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6월 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제5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제5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011년 여름이었다. 당시 경남 통영시의 조선소에 들어가서 일했다.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곳은 하청업체였는데, 나는 거대한 선박을 만드는 작업 중 '배관'을 맡은 조에 배치됐다. 그곳에서 매일 선박 내부의 파이프를 연결했다. 파이프의 굵기는 팔뚝만 한 크기부터 허리보다 두꺼운 것까지 다양했다. '사수'로 부르는 고참의 뒤를 따라서 커다란 망치와 드릴, 용접 도구를 들고 컴컴한 선박 안을 종일 돌아다녔다.

용접할 때 불똥이 튀어서 한여름에도 긴 팔에 장갑을 두 겹으로 착용했다. 매캐한 연기가 나서 방독면 같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선박 위에서 뭐가 떨어질지 몰라 안전모까지 착용해야 했다. 그런 상태로 햇살에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를 걸어 다니면 작업을 하지 않아도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선박 안을 돌아다니다가 여기저기 머리를 부딪히기 일쑤였다. 조명이라고는 백열전구가 한둘씩 걸린 게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작업하다가 전선이 발에 걸리면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리곤 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2시간마다 10분씩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숨을 쉬러 바깥으로 나오는 그 짧은 순간에야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현대조선 잔혹사>의 표지사진.
 <현대조선 잔혹사>의 표지사진.
ⓒ 후마니타스

관련사진보기

여기까진 그래도 참을 만했다. 생명에 직접 영향을 주는 안전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드릴과 망치 등을 잔뜩 담은 공구함을 한 손에 쥐고 10m 정도 높이 갑판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 손으로 사다리를 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깨달은 건, 도중에 추락할 경우 나를 건져줄 안전망 같은 장치가 전혀 없다는 거였다.

보름 정도 일했을까. 나는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 두 명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작업 소장의 말에 따르면 한 명은 추락으로 사망했고, 한 명은 크레인으로 옮기던 선박 부품에 깔려 다쳤다고 했다.

작업장에 투입되기 전에 들은 안전 교육에선 더 지독한 사례도 나왔다. 어둡고 시끄러운 선박 안 작업공간에서, 내부에 사람이 셋이나 있는지도 모르고 블록을 바깥에서 용접으로 밀폐한 사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두꺼운 철판 때문에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아 안에서 노동자 셋은 결국 질식사했다고 들었다. 안전교육에서는 그 외에도 추락, 감전, 폭발 등의 사례들이 영상과 사진으로 눈 앞에 쏟아졌다.

나는 결국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조선소를 떠났다. 노동 강도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오늘도 극한의 열기와 불안함을 묵묵히 견디면서.

기자가 12일간 직접 겪은 조선소 잔혹사

5년이 지난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현대조선 잔혹사>라는 책을 읽어서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가 쓴 이 책은 저자가 직접 12일간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겪은 경험담으로 시작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사회"를 보면서 "그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얘기와 함께.

죽어도 기사 한 줄 나오지 않는 사고 피해자를 찾아서 조명할 때마다, 산재 통계에 묻혀 부품처럼 작아진 개인의 이야기가 현실로 튀어나온다.

허 기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인터뷰하며 그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글로 담았다. 개미처럼 일하다 사라져 가는 사람들, 중무장한 채 아파트만 한 공장에서 아비규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용접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좁은 공간에서 불안정한 자세로 일하다 허리를 삐끗한 거죠. 동료가 관리자에게 전화해서 다친 사실을 알렸어요.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요. 결국 동료가 다시 전화해서 쌍욕을 퍼부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이러냐고. 그제야 작업 소장이 왔어요. 트럭을 끌고." - 용접공 김영배씨, 본문 중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를 구급차가 아닌 '트럭' 짐칸에 태워 병원으로 옮겼다는 증언은 기가 막힌다. 119에 신고하면 산업재해로 신고되기 때문에 다른 차량을 통해 개인 병원에 후송했다는 것. <현대조선 잔혹사>는 산재 피해를 은폐하는 조선소 하청업체의 현실을 고발한다. "원청에서 산재가 발생하면 문제가 된다고 압박"한다는 이유로, 하청업체가 다친 노동자에 일정 금액의 치료비만 지급하고 해결하려고 든다는 얘기다. 하청 구조의 문제는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차이에서 끝나지 않고 안전의 문제로 연결된다.

"원청이 산재 발생을 꺼리는 것은 여론을 의식해서이기도 했다. 산재가 자주 발생하면 정치권이나 노동부 등의 관심이 쏠린다. 2014년 3월과 4월 두 달 동안 8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노동부에서는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특별감독을 진행했다.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이 문제가 이슈화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감시가 심해질뿐더러 기업 이미지도 나빠진다. 원청이 이를 막는 방법 중 하나가 산재가 발생하는, 다시 말해 산재 신청을 받아주는 하청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불이익을 주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다. 원청은 매년 하청과 도급계약을 연장한다. 연장 기준은 그간 하청업체가 쌓은 실적과 원청에서 만든 평가 점수다. 산재가 발생한 업체에는 벌점이 부과되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 본문 126쪽 중에서

넘어지지 않고 외나무 위를 달려야 한다

저자는 책에서 '안전의 외주화'를 지적하면서 하청 문제의 단면을 하나씩 드러낸다. 위험은 하청업체가 떠안으면서 수익은 원청인 대기업이 가져가는 구조도 문제로 거론된다. <현대조선 잔혹사>는 "이익이 날 때는 계열사를 확장하고 주주 배당금 잔치를 벌이는 등 회사가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였지만, 적자가 발생할 때는 손실을 하청 노동자에 전가"한다고 적었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대형 중공업이 선박을 낮은 가격에 수주하고, 그 과정에서 정상적인 기간보다 빠른 시일에 작업을 끝내라고 재촉당하며 수많은 노동자가 희생된다고 한다. 또한 낮은 수주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 인건비를 절감하기 때문에 하청업체가 받는 임금이 깎인다. 저자는 이런 상황인데도 정작 노동자가 산업재해 보상은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덧붙인다.

본문에는 하청업체 노동자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사장과 관계자들의 증언도 담았다. 여러 인터뷰에서는 그들이 대형 중공업과 계약하면서 어떤 일을 겪는지, 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사고와 임금 체불이 계속되는지 엿볼 수 있다.

"하청업체 사장 일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원청에서 받는 기성으로 노동자들 임금과 운영비를 내고 나면 매번 적자가 났다. 조선업이 활황기를 맞으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버텼다. (중략)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대규모 구조 조정을 감행한 뒤부터 원청은 고통 분담을 근거로 기성 인하를 강요했다. (중략) 매달 인건비와 운영비의 40~50% 정도만을 원청에서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전과 똑같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 작업했지만 기성비를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

(중략)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사이 노동자들 임금을 주기 위해, 살고 있던 아파트 담보대출은 물론 중소기업청에서 1억 원도 대출받았다. 빚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은행 마이너스 대출이 8천만 원, 가족 명의로 제2금융권에서 빌려 쓴 사채가 2억 8천만 원이나 됐다. 이 모든 게 지난 4년 6개월 동안 대표를 하면서 생긴 빚이다." - 본문 196~197쪽 중에서

결국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먹고살기 위해 낮은 임금과 위험한 작업 현장을 참으면서 근무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대형 조선소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원청에서 적은 돈을 받다가 파산하고 폐업하는 일이 잦아진다. 허환주 기자는 책에서 이를 끝없는 '폭탄 돌리기'로 묘사했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소 황금 시절'에 정리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서 결국 노동자와 중소기업 대표들까지 벼랑에 내몰린다는 소리다. 구조상 사고를 겪을 확률이 높은 현실, 정상적으로 하청업체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마치 '넘어지지 않고 외나무 위를 달려야 한다'는 요구처럼 보일 정도다.

'조선업 위기설'에도 여전한 비정규직 노동의 그늘

지난 6월 29일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SPP조선 고성조선소. 매각 불발로 2년째 조선소 문을 닫은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텅 빈 이 조선소는 한때 근로자 1천500여 명이 일하던 곳이다.
▲ 굳게 닫힌 조선소 지난 6월 29일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SPP조선 고성조선소. 매각 불발로 2년째 조선소 문을 닫은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텅 빈 이 조선소는 한때 근로자 1천500여 명이 일하던 곳이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현대조선 잔혹사>는 허환주 기자가 직접 조선소에서 12일 동안 일하면서 겪은 '웃픈' 일을 풀어놓으면서, 마치 현장에 가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독자를 끌어당긴다. "더 있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았다" 등의 표현에서는 책장 너머로 내가 조선소에서 일하며 겪은 나날이 떠올랐다.

한 명의 인터뷰마다 그의 삶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서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러 블록을 끼워 맞춰 거대한 선박을 만드는 조선 산업의 과정처럼, 개인의 체험과 증언으로 퍼즐 같은 비정규직 노동 문제의 큰 그림을 보여준 부분이 인상적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한국 조선 산업의 역사와 흐름, 최근 정치권과 언론에서 언급된 '조선업 위기설'에 관한 해석도 실렸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치솟은 국제 원유값 때문에 호황기를 맞은 것부터, 대대적으로 확장했던 조선 산업 기반이 최근 추락한 유가에 무너지는 상황까지.

원청인 대형 중공업이 선박 제조 과정과 투입 인원, 완성 시기를 통제하면서도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 노동자 비율을 늘리고 작업 환경의 책임에선 발을 뺀 점도 지적한다.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임금 낮은 일자리를 지속하면서, 이런 구조로 일자리와 산업구조를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임금'과 '안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발전은 없다고 꼬집는 셈이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이 지나면서 조선업 위기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대형 조선 3사 빅딜설'과 '대량 정리해고'까지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책에서 인용된 하청 노동자들의 최근 발언에서는 정부의 대책이 '기업 살리기'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강하게 드러난다. 조선업 위기설로 나올 대안이 과연 하청업체와 노동자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겠느냐는 의문이다.

지난 1일, 야3당은 조선·해운 산업 부실화의 원인과 책임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 당시 "발생할 대량실업과 실업 구조대책에 대해서 정부의 총체적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도 책을 읽은 이후엔 의문만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조선소에서 일하면 '죽거나, 다치거나, 쫓겨나거나' 셋 중 하나"라는 슬픈 우스갯소리가 이젠 나오지 않게 될까. 매년 늘어가는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과 계속 사망하는 현장 노동자 수가 줄어들까. 조선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목숨 걸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까. 세계적 규모로 조선 산업을 구축한 국가 명성에 걸맞은 근무 환경의 변화가 이루어질까. 과연 이번에는.

<현대조선 잔혹사>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숨 쉬며 일하고, 허망하게 죽어가고, 대중의 침묵 속에 잊히지 않을 날이 오길 바랐다. 매번 '누가 죽고 몇 명이 잘렸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수지에 던지는 돌들이 언젠가는 쌓여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취재했다는 허환주 기자의 글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숱한 죽음과 해고가 일상이 된 현실로, 이미 돌은 수면 위로 잔뜩 떠오른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 씀/ 후마니타스/ 2016년 5월 30일/ 304쪽/ 1만5천 원)



현대조선잔혹사

허환주 지음, 후마니타스(2016)


태그:#현대조선 잔혹사, #조선소,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