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설날 연휴가 끝나고, 긴 설날 연휴만큼 많이 쏟아졌던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들도 끝이 났다. 그중에서는 호평을 얻은 프로그램도 있고 악평을 들은 프로그램들도 있다. 작년 설 연휴에 방영되었던 <복면가왕>이나 <마이 리틀 텔레비젼>(아래 <마리텔>)이 정규 편성이 되며 흥행성과 화제성을 모두 잡은 것은, 파일럿 예능 제작에 불을 지피는 불씨가 됐다. 이 밖에도 파일럿 예능으로 정규 편성이 결정된 예능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파일럿 프로그램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흥행작의 변주... 대세는 계속된다?

 듀엣가요제 우승을 차지한 EXID의 솔지

듀엣가요제 우승을 차지한 EXID의 솔지 ⓒ MBC


<나는 가수다> 등으로 시작된 노래 예능은 <히든싱어> <복면가왕> <너의 목소리가 보여>(아래 <너목보>) 등으로 확대되어 여전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 파일럿 프로그램 에서도 노래를 소재로 한 예능이 대거 등장했다.

지난 8일 MBC가 먼저 <듀엣 가요제>를 방영하며 일반인과 프로 가수가 함께 노래하는 콘셉트를 내세웠고 거의 비슷한 콘셉트로 9일에 SBS가 <판타스틱 듀오>를 방영했다. SBS는 10일에도 <보컬전쟁-신의 목소리>를 방영하며 일반인과 프로가수가 대결을 펼친다는 콘셉트를 사용했다. 이제는 프로가수를 넘어서 <히든싱어> <너목보> 등처럼 일반인들의 뛰어난 노래 실력을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대세가 됐다.

약속이나 한 듯이 이 모든 파일럿 프로그램들은 대결구도로 진행되었다. 어떤 가수가 어떤 일반인과 듀엣을 이루어 노래를 부르고 누가 우승할 것이냐 하는 호기심이 전제됐다. 세 프로그램 모두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거머쥐었다. 여전히 노래 예능이 통한다는 증거. 그러나 이미 대결구도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단순히 일반인의 노래라는 콘셉트만으로 열띤 호응을 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신의 목소리>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결이라는 콘셉트 탓에, 프로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고 지기라도 하면 불편한 장면을 연출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프로로 인하여 아마추어의 실력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대결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설정한 오류를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마리텔>의 성공 덕택에 인터넷 문화를 이용하는 프로그램도 다수 등장했다. <마리텔>이 인터넷 방송 시스템을 이용했다면 <톡하는대로>나 <인스타워즈>는 SNS를 통하여 프로그램의 의외성을 만들려는 흔적이 엿보였다. 특히 <톡하는대로>는 이미 오랫동안 대세로 자리 잡은 여행 예능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SNS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여행이 얼마나 흥미로워질지가 관건인데, SNS를 이용하여 여행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 예상치 못한 범주에서 확실한 웃음 포인트를 주어야 한다. 다소 한정된 질문으로 결정되는 여행의 콘셉트를 극복하는 것이 문제다.

또한 <인스타워즈>는 누가 가장 많은 팔로워를 거느렸느냐가 초점이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과연 그들의 관심사로 채워진 SNS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얼마나 끌지 문제다. 역시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정규편성이 된 <능력자들>과 비슷한 콘셉트로 치우칠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톡하는 대로>와 <인스타워즈> 모두 4%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쿡방과 먹방 역시 빠지지 않았다. "쿡방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경규가 <요리 원정대>로 셰프들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이경규가 비판한 그대로, 쿡방은 이미 대세의 마지막 기운이 역력한 소재다. 이런 소재를 어떻게 재미있게 연출하느냐가 문제인데 셰프들의 요리 대결이라는 콘셉트 말고 특별할 것이 없었다는 게 극복과제다.

먹방을 소재로 한 <먹스타 총출동>은 잘 먹는 연예인들이 출연해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콘셉트이나, 별다른 호기심을 자아낼만한 포인트가 없었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단순히 대세를 따르는 프로그램은 성공의 가능성이 작다. <요리원정대>와 <먹스타 총출동>은 결국 쿡방과 먹방이 끝물에 달했음만 시사하는 방송이 되고 말았다.

 <몰카배틀>은 설 연휴 예능 파일럿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몰카배틀>은 설 연휴 예능 파일럿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 MBC


반면 이경규의 과거 히트작을 다시 재해석한 <몰카배틀-왕좌의 게임>은 방송 3사 파일럿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경규의 장기가 그대로 살아나며 정규 편성의 가능성을 높였다. 다만 '몰카'라는 소재가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만큼 계속 시청자들이 몰카에 대한 흥미를 느낄지는 의문이다.

가족 예능을 조금 비튼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캐릭터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과업이다. 단순히 형제 관계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 사이의 합이나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어야 하지만, 실제로 그러기가 쉽지는 않다. 사이 좋은 형제의 이야기는, 보기에는 좋아도 그다지 웃음 포인트가 없다. 반면 사이가 안 좋은 형제들의 이야기는 사이가 좋아지는 순간 끝이 난다. 육아 예능을 제외한 가족 예능이 크게 선방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형제입니다> 역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감동... 예능의 새로운 코드가 될 수 있을까?

 감동 잡은 <미래일기>, 정규편성은 글쎄...

감동 잡은 <미래일기>, 정규편성은 글쎄... ⓒ MBC


대부분의 예능이 흥행작의 변주로 콘셉트를 잡았지만 감동을 소재로 한 <미래일기>는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제껏 시도되지 않은 아이디어라는 점 역시 프로그램을 더욱 신선하게 만드는 포인트였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 중 하루를 살아본다는 콘셉트로 분장만 했을 뿐인데도, 출연자들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장면을 숱하게 연출하며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문제는 정규편성의 가능성이다. 감동이라는 게 처음 한 번은 강력하지만 반복될수록 농도가 옅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과거 <느낌표>의 '눈을 떠요!'와 같은 프로그램도 시각 장애인이 눈을 뜨는 처음의 감동은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지만 비슷한 감동이 반복될수록 흥미는 떨어졌다. <미래일기> 역시 비슷한 감동의 반복을 얼마나 색다르게 바꿀 수 있을지, 아니면 감동코드가 아닌 웃음코드를 끌어낼 수 있을지가 문제다. 예능에서는 웃음에 기반을 둔 감동은 유효하지만 초지 일관된 감동은 장기적으로 독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번 출연했던 사람들이 이미 분장한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노출하기 때문에 연속적인 출연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매주 새로운 출연자들을 섭외해야 한다는 부담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설 특집 파일럿을 살펴본 결과 2016 예능 역시 엄청난 변화가 있지는 않을 전망이다. 기존의 프로그램을 뒤집을 만한 콘셉트는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흥행작을 적절하게 변형시킨 프로그램이 선방했다. 맛보기 프로그램 중 과연 또 다른 대세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파일럿에 이어 정규편성이라는 벽을 뚫어도 시청자들의 평가라는 냉혹한 잣대는 아직 남아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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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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