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와 <곡성>의 스크린 점유율이 압도적이라지만, 이미 이들 영화를 봤거나 "5월에는 로맨스 영화!"를 주장하는 관객들에게 개봉한 서로 다른 색깔의 로맨스 영화를 소개한다.

40시간 동안의 성장
- <초인> (감독: 서은영, 출연: 채서진, 김정현)

 영화 <초인> 스틸컷

영화 <초인> 속 두 주인공은 서로를 만나고 함께 또 따로 성장해나간다. ⓒ 대명문화공장


기계체조를 하는 선수 도현(김정현)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도서관에서 40시간 동안 봉사를 하게 된다. 평소 책 한 번 읽어본 적 없던 그는 꾸준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수현(채서진)을 마음에 담고 그가 추천해 준 책 <돈키호테>를 읽게 된다. 도현이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는 동안 이들은 계속 마주치고, 도현은 수현이 똑같은 책을 꼭 2번씩 빌려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현의 비밀이 점차 드러나면서, 도현과 수현은 함께 또 따로 성장해간다.

도서관이나 책을 매개로 한 영화는 기본적으로 지루하게 여겨지는데, <초인>은 이를 어느 정도 극복해낸다. 비록 그 장치가 대학 도서관에 몰래 숨어들어가 책을 훔치는 해프닝 같은 것으로 처리되지만 말이다. 도현을 기계체조 선수로 설정한 것은 탁월하다. 주로 몸의 언어로 말하는 도현과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수현의 대화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육사의 <광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기호의 소설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가 영화 속에서 주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이들 책을 좋아하거나 도서관이 봄마다 내뿜는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가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도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보기 드문 캐릭터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도현을 연기한 배우 김정현은 이 꿋꿋함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낸다. 지난 5월 5일 개봉했다.

소년의 미소와 소녀의 단발머리에 많이 빚진 영화
- <나의 소녀시대> (감독: 프렝키 첸, 출연: 송운화, 왕대륙)

 영화 <나의 소녀시대>

영화 <나의 소녀시대> 속 린전신의 단발머리, 쉬타이위의 미소는 영화의 부실한 플롯을 덮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 20세기 폭스사


대부분 로맨스 영화에서 조연은 영화 주인공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영화 속 조연들을 조금 더 공들여서 묘사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또한 영화의 그 모든 갑작스러운 우연성과 개연성, 부실하고 전형적인 캐릭터 설정을, 린전신(송운화)의 동그랗고 단정한 단발머리와 쉬타이위(왕대륙)의 미소가 안간힘을 다해 막는다. <나의 소녀시대>는 송운화와 왕대륙이 없이는 도무지 성립 불가능한 영화다.

그럼에도 <나의 소녀시대>는 영화에 마음이 동하는 이유가 비단 매끄러운 만듦새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어설픈 영화에는 나름대로의 매력이 대단하다.

특히 왕대륙이 연기하는 쉬타이위라는 캐릭터는 학창시절 학생들이 한 번씩은 좋아했던 모든 남학생의 보편적인 집합체로 만들어졌다. 잘생겼고 싸움도 잘하는 불량학생이지만, 마음먹고 공부하면 과거에 했던 가락이 있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영화에서 나오는 왕대륙의 다양한 매력 중 하나를 골라 마음껏 좋아하면 된다.

너무 평범한 영화가 아니냐고? 영화 속 내레이션은 아예 '모든 소녀가 그랬듯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그 보편성을 노린다. 결말까지 마음 놓고 즐기며 보시라. 이 영화의 결말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완벽한 판타지를 담고 있으니까. 5월 11일 개봉해 상영중이다.

까레이스키를 다룬 영화라고? 정말?
- <레나> (감독: 김도원, 출연: 박기림, 김재만)

 영화 <레나>

영화 <레나> 속에서 눈여겨볼 캐릭터는 박기림이 맡은 고려인 레나다. ⓒ 씨네코뮨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역시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의 음흉한 시선을 그리고 있지만, 그 영화들이 비난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이유는 감독 자신부터 그 남성들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해 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레나>의 문제점은 이 시선을 아예 모른 척, 영화를 '순수한 농촌 총각의 사랑'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살던 고려인으로 한국 농촌에 결혼하러 온 레나를 농촌 총각 순구는 애지중지 모신다. 걸핏하면 동생들의 뺨을 후려치는 순구가 레나를 존재만으로 고마워하는 이유는 그녀가 예쁘기 때문이다. 그는 재차 일을 배워보겠다는 레나의 말에도 행여 '예쁜 얼굴'이 탈까봐 일을 시키지도 않고, 그늘에 앉아있으라며 친절을 베푼다. 레나의 의사는 "고맙다"는 말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고, 농촌에서 만나는 모든 남성들은 그녀를 이런 식으로 대한다. 영화 속에서 "물욕이 없다"고 묘사된 그가 왜 돈을 주고 결혼할 여성을 외국에서 2번이나 데려왔는지는 끝내 의문으로 남는다.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이 어디로 시집을 가는 줄도 모른 채 한국에 와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여성들은 분명 존재한다. 물론 이런 현실이 영화 속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레나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갔던 교실에서 "집에 세탁기가 없다"며 빨래를 모두 손으로 한다는 외국 여성이 나오지만, 이는 재밌는 일화로 소개되거나 모두 후루룩 넘겨버린다. 5월 26일 개봉.

나의 소녀시대 초인 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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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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