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은 <탐정 홍길동>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8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 버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인물 홍길동 역을 맡았다.

이제훈은 <탐정 홍길동>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8살 이전의 기억을 잃어 버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인물 홍길동 역을 맡았다. ⓒ CJ엔터테인먼트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라 해도, 그를 죽일 순 없다. 시끄럽다며 어린 자식을 목 졸라 죽인 부모도, 십수 명의 여성을 강간한 후 살해한 연쇄살인범도, 법의 심판을 통해서만 비로소 처벌받는다.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나쁜 놈에 대한 처벌은 차분하고 냉정할 따름이다. 반성의 기미라곤 보이질 않는 그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리거나 한 짓을 그대로 갚아주는 건 불가능하다. 현실의 정의란 그런 것이다.

영화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아래 <탐정 홍길동>)의 주인공 길동(이제훈 분)은 우리의 답답함을 통쾌하게 충족시켜준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은 그는 8살 이전의 기억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인물. '홍길동'이란 이름에 담긴 익명성처럼, 주민등록번호조차 없는 그가 불법 흥신소 활빈당의 수장이자 사립탐정이란 설정은 흥미롭다. 음지에서 악을 소탕하는 정의의 사도지만, 한편으론 내내 불면증에 시달리고 무감정한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필름 누아르 장르의 어두운 색채가 짙게 느껴진다.

 '홍길동'이란 이름은 익명을 의미한다. 주민등록번호조차 없는 그가 불법 흥신소 활빈당의 수장이자 사립탐정이란 설정이 흥미롭다.

'홍길동'이란 이름은 익명을 의미한다. 주민등록번호조차 없는 그가 불법 흥신소 활빈당의 수장이자 사립탐정이란 설정이 흥미롭다. ⓒ CJ엔터테인먼트


길동은 부모를 죽인 원수 김병덕(박근형 분)을 20여 년 간 추적한 끝에 얻은 단서로 한 마을을 찾는다. 하지만 병덕은 이미 누군가에게 잡혀가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 길동은 병덕의 두 손녀 동이, 말순과 함께 그를 추적하고, 병덕을 납치한 이들의 배후에 비밀 종교집단 '광은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 광은회의 실세 강성일(김성균 분) 일당이 길동 앞에 나타나면서 이들의 음모가 수면 위에 떠오른다.

<탐정 홍길동>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건 과감한 시각 효과다. 인물과 세트, 배경 곳곳에 CG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시퀀스들은 마치 각각 꿈속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80년대 초반 즈음 우리나라 어딘가 있었을 법한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만큼, 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여관, 정비소, 폐가 등의 모습은 친근하면서도 이국적이다. 여기에 석양이 지는 주홍빛 하늘,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스쳐가는 고층 빌딩들에서는 영화 <씬 시티> 속 장면들이 연상된다.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데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하는 것.

 <탐정 홍길동>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건 과감한 시각 효과다. 인물과 세트, 배경 곳곳에 CG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시퀀스들은 마치 각각 꿈속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탐정 홍길동>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건 과감한 시각 효과다. 인물과 세트, 배경 곳곳에 CG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시퀀스들은 마치 각각 꿈속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 CJ엔터테인먼트


"세상엔 중요한 사람이 있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라는 극 중 대사처럼, 영화 속 인물들을 영리하게 배치한 조성희 감독의 연출력 또한 돋보인다. 특히 아역배우 노정의와 김하나가 연기한 동이-말순 자매는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웃음과 감동을 자아내는 캐릭터. 착한 언니와 당돌한 동생이란 설정에서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속 지소(이레 분) 지석(홍은택 분) 남매가 떠오른다. 여기에 길동의 든든한 지원군 활빈당 황 회장(고아라 분)을 비롯해 정비소 사장, 여관주인(정성화 분) 등도 영화 속 작지 않은 지분으로 제 역할을 해낸다.

예리한 칼날이 몸통을 꿰뚫고 빗발치는 총탄에 피가 터진다.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간다. 분명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인데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주먹을 꼭 쥔 채 환호하게 된다. 내 안에 이런 악마성이 있었나 하고 뜨끔해질지 모르지만, 괜찮다. <탐정 홍길동> 속 세계는 딱 봐도 비현실이니까. 악당을 내 손으로 직접 응징하는 것처럼,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간접체험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마치 폭력적이고 재미있는 만화나 소설을 보고 잘 만들어진 어드벤쳐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5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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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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