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인터뷰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말]


"언제부턴가 영화제는 영화계에 의존만 했고 자구책 마련에 미비했다. 내가 혼자 싸우자고 한 게 아니잖나. 영화계가 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한 건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싸우라는 거잖나. 그럼 싸워야지. 그리고 이겨야지. 왜 중간에 섣부른 타협을 하는지 그 궁금증을 해소해주셔야 한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인터뷰 중 장탄식 같은 말을 뱉었다. 차분한 어조였지만 자신을 향한 자책이면서 현 상황이 빚어진 것에 대한 통탄 내지는 비판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4월 말까지는 영화제를 치르지 않더라도 보이콧 상태에서 싸운다는 게 우리 기조였다"며 "이게 왜 그 1주일 사이(5월 9일 합의안이 발표되기 직전)에 뒤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지난 5월 21일 김동호 조직위원장과 몇몇 영화인이 만난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전 위원장은 "아마 영화인들도 난감했을 것"이라며 "먼저 그 분들과 논의를 했다면 이해했을 텐데 조직위원장직을 선 수락하신 건 분명 결례"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강하게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분명하다. 알려진 대로 김동호 조직위원장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두 산파다. 1회 때부터 김동호는 집행위원장으로 이용관은 수석프로그래머로 호흡을 맞추며 지금의 국제적 행사로 키워냈다. 정치인의 간섭과 출품작 사전 검열을 시도하던 권력의 탄압을 함께 이겨냈다. 두 사람 모두 현재까지 영화인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이유기도 하다.

"다 이긴 싸움이었다"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 유성호


"다 이긴 싸움이었다. 부산시에서 김동호 위원장이 싫다고 고집부리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도 보이콧으로 영화제 못하면 그 화살이 서병수 시장에게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동호 위원장을 받은 건데, 그렇다면 정관 개정까지 못 받아낼 이유가 무엇인가. 간단한 거다. 이용관 연임이 문제가 아니라 정관 개정이 문제잖나. 그걸 해놓고 편하게 수습하시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이게 설득이 안됐다. 그러니 내 역할은 여기까지고, 재판이나 준비할 수밖에.

시에서 감사권과 행정지도권을 가지고 계속 괴롭히면 어떻게 버틸 건가. 정관 개정을 해도 험난할텐데, 이렇게 개정도 불투명 하게 됐다. 앞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이견이 있을텐데. 어떻게 감당할 건가. 난 회의적이다."

- 영화제와 분명하게 선을 긋는 건가.
"절대 영화제와 관련 없을 거다. 이미 선언을 했다. 내부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정관 개정을 위해 싸우자고 한 사람이다. 그리고 실패했는데 무얼 하러 돌아가나. 정관 개정이 잘 된다면 새로운 사람들이 잘 해나가면 되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밖에서 백의종군하는 것이다. 20년 희로애락을 같이 한 사람으로서 언젠간 떠나야 하고 밖에서 돕는 게 좋은 거다."

- 말에서 상당한 서운함이 느껴진다.
"김동호 위원장님에 대한 섭섭함? 개인적으론 그렇지만 이건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영화제를 살리고 영화인들에 대한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에 대한 시각이 너무도 다른 거다. 섣부른 봉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내 입장이다. 개인적 감정은 그 다음이다. 20년 동안 일했는데 다툰 적이 없었겠나. 아버지처럼 큰형처럼 때론 친구처럼 내가 따른 분인데."

- 강수연 위원장이 따로 이 사안에 대해 설명하진 않았는지.
"없었다. 신임 위원장으로 영화제를 잘 치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내가 의아한 건, 영화계에서 보이콧 선언할 때 올해는 싸운다는 분명한 다짐이 있었는데 왜 바뀌게 된 것인가이다.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나도 모르게 일이 진행된 거다. 5월 7일 셋이 같이 만난 자리에서 '하나가 되자'고 말씀하셨는데, 영화제를 올해 안 하더라도 전열을 흩트리지 않는 게 하나인 거다. 우리 세 사람 의견도 일치가 안 되는데 어찌 하나가 되나. 강 위원장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그때도 말씀드렸다. 김동호 위원장님이 조금만 물러서시면 된다고 했지."

"섭섭함? 이건 개인적 문제 아니다"

- 그간 부산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세게 나가다가 지난해 1월 간담회 때도 한 발 물러서는 느낌이었고.
"작전상 그런 거다. 그땐 정치적 상황에 놓이니 빨리 수습하자는 차원에서 그런 거고. 속마음이 안 그랬겠나. 화가 나고 그랬지."

- 사실상 지난해에 공동위원장직을 수락할 때부터 부산시에 밀린 것이라는 말도 있다.
"밀린 거지. 누구는 밀렸다고 하고, 누구는 순진하다고 하는데... 1995년 <애니깽> 사건(당시 개봉도 안 한 영화를 대종상영화제에서 작품상 등을 수여한 것에 이용관, 강한섭 등 평론가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사건-기자 주) 때 내가 대타로 영화진흥위원회에 나가 혹독하게 당했고, 이명박 정권 때 좌파 영화제라고 해서 당하지 않았나. 많이 당해봤다. 그런데 <다이빙벨> 때는 느낌이 확 왔다. '아 이젠 물러나게 되겠구나,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화제를 살려놓고 나가는 거다'라고 생각한 거다."

-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정관 개정과 함께 올해 영화제를 치르기 위해 보이콧을 선언한 영화인들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영화인들에게 내가 했던 말이 있다. 개인적 의견이고 결국 철회 결정은 영화인들이 내리겠지만, 여전히 보이콧은 철회하면 안된다고. 그래야 영화인들 자존심도 살고 김동호 위원장도 힘을 받을 것이다. 영화제 개최 전에 정관 개정이 된다면 나로서도 아픈 소리 한 마디 한 게 유의미한 셈이니 다 행복한 거다. 섭섭한 마음을 떠나 중요한 건 영화제가 살아야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 사전 정관 개정이 우선이라는 건 변함이 없고, 김동호 위원장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전에 보이콧으로 힘을 몰아주는 게 맞다고 본다."

"영화인들에게 말했다, 여전히 보이콧 철회하면 안된다고"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영화인들에게 내가 했던 말이 있다. 개인적 의견이고 결국 철회 결정은 영화인들이 내리겠지만, 여전히 보이콧은 철회하면 안된다고." 이용관 전 위원장은 확고했다. ⓒ 유성호


두 산파의 거리가 이토록 멀어 보였을 때가 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내심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이어지고 있을 일말의 유대감도 언뜻 느껴졌다. 옛 이야기를 잠시 꺼내니,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남포동을 지나가다가도 기자나 영화인들이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바로 그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밤새 마시며 영화 얘길 하던 때가 있었다며 잠시 회상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는 인터뷰 내내 '김동호 위원장'으로 부르던 3인칭 호칭이 '우리'라는 1인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참 타이밍이 좋았다. 누가 시작했더라도 부산영화제는 성공했을 거다. 부산시와 시민들 덕이 컸지만, 가장 큰 힘이 된 건 바로 민주화 운동이다. 사람들의 잠재된 욕망이 얼마나 컸겠나. 그 마당에 우리는 자리를 깔아준 것뿐이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우리는 늘 고마워했다. 그렇기에 부산영화제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거고, 그래서 촉발된 사건이 <다이빙벨> 사건이다. 어떻게든 정체성을 지켜내려면 이걸 넘어야 했다. 내가 부족했다면 떠나면 되지 않나.

솔직히 3회 때까진 성공을 예감하지 못했다. 4회 때 어렴풋이 확신을 갖게 됐다. 너도 나도 문화에 목말랐다. 그게 성공 요인이다. 그 목마름을 채워주는 게 은혜를 갚는 길이다. 어떻게 채워줬는가. 하나는 한국영화가 세계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이고, 나아가 한국영화 르네상스에 기여한 것이다.

그러다 우리가 위기에 빠지니 영화계가 보이콧을 해주고 있지 않나. 세계 영화사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있었는가.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밖에 활용하지 못하는가. 그것 때문에 화가 나는 거다.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으로 전락했는가. 이끌지는 못할지언정 영화인들과 같이는 가야지. 왜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있나. 만약 그 원인이 나였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 언제부턴가 무서움을 느낀다. 이러려고 20년을 해왔던 것인가."

이 전 집행위원장은 "위기의 때마다 영화인들이 지혜를 모아주었고, 서로 지지고 볶더라도 사과하며 하나가 되곤 했다"면서도 "이번 사태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싸우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국지전에서 질 수도 있는 건데, 부디 김동호 위원장님 이하 영화제 사람들이 크게 판을 보셨으면 한다. 서병수 시장도 곧 임기가 끝난다. 근데 해놓은 게 없다. 개혁을 외치지만 오히려 자기 스스로를 개혁해야 한다. 대통령 역시 개혁을 외쳤지만 무엇을 했나. 문화 융성을 외쳤다는데 히틀러도 문화 융성을 주장했다. 그래놓고 전 세계 미술품을 강탈해갔다.

권력이 무능하면 쳐내면 된다. 이게 한국적 상황 아니었나. 이걸 다르게 해석하는 분이 영화제 내부에 있으니 내가 떠나는 거다. 영화제는 나름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못 만들면 약해질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다신 없었으면 한다. 날 반면교사 삼아 영화제가 잘 된다면 그것 역시 큰 공헌이라 생각한다."

* 관련기사
[인터뷰 ①] "내 입장은 하나, 서병수의 사과와 정관 개정" 이용관은 아직 싸우고 있다

이용관 김동호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서병수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