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영화계가 위기에 빠진 영화제를 위해 보이콧까지 했는데 왜 이런 소중한 자산을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지 화가 난다"며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을 전락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유성호
"다 이긴 싸움이었다. 부산시에서 김동호 위원장이 싫다고 고집부리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도 보이콧으로 영화제 못하면 그 화살이 서병수 시장에게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동호 위원장을 받은 건데, 그렇다면 정관 개정까지 못 받아낼 이유가 무엇인가. 간단한 거다. 이용관 연임이 문제가 아니라 정관 개정이 문제잖나. 그걸 해놓고 편하게 수습하시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이게 설득이 안됐다. 그러니 내 역할은 여기까지고, 재판이나 준비할 수밖에.
시에서 감사권과 행정지도권을 가지고 계속 괴롭히면 어떻게 버틸 건가. 정관 개정을 해도 험난할텐데, 이렇게 개정도 불투명 하게 됐다. 앞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이견이 있을텐데. 어떻게 감당할 건가. 난 회의적이다."
- 영화제와 분명하게 선을 긋는 건가."절대 영화제와 관련 없을 거다. 이미 선언을 했다. 내부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정관 개정을 위해 싸우자고 한 사람이다. 그리고 실패했는데 무얼 하러 돌아가나. 정관 개정이 잘 된다면 새로운 사람들이 잘 해나가면 되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밖에서 백의종군하는 것이다. 20년 희로애락을 같이 한 사람으로서 언젠간 떠나야 하고 밖에서 돕는 게 좋은 거다."
- 말에서 상당한 서운함이 느껴진다."김동호 위원장님에 대한 섭섭함? 개인적으론 그렇지만 이건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영화제를 살리고 영화인들에 대한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에 대한 시각이 너무도 다른 거다. 섣부른 봉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내 입장이다. 개인적 감정은 그 다음이다. 20년 동안 일했는데 다툰 적이 없었겠나. 아버지처럼 큰형처럼 때론 친구처럼 내가 따른 분인데."
- 강수연 위원장이 따로 이 사안에 대해 설명하진 않았는지."없었다. 신임 위원장으로 영화제를 잘 치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내가 의아한 건, 영화계에서 보이콧 선언할 때 올해는 싸운다는 분명한 다짐이 있었는데 왜 바뀌게 된 것인가이다.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나도 모르게 일이 진행된 거다. 5월 7일 셋이 같이 만난 자리에서 '하나가 되자'고 말씀하셨는데, 영화제를 올해 안 하더라도 전열을 흩트리지 않는 게 하나인 거다. 우리 세 사람 의견도 일치가 안 되는데 어찌 하나가 되나. 강 위원장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그때도 말씀드렸다. 김동호 위원장님이 조금만 물러서시면 된다고 했지."
"섭섭함? 이건 개인적 문제 아니다"- 그간 부산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세게 나가다가 지난해 1월 간담회 때도 한 발 물러서는 느낌이었고."작전상 그런 거다. 그땐 정치적 상황에 놓이니 빨리 수습하자는 차원에서 그런 거고. 속마음이 안 그랬겠나. 화가 나고 그랬지."
- 사실상 지난해에 공동위원장직을 수락할 때부터 부산시에 밀린 것이라는 말도 있다."밀린 거지. 누구는 밀렸다고 하고, 누구는 순진하다고 하는데... 1995년 <애니깽> 사건(당시 개봉도 안 한 영화를 대종상영화제에서 작품상 등을 수여한 것에 이용관, 강한섭 등 평론가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사건-기자 주) 때 내가 대타로 영화진흥위원회에 나가 혹독하게 당했고, 이명박 정권 때 좌파 영화제라고 해서 당하지 않았나. 많이 당해봤다. 그런데 <다이빙벨> 때는 느낌이 확 왔다. '아 이젠 물러나게 되겠구나,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화제를 살려놓고 나가는 거다'라고 생각한 거다."
-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정관 개정과 함께 올해 영화제를 치르기 위해 보이콧을 선언한 영화인들을 설득하겠다고 했다."영화인들에게 내가 했던 말이 있다. 개인적 의견이고 결국 철회 결정은 영화인들이 내리겠지만, 여전히 보이콧은 철회하면 안된다고. 그래야 영화인들 자존심도 살고 김동호 위원장도 힘을 받을 것이다. 영화제 개최 전에 정관 개정이 된다면 나로서도 아픈 소리 한 마디 한 게 유의미한 셈이니 다 행복한 거다. 섭섭한 마음을 떠나 중요한 건 영화제가 살아야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 사전 정관 개정이 우선이라는 건 변함이 없고, 김동호 위원장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전에 보이콧으로 힘을 몰아주는 게 맞다고 본다."
"영화인들에게 말했다, 여전히 보이콧 철회하면 안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