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스푹스:MI5>는 영국TV드라마 <스푹스>의 극장판이다. 드라마 <스푹스>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 시즌 동안 86편을 방영했다.

<스푹스:MI5>는 영국TV드라마 <스푹스>의 극장판이다. 드라마 <스푹스>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 시즌 동안 86편을 방영했다. ⓒ 영화사 빅


영화 <스푹스 : MI5>를 영화관에서 볼까말까 망설인다면, 그럴 필요 없다. 혹시 영드(영국 드라마)의 극장판이라기에, 시리즈를 보지 않아서 망설여진다면, 역시 그럴 필요 없다. 희생양 게임이 보여주는 스릴러, 한 방에 만회하는 하이라이트 액션, 카리스마 있는 오만한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TV 시리즈의 극장판 치고 밸런스가 좋다. 전혀 모르고 봐도 영화를 즐길 수 있고, 보고 나면 드라마를 찾게 될 것이다. 주의깊게 본다면 전형적인 장면들을 비틀어놓은 장면을 찾는 재미도 있다. 혹은 의도적으로 조금 진지하게 본다면, '실시간 희생양 중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질문도 던져볼 수 있다. 다 됐고, 어차피 당분간 선택할 수 있는 액션-스릴러 영화는 별로 많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사전에 알고 가면 더 재밌지만, 몰라도 상관없는 것들

 영화 <스푹스:MI5>를 한줄로 요약하면, '희생양 게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양이 되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영화의 스릴러 요소다.

영화 <스푹스:MI5>를 한줄로 요약하면, '희생양 게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양이 되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영화의 스릴러 요소다. ⓒ 영화사 빅


<스푹스 : MI5>는 영국TV드라마 <스푹스>의 극장판이다. 드라마 <스푹스>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 시즌 동안 총 86편을 방영했다. 영화는 미드 <미션 임파서블><A특공대>처럼 재구축이 아니라 미드 <섹스 앤드 시티>, 일드 <히어로> 등의 극장판처럼 새로운 에피소드를 그린다. 동시에 일드 <언페어><케이조쿠 : 스펙>의 극장판처럼 영화를 통해 드라마를 전복시키지 않는다. 영화의 오리지널 캐릭터들로 밸런스를 잡는다.

드라마를 모르는 관객은 드라마를 미리 봐야 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드라마가 원작이라는 정도만 알면 갸우뚱할 만한 것도 드라마 세계관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 가령 여타 캐릭터들이 '해리'에 대해 평가하는 대목 정도다. 그러려니 넘어가면 된다. 물론 떡밥(?) 회수가 안 된 대목이 있지만 '토끼발' 수준은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의 대표적인 링크는 드라마의 주역들이다. 특히 감독 바랫 낼러리와 배우 피터 퍼스를 주목하자. 감독 바랫 낼러리는 <스푹스>의 시작인 시즌1 에피소드1과 마지막인 시즌10 에피소드6 등을 연출했다. (그는 <토치우드><라이프 온 마스><허슬> 등 영드 팬들에게 익숙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배우 피터 퍼스는 해리 역으로 전체 시리즈에 출연했다. 국내 포스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배우의 얼굴을 미리 익혀두고 가면 초반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 영화는 2015년 작품으로, TV 시리즈의 극장판들이 그러하듯 해외에서도 5개국 정도만 개봉했다(모조닷컴 3월 15일 검색 기준). 이런 상황이니, 한국 개봉 자체가 뜻밖이다. <스푹스> 팬이라고 자처한다면, '굳이' 영화관을 찾아야 할 이유다. 최근 영드 <셜록>의 TV 크리스마스 방영분을 영화관에서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이 영화의 개봉에 힘을 실어줬을 법하다.

<스푹스>를 모르더라도 미드 <왕좌의 게임> 팬이라면 반가울 수 있다. 전직 요원 윌 할로웨이 역의 키트 해링턴, 테러리스트 아담 카심 역의 엘예스 가벨은 <왕좌의 게임> 출연 배우다.

'공개된' 줄거리에 숨어 있는 반전

 해리의 침묵, 다른 캐릭터들의 반응, 국장의 폭주, 윌의 액션이 연이어 이어지는 하이라이트만 놓고 보면 근래 여느 액션영화들의 아이디어보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낫다.

해리의 침묵, 다른 캐릭터들의 반응, 국장의 폭주, 윌의 액션이 연이어 이어지는 하이라이트만 놓고 보면 근래 여느 액션영화들의 아이디어보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낫다. ⓒ 영화사 빅


"1급 테러리스트 탈주 사건으로 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진 영국 특수 정보국 MI5.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MI5 내부 스파이가 이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한 대테러 부장 '해리'(피터 퍼스)는 자살로 위장한 채 자취를 감춘다. 탈주한 테러리스트는 MI5와 영국을 타겟으로 48시간 내 테러를 예고하고, MI5는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전직 요원 '윌'(키트 해링턴)에게 임무를 맡기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해리'는 '윌'을 통해 MI5 내부 스파이를 찾으려 하지만 '윌'은 '해리'가 테러리스트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의심하게 되는데... 48시간후 예견된 테러,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윌'의 목숨을 건 미션이 시작된다!"

영화사가 공개한 줄거리에는 종종 서술 트릭이 있다. 압축하면서 살짝 비틀어놓는 경우가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 중에서 몇 가지를 주목하고 영화를 보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첫째, "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진 영국 특수 정보국 MI5", MI5는 '어떤' 위기에 빠지는가? 이걸 쥐고 영화를 되돌아보면 판이 은근히 크다. <007 스카이폴>(2012) <미션임파서블 : 로그네이션>(2015)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MI6나 IMF의 위기와 그 성격이 다르다. <스폭스> 쪽의 위기가 더 '한 국가'의 정보기관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면, 오프닝 타이틀이 올라가기까지 캐릭터들의 모든 대화나 스쳐가는 뉴스 화면들이 영화의 복선이다.

둘째, "MI5는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전직 요원 '윌'(키트 해링턴)에게 임무를 맡기게 된다.", MI5는 윌에게 '어떤' 임무를 '왜' 맡기는가? 액션영화 팬이 여기까지만 보면 전개될 내용은 대개 이렇게 예상할 것이다. 포스터에 혼자 등장하는 키트 해링턴의 윌이 테러를 종횡무진하며 막겠지? 절반만 맞다. 서술트릭이다. '윌'의 줄거리 상 진짜 역할은 사건을 따라가는 관객에 가깝다. 윌을 관객으로 보면, 관객의 예상 질문을 윌이 대신하고 있다.

셋째, "MI5 내부 스파이가 이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한 대테러 부장 '해리'(피터 퍼스)는 자살로 위장한 채 테러리스트와 거래를 했다", '왜' 해리는 내부 스파이를 잡기 위해 자살로 위장해야만 했는가, 정작 해리는 테러리스트 카심과 '어떤' 거래를 '왜' 했을까? 영화사가 이 대목을 공개했다는 건 팬 서비스에 가깝다. 어차피 해리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대강 넘어갈 부분이지만, 기존 팬들에게, 해리가 죽었다느니, 적어도 낚시질은 하지 않은 셈이다.

넷째, "테러리스트는 MI5와 영국을 타겟으로 48시간 내 테러를 예고하고", '영국'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가? 테러리스트의 정석을 밟는 것 같지만, 아담은 다른 방식의 캐릭터다. 그래봤자 테러리스트지만. 여하튼 영화가 설정한 최상위의 적은 아담이 아니다. 이걸 이해하고 보면, 해리가 재등장했을 때 덜 당황스럽다.

오만한 캐릭터들의 매력

초반에 나열되는 MI5의 간부들, 기억해두면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들의 캐릭터는 쉽게 감지된다. 그들은 하나 같이 오만하기 짝이 없다. 가령 이런 식이다. 비상사태에만 헬리콥터의 공중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MI5의 국장팀 맥네니(올리버 메이스 분)는 "내가 한마디만 하면 난리가 나겠지, 그게 비상사태야"라며 코웃음 친다. 그런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을 서로 미루는 분위기마저 풍긴다. 나쁜 관료들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장면들처럼 이어진다.

그런데 영화는 초반의 전형적인 자리보전의 행태를 후반에 신념의 당당함으로 전환시킨다. 구구절절하지도 않다. 캐릭터마다 한 신씩 주어지며, 순간적으로 짜릿할 정도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하이라이트는 MI5의 올리버 국장이 테러리스트 아담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누가 테러리스트이고 누가 인질인지 알 수 없는 분위기다. 곧바로 이어지는 올리버 국장과 해리의 관계는 익숙한 설정이지만 극단적인 캐릭터들 간에 양해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이들 뿐만 아니다. 영화는 오만한 캐릭터들로만 구성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테러리스트는 태생적으로 오만하고, 위험한 상황에 임무를 이어가겠다는 해리 측의 스파이도 그러하다. 하다못해 해리와 거래하는 러시아 측 요원들도 따지고 보면 오만하긴 마찬가지다.

한 방에 메꾸는 하이라이트 액션

 '그들이 누군가에 의해 희생양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희생양 논리를 지지했던 사람이 희생양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영화는 이런 물음을 던져준다.

'그들이 누군가에 의해 희생양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희생양 논리를 지지했던 사람이 희생양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영화는 이런 물음을 던져준다. ⓒ 영화사 빅


액션의 양은 적지만 단호하고 한 방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혹은 아예 오리지널 영화라면 그려졌을 대규모 도심 총격 장면이 없어 화려한 맛은 덜하다. 대신 여지가 없다. 총 한 발 한 발에 의외로 깜짝 놀라게 된다.

또, 비교적 적은 액션의 양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만큼 임팩트 있는 신이 있다. 해리의 침묵, 다른 캐릭터들의 반응, 국장의 폭주, 윌의 액션이 연이어 이어지는 하이라이트만 놓고 보면 근래 여느 액션영화들의 아이디어보다 낫다. 물론 그 동안 끌고 갔던 이야기를 보자면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어'라는 식이지만, 그 정도는 넘어가자.

하이라이트에서 윌이 연속 동작으로 보여주는 액션은, '이것들이 말로 해결하려나?' 싶을 때 등장하는데, 부족했던 액션의 양을 다 메꿔준다. 오로지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장면 때문에 설령 초반에 지루했더라도 만회한다. 게다가 이 장면은 뜻밖에도 설명을 충분히 한다. '이게 시간상 가능하겠어' 라고 심드렁할 (나 같은) 관객에게, 당황하는 테러리스트들의 눈빛 교환을 한 컷 던져주면서 납득시킨다.

"당신이 희생양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영화 <스푹스 : MI5>를 한줄로 요약하면, '희생양 게임'이다. 한국 개봉 제목은 <스푹스 : MI5>이지만, 원제는 < Spooks : The greater good >이다. '더 위대한 선'이 무엇이겠는가? 결국 영화는 대의를 위해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화에 '이름이 언급되는 모든 캐릭터'가 희생양이나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양이 되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영화의 스릴러 요소다. 표면상으로 해리와 윌은 대척점에 서 있다. 해리의 행동들은 희생양을 누구로 택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고, 영화의 내용은 그 결과이다. 윌은 그 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임무를 수행하느냐 좋은 일을 하느냐, 윌은 후자를 선택한 캐릭터로 출발한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오만하다. 그러니 윌의 말에 해리는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다. 망설임도 없다. 그렇게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방식을 내내 전개한다.

이런 식이면 통상 진부한 국가주의 영화가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희생양 게임의 맹점을 던지면서 흥미롭게 풀어낸다. 희생양 게임의 맹점은 '희생양을 선택하는 자는 누구냐'의 질문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 영화, 스릴러로도 재밌다.

대부분 희생양은 자신이 희생양인지도 모르고 게임에서 아웃된다. 희생양을 인지하는 사람은 희생양을 선택해왔거나 그 논리를 지지하는 사람들, 즉 자기는 희생양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누군가에 의해 희생양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희생양 논리를 지지했던 사람이 희생양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질문을 해리를 통해 던진다. 자신이 희생양이라는 걸 안 해리는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도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희생이 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됐다고 믿는다. 그런 해리의 선택을 보는 게 이 영화의 맛이다.

해리는 죽은 척 지낸다. 그리고 자신이 최종적으로 희생양이 되어 게임에서 아웃되지 않기 위해 다른 희생양들을 선택하고 주저 없이 희생시킨다. 해리의 선택은, 해리 입장에서 보면 굳이 선택할 필요 없는 방법이다. 해리는 단순한 임무 실패 책임자로 물러나면 그만인 것을 아예 반역자가 되기 때문이다. 해리의 길을 따라가는 게 윌이다.

그런데 이 게임의 숨겨진 핵심은 다른 데 있다. 해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도박이나 마찬가지이다. 해리 입장에서 이 게임이 끝나려면 진짜 범인을 찾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치명적인 배반과 희생양들을 모두 양해해주는 상대방이 있어야 최종적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겠는가? 그 역할이 누군지 이해한다면, 할리우드 방식의 해피엔딩과 다르다고 느껴질 것이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해리보다 그걸 양해하고 받아들이는 상대에 있다.

굳이 진지하게 보겠다면, 이런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스푹스 : MI5>의 희생양 게임을 우리는 지금 현실에서 실시간 중계로 보는 중이다. 현실의 해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누가 해리이고 누가 해리에 의해 희생된 양일까? 해리의 선택은 성공할 것인가?

스푹스:MI5 개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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