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배신> '꿈의 자격'에는 만길씨의 사연을 다룬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힘쓰는 만길씨는 꿈을 꾸는데도 비용이 필요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공부의 배신> '꿈의 자격'에는 만길씨의 사연을 다룬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힘쓰는 만길씨는 꿈을 꾸는데도 비용이 필요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 EBS


"꿈을 꾸는데도 비용이 필요해요?"
"네, 많이 느끼고 있어요."

꿈을 꾸는데도 비용이 필요할까? 이 물음에 나 역시 그렇다고 답변하였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어린 시절 나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꿈꿨다. 누군가에게 '진실'을 돌려줄 수 있는 직업, 약자를 대변하는 그 모습에 나는 감동했고 변호사가 될 내 모습을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나름 중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입학했던 나는 '우수반'으로 따로 운영되는 반에 편성되었다. 그곳은 나와는 출발점이 다른 친구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과외를 받으면서 자라온 친구들은 어느 하나 못하는 과목이 없었다.

따라가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 선행학습을 통해 미리 배워온 그들과 나의 차이는 작지 않았다. 그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나는 생각 없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꿈'조차 꾸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지난 18일 EBS 다큐프라임 <공부의 배신> 3부작 중에서 3부인 '꿈의 자격'이 방영됐다. 17살 김민지 시민기자가 쓴 기사를 읽고(관련 기사 : EBS <공부의 배신>의 배신) 뒤늦게 찾아봤다. 방송에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꿈'의 빈부 격차가 생겨나는 모습을 두 명의 청년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꿈꾸라 말하지만 꿈꾸게 두지 않는 현실

방송 캡처 선혜씨는 꿈꾸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선혜씨는 현실에 지치지 않고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방송 캡처 선혜씨는 꿈꾸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선혜씨는 현실에 지치지 않고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 EBS


사회학자가 꿈이라는 선혜씨는 많은 아르바이트에 치여 산다. 조금이라도 높은 시급을 주는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 그녀는 걷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탄다. 하루 식비는 만 원. 그녀에게 허용되는 음식은 밥버거, 김밥, 컵라면뿐이다.

"생활비를 벌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선혜씨에 꿈은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방송에서는 선혜씨가 꿈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습보다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소극장에서 표를 팔고 허름한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대학생의 로망, 추억 등은 떠오르지 않는다. 정작, 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할 시간도 없이 일하는 그녀의 모습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상했다. 공부하기 위해서 하는 아르바이트였다. 공부하기 위해 생활비를 벌고, 학비를 벌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할수록 공부할 시간은 없어지고 공부를 할 체력도 남지 않는다.

27살의 만길씨의 사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강대를 졸업한 취준생인 그는 PD를 꿈꾸고 있다. 그는 1년이라는 시간을 정하고 PD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자기소개서는 쓰고 써도 마음에 들지 않고, 지원한 곳에서는 자꾸 떨어진다.

"자소서 때문에 떨어지는 게 아니래요. 스펙이래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만길씨에게 남는 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르바이트 경력뿐이다.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온 만길씨에게 꿈을 위해 주어지는 시간은 많지 않다. 그의 목적은 이제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가 되고 있다.

결국, 선혜씨는 앞으로도 아르바이트하면서 힘들게 공부를 해나갈 것이고, 만길씨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가게 되었다. 두 청년의 삶은 특별하지 않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청년의 삶 그 자체이다.

우리가 꿈에 자격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꿈은 꼭 성공이여야 할까? 우리 사회에서 꿈에는 많은 자격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의 재력은 매우 필요하게 된다.

꿈은 꼭 성공이여야 할까? 우리 사회에서 꿈에는 많은 자격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의 재력은 매우 필요하게 된다. ⓒ EBS


<공부의 배신>을 본 대학생들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다. 자신들이 살아온 현실이기 때문이다. 동기인 친구들과는 자주 대화를 나누곤 한다.

"우리 휴학할까?"
"취업을 해야 졸업을 할 텐데."
"아무 곳이나 받아주는 곳 있으면 가고 싶다."

모두 열심히 살아왔다. 팀으로 내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밤을 새우면서 집에 가지 못하기도 하고, 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하느라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다. 그런데도 졸업이 다가오자 막막하게 느껴진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떤 곳에 가야 할지. 고민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

사실, 우리가 꿈조차 꾸기 힘든 것은 공부의 배신이나 꿈을 꾸는데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꿈에 빈부 격차를 이야기했다. 전문직과 기술직은 각각 높은 꿈과 낮은 꿈으로 나누어졌다. 의사, 변호사, 검사 등을 꿈꾸는 아이들과 전기 엔지니어, 공무원,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을 꿈꾸는 아이들을 나누고 꿈에는 자격이 있다라고 말하는 방송이 어쩌면 더욱 꿈의 자격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기준은 물론 사회경제적 지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이 되고 아이들을, 청년들을 꿈꾸기 힘든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때론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런 사회는 결국 꿈에도 많은 조건을 내건다. 안정적인지, 돈을 벌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괜찮은지. 청년의 삶은 고달프다. 아니, 우리나라에 많은 사람의 삶은 고달프다.

부모는 자신의 경제력이 낮아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걱정하고, 아이들은 자신의 꿈이 남들에 낮아 보일까 걱정한다. 청년들은 꿈조차 꾸기 힘든 사회에서 꿈이라도 꾸고 싶어 발버둥 친다. 게다가 꿈에는 많은 자격조건도 붙는다. 꿈을 꾸는 것도, 자격이 되는 꿈을 찾기도 너무도 어렵다.

나는 <공부의 배신>의 '꿈의 자격'은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꿈을 꾸는 데에는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꿈에도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꿈꾸는 데에는 자격이 필요하고, 꿈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고발하는 방송이 틀리기를 바란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애써 부정하고 싶다. 정말 우리가 처한 현실이 저렇게 각박하고 피폐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가 모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만들면 된다. 단지 '힘들구나'가 아니라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꿈의 자격을 만들지 말자.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미꾸라지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꿈의 자격 따위는 필요 없지 않을까?

EBS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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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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