 적응력은 그 어느 명배우와 견줘도 지지 않는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로 얻은 인지도와 친근함은 배우들에게 '재연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아줬다.

"저희는 연기자고 어느 연기든 주어지면 할 수 있어요. 자신도 있고, 함께하는 친구들도 모두 역량 있는 배우들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선택받는 입장이잖아요. 역할을 주시는 분들은 저희 연기에 대해 선입견이 있으신 것 같아요. 오디션은 많이 보러 다니는데 안 되는 경우가 많죠." (배우 김난영)

"저는 '재연 배우'라는 말이 너무 싫어요. 사극도 그렇고, 요즘 실화 베이스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은데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 재연이잖아요. 저희도 똑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연기할 뿐인데 왜 우리에게만 '재연 배우'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서프라이즈 배우'라는 말은 좋아요. 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잖아요." (배우 손윤상)

출연료가 동결된 지 이미 수년. '재연 배우'라는 원치 않는 꼬리표. 하지만 배우들이 <서프라이즈>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연기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밖에서는 단역이나 조연을 맡지만, <서프라이즈> 안에서는 언제나 주인공인 이들에게 <서프라이즈>는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소중한 무대"이자, 오랜 시간 같은 꿈을 갖고 호흡을 맞춰 온 "이제는 정말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들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가족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가족이에요. 가족도 10년 넘게 매주 보기 쉽나요? 간혹 한 달 정도 촬영이 없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너무 보고 싶어요. 촬영 분량이 없어도 그냥 놀러 오고 싶다니까요?" (배우 김난영)

"<서프라이즈>는 제 인생의 서프라이즈예요. 목숨 걸고 찍어요. 좋아하는 연기할 수 있다는 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 행복한 일이잖아요. <전원일기>만큼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겠죠?" (배우 손윤상)

"이 같은 배우들의 뜨거운 열정이, 오늘의 <서프라이즈>를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당신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서프라이즈> 기획 마지막 편은 방송을 더 무섭고 신비롭게,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홍승옥·최원형 성우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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