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사외전>의 이일형 감독이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검사외전>의 이일형 감독. <비스티보이즈> <마이웨이> 등의 조연출, 연출부, 각색 등을 거치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이번 작품이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 이정민


영화 <검사외전>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검사가 감옥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사건과 이야기를 덧입으며 지금의 영화가 됐다.

여러 작품의 연출부 및 조감독을 거치며 영화계에서 16년의 경력을 쌓아온 이일형(36)의 감독 데뷔작인 <검사외전>. 소재와 줄거리만 놓고 보면 또 하나의 사회고발 영화로 생각하기 쉽다. 지난 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 감독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유머와 풍자가 담긴 장르물로 생각해달라"고 강조했다.

거짓말쟁이들

제목의 이유는 분명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이라는 측면에서 검사는 상징성이 있었"고 "중심부에서 떨쳐진 인물들 이야기이기에 본전이 아닌 외전"이었다. 소재는 뻔해 보일 수 있으나 발상은 신선하다. 사기 전과9범 한치원(강동원 분)과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간 변재욱(황정민 분)이 각자의 위치에서 부패 정치인에게 일격을 가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통쾌하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 아닌가.

"검사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다? 이 자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식상한 이야기잖나. 액션 혹은 스릴러로 풀기 쉬운데, 난 캐릭터를 색다르게 잡으면 신선해보이겠다 싶었다. 거짓말쟁이 캐릭터를 만들어보자! 재욱 역시 거짓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그의 마음을 풀어줄 이 역시 거짓말쟁이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다. 여기에 약간은 코믹하게 해학과 풍자를 담아 장르물로 만들고 싶었다.

많은 분들이 <내부자들> <베테랑>을 언급하신다. 내가 각본을 쓸 때는 둘 다 못 본 상태였다. 아마 사회의 기득권들과 그 이면을 다뤄서 비슷하게 느끼시는 걸 수도 있다. 다만 <검사외전>은 좀 가벼운 지점이 있다. 이 가벼움이 우리 사회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희극적 가벼움이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영화 속에서 한 정치인이 취재 기자들을 향해 "야! 찍지마"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은 과거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이일형 감독 역시 "의도한 것"이라 인정했다. 선거 출마를 선언한 우종길 검사(이성민 분)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선거운동원으로 위장한 한치원이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 또한 우리에게 익숙하다. "선거 운동 장면은 실제 비슷한 영상을 보고 차용한 것"이라며 그는 "엄청 근엄해야할 상황에 끼어드는 웃음 요소들이 참 한국적"이라고 설명했다.

황정민과 강동원의 만남

황정민-강동원, 극과 극 매력의 환상케미  4일 오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검사외전> 제작보고회에서 이일형 감독(가운데)과 배우 황정민, 배우 강동원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검사외전>은 살인누명을 쓰고 수감된 검사(황정민 분)가 감옥에서 만난 전과 9범 꽃미남 사기꾼(강동원 분)과 손잡고 누명을 벗으려는 내용을 담은 범죄오락영화다. 2월 4일 개봉.

▲ 황정민-강동원, 극과 극 매력의 환상케미 지난 1월 4일 오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검사외전> 제작보고회 현장. 이일형 감독은 "황정민, 강동원 두 분이 한다고 했을 때 혼자 집에서 울었다"는 사연을 전했다. 그만큼 1순위로 생각했던 배우들이었다. ⓒ 이정민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을 그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 <비스티보이즈>(2008), <군도: 민란의 시대>(2015) 등의 각색을 맡아온 이일형 감독은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재미있게' 그리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 황정민과 강동원이 꼭 필요한 이유기도 했다.

"황정민 선배의 전작을 보면서 아무리 허황된 이야기라도 사실적으로 끌어올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변재욱 검사 이야기를 쓰면서도 황 선배를 줄곧 떠올렸다. <검사외전>이 자칫 캐릭터성 때문에 너무 붕 뜬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황 선배의 힘이 절실했거든. 강동원씨는 그간 무거운 역을 많이 했는데 그 안에서 다른 걸 끌어내고 싶었다.

두 분에게 시나리오를 주면서도 사실 불안하긴 했다. 난 신인감독이잖나. 그런데 덜컥 두 사람이 한다고 했다. 그땐 울컥해서 혼자 집에서 울었다.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는데 받아들여진 느낌이었다. 드디어 감독이 되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고.

두 사람의 차별성이 명확하다. 관객 분들이 그 차이를 최대한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물과 기름도 물 위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잖나. 그걸 떠올리며 작업했다."

그렇게 기쁨과 긴장의 상태 속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너무 집중한 탓일까. 촬영 중반 그는 맹장이 터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스트레스 상태에 있으면 항상 장에 문제가 생긴다"며 그가 웃었다.

여기서 잠시 <마이웨이>(2011) 때의 일화를 환기시켰다. 300억 대작 전쟁영화의 연출부였던 이일형 감독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총 160여회 차의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마지막 3회 차를 남긴 라트비아 현지 촬영에서 그는 장 중첩증 진단을 받고 홀로 귀국하고 만다. 대장정을 완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상당 기간 그는 자괴감에 빠졌다.

"라트비아 병원에선 당장 배를 열어야 한다고 그랬는데 도저히 그럴 순 없었다. 부모님 생각도 났고, 버텨보려 했는데 당시 PD님이 목숨이 중요하다고 당장 한국에 가라고 했다. 되게 서러웠다. 내 영화 인생이 이렇게 끝나나 싶었다. 한국에 가서 진단해보니 급성장염이더라(웃음)."

주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일형 감독의 그때 대화명이 여전히 회자되곤 한다. 당시 모바일 SNS 대화명이 '잃어버린 3회차를 찾아서'였다.

소소한 유머를 찾아서

 영화 <검사외전>의 이일형 감독이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명을 쓴 검사와 사기전과 9범의 만남. 개성 강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이일형 감독은 <검사외전>을 만들어 나갔다. ⓒ 이정민


그때는 심각했을 상황을 웃으며 전하는 이일형 감독에게 특유의 이야기꾼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그가 선보일 작품 역시 그 연장선이 아닐까. 과거 그는 <영웅본색> <첩혈쌍웅> <무간도> 등에 열광했던 홍콩액션키드였고,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타이타닉>에 웃고 울던 청년이었다. "대중이 재밌게 보는 작품, 여기에 한국 사회를 녹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며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앞서 그가 언급한 심각한 사건 속 유머가 곧 그의 화두였다.

"뭐가 됐든 하늘 아래 특별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다 기시감이 있을 것이다. 결국 재생산해야 하는 건데, 그 지점을 잘 해야지. 장르를 비틀 수도 있고, <검사외전>처럼 캐릭터를 강조할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이 있을 거다.

그런 차원에서 뉴스를 많이 본다. 어떤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적 사건을 보면서 가끔 되게 심각한데 뭔가 허술한 면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좀 코믹하게 바라보려는 거 같다. 같은 소재라도 사람마다 전달하는 게 다르지 않나. 누군가는 진지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걸 다소 유머스럽게 말하기도 할 것이다. 난 후자인 거 같다.

감독의 길이 참 어렵다면서도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아닐까. 솔직히 멜로 영화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데 주변에선 아직까지 혼자 살면서 무슨 멜로냐고 말린다(웃음). 앞으로 어찌될진 모르겠지만 주어진 예산 안에서 최대한 재미와 의미를 끌어내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영화 <검사외전>의 이일형 감독이 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검사외전>의 비하인드. 황정민은 매 작품마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다. 교도소 안 변 검사의 머리모양 등의 외형도 그의 아이디어. 이에 비해 강동원은 이번 작품에서 애드리브를 꽤 선보였다. 교도소 안에서 부활절 계란을 나눠주는 신에서 변 검사에게 "러브 유!"를 외치는 것 역시 그의 즉흥 연기였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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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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