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진(송중기)은 민간인인 강모연(송혜교)까지 국기에 대한 경레에 동참시킨다.

유시진(송중기)은 민간인인 강모연(송혜교)까지 국기에 대한 경레에 동참시킨다.ⓒ KBS


#장면 하나
총상을 입은 아랍연합 무바라크 의장이 '우르크'로 후송된다. 아랍 주치의가 아니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며 총을 들이대는 보디가드들. 환자의 위급한 상태를 체크하던 강모연(송혜교 분)은 "난 세계사를 책임질 생각이 없다"며 포기한다. 보디가드들과 군 상관의 압박을 무시한 채 강모연에게 수술을 지시 혹은 당부하는 것은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의 역할이다. 이를 두고 한 트위터 사용자는 이렇게 일갈했다.

"의사인 송혜교가 총상 입은 사람(악역)을 앞에 두고 '살리지 않을래요' 하고 고민 1초도 안 하고 직업윤리를 저버리는데 군인인 송중기가 "당신은 당신 일을 해요"라고 하는 것도 밥맛이야…. 왜 멋진 건 남주가 다 하고 여주는 수동적이고 여주 직업은 폼이냐." (‏@li**********)

#장면 둘
유시진의 부대 안. 저편에서 국기하강식이 시작되고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유시진은 굳이 민간인인 강모연까지 국기에 대한 경례에 동참시킨다. 유시진은 군인식 경례를, 강모연은 가슴에 손을 올린다.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로.

이렇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건지, 국위선양을 위한 건지 모를 KBS <태양의 후예> 속 장면들은 여럿이다. 이라크를 모델로 삼은 듯한 가상국가 '우르크'의 아이들이 한국 의료봉사단에게 초코바를 달라고 모여드는 장면이나, 유시진이 미국 군인들과 기이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유시진과 강모연이 위기에 처한 우르크의 소녀를 구하고 또 돌보는 설정 모두 넓게는 이러한 범주에 포함된다.

#장면 셋
드라마 밖 장면도 흥미진진하다. 지난 21일 열린 대통령 주제 수석비서관 회의. 박근혜 대통령이 <태양의 후예>의 성과를 칭찬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은 "<태양의 후예>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세계에 알릴 뿐만 아니라 해외관광객 유치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많은 해외 관광객이 촬영지인 태백을 방문할 기회가 열렸다"면서 "좋은 문화 콘텐츠 하나가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낳을 뿐만 아니라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강원 태백시는 발 빠르게 <태양의 후예> 세트장 재건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다. 이에 질세라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이 지원을 약속하고, 태백시를 찾고 있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계속되는 태백 출장으로 녹초가 됐다는 후문이다. 중국에서도 연일 '몇억이 <태양의 후예>를 봤다'는 뉴스가 앞다퉈 보도된다. 이른바 <태양의 후예> 효과가 한국은 물론 중국까지 강타하고 있다.

'김은숙 월드'와 여성 캐릭터  

 KBS <태양의 후예> 자료 화면

KBS <태양의후예> 원작은 김원석 작가의 <국경없는의사회>다.ⓒ KBS


지상파로는 드물게 시청률 30%를 돌파하고, 중국 시장에서까지 신드롬을 낳고 있는 <태양의 후예>. 쏟아지는 보도 속에 단연코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판타지로맨스 드라마의 원래 설정이다. 원작은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린 김원석 작가의 <국경없는의사회>. 2011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원작에 김은숙 작가가 합류하면서, 의사였던 유시진이 군인으로 탈바꿈됐다고 한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군인, 그것도 '해외 파병군인'으로 남주의 직업이 변경되는 순간, '국뽕(국가주의+히로뽕의 합성어)'의 여지도 넓어지고, 스펙타클한 화면들을 잡아낼 기회도 늘어나며, 강모연이 지속해서 유시진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지뢰밭처럼 깔리게 된다. 여전히 전쟁이나 분쟁 지역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여성과 노인, 아동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특히나 김은숙 작가의 여주인공들 치고 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 평가받는 강모연과 윤명주(김지원 분) 캐릭터 역시 이 설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강모연은 현실적이면서도 강단 있는 의사로 그려진다. 그러나 테러와 분쟁이 난무하는 이국땅은 강모연을 여러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그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유시진의 도움을 받게 한다. 앞서 예로 든 아랍 의장의 치료 장면이 대표적이다.  

<태양의 후예>는 이 모든 위기와 상황들을 로맨스로 연결한다. 과장된 설정과 리얼리티에서 한참 벗어나는 상황들로 범벅돼 있지만, 이 로맨스라는 무기는 시청자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강모연의 성격과 정반대에 있는 인물인 윤명주 역시 같은 맥락에서 더욱 흥미롭다.

직업 군인이자 의사인 윤명주는 서대영(진구 분)과의 로맨스만이 목표요, 이를 위해 철저하게 복무하는 캐릭터다. 작가가 다소 주체적인 캐릭터로 만들고 싶은 강모연이 차마 하지 못하는 저돌적인 고백을 앞세운 '사랑꾼' 캐릭터인 셈이다. 그러니까 두 여자주인공의 주체성을 거론하는 대목은 철저하게 '김은숙 월드' 안에서만 가능한 평가가 아닐까. 신데렐라가 아니라거나, 유우부단하지 않다거나 등등.

어쨌건, 김은숙 작가의 장기인 로맨스가 우르크라는 판타지 공간 안에서 만개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극 중에서 상의를 탈의한 남성 군인들의 구보 장면을 본 여성 캐릭터들이 감탄하는 모습은 수차례 반복된다. 이는 그러한 로맨스를 향유하는 여성 시청자들을 위한 김은숙 작가의 서비스인 셈이다.

강력한 판타지와 결합한 국가주의 판타지

 상의를 탈의한 남성 군인들의 구보 장면을 본 여성 캐릭터들이 감탄하는 모습은 수 차례 반복된다.

상의를 탈의한 남성 군인들의 구보 장면을 본 여성 캐릭터들이 감탄하는 모습은 수 차례 반복된다.ⓒ KBS


한편, <태양의 후예>는 지난 몇 년간 MBC의 리얼 예능 <진짜 사나이>가 미화 혹은 유화시켜 온 한국 군인의 이미지를 한껏 고조시키는 데 성공했다. '송중기가 장르다'라는 우스개는 제쳐 놓더라도, <태양의 후예> 속 유시진을 비롯한 군인들은 몇몇 윗선을 제외하고는 정의롭고 순수하며 "아이와 노인과 미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직업윤리를 철저하게 지키는 이상적인 인물들이다.

어쩌면 이 대목이야말로 <태양의 후예>의 가장 큰 판타지일지 모른다. 굳이 해묵은 이라크 파병을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군 관련 비리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으며, 군사문화의 잔재가 21세기에도 곳곳에 남아있는 한국사회를 떠올려 보라.

상식과 원칙을 고수하고, 권력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며, 안보상업주의가 아닌 자국민 보호만을 위해 복무하는 유시진과 같은 군인,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현실에서 목도하는 군인은 상명하복의 시스템과 남북분단의 현실 속에서 부대끼고 마모된 모습으로 다가올 뿐이다.  

언제나 국력은 국방력과 동일시되기 마련이다. 자위대에 목숨을 거는 듯한 일본을 보라. 그런 점에서, 중국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은 꽤나 징후적이다. 작년 중국의 열병식에서 볼 수 있듯 미국과 경쟁 중인 공산주의 국가 중국보다 국가주의를 찬양하는 나라가 몇이나 있으랴. 물론, 중국 시청자들 역시 로맨스와 판타지를 먼저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국가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덜할수록 <태양의 후예>가 달달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태양의 후예>를 언급한 대통령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송중기를 위시해 '헐벗은' 남자 군인들이 때로 등장하는 이 드라마가 중국에서까지 크나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문화융성'의 좋은 예로 흡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 시장을 열어젖혔다는 소식은 한국의 시청자들과 업계 관계자들 모두 반가워할 호재가 아닌가.

강력한 로맨스와 결합하고 밀착한 국가주의의 판타지는 이렇게 힘이 세다. 해외 파병이란 미명하에 그러한 판타지를 마음껏 끌어올 수 있는 <태양의 후예>의 설정은 그래서 더 영리하고 또 영악하다. 이렇게 '김은숙 월드'의 판타지는 또 한 번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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