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선 마술사>의 포스터. 영화 속에서도 사람들은 마술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 <조선마술사>의 포스터. 영화 속에서도 사람들은 마술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오늘날의 마술은 사람들에게 유희를 제공하는 수단이다. 영화 <조선마술사>에서도 그렇다. 영화 속의 조선시대 사람들은 마술이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환상적 쇼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짓밟힌 17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환희(유승호 분)는 평안도 의주에 상설 공연장을 차려놓고 사람들에게 유희를 제공한다. 이런 중에 환희는 청나라로 시집가는 조선 공주(고아라 분)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이를 계기로 빚어지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크린은 돌아간다.

참고로, 영화 속 조선 공주의 모델이 된 의순공주는 왕족 이개윤의 딸로 태어나 효종의 양녀가 된 뒤 청나라 왕족에게 시집간 사람이다. 하지만 청나라 남편이 반역죄로 몰린 뒤 남편의 부하에게 넘겨졌다가 결국 조선으로 귀환하는 굴곡진 삶을 살았다. 영화 스토리와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산 것이다. 영화 속 조선 공주는 마술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의 의순공주는 그럴 여유조차 없는 각박한 삶을 살았다.  

예나 지금이나 마술에 흥미 느꼈던 사람들

 <조선마술사>에서 청명 역을 맡은 고아라, 그녀의 삶은 실제 역사 속 의순공주와는 다소 다르게 묘사된다.

<조선마술사>에서 청명 역을 맡은 고아라, 그녀의 삶은 실제 역사 속 의순공주와는 다소 다르게 묘사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옛날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마술에 흥미를 느꼈다는 점은 실학자 박지원의 글에서도 증명된다. 박지원은 정조 임금이 등극한 지 4년 뒤인 1780년 마흔넷 나이로 청나라를 여행했다. 그 역시 청나라에서 마술 쇼 즉 환희(幻戱)를 흥미롭게 관람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박지원이 기행문인 <열하일기>에서 묘사한 마술 쇼 중에는, 마술사가 왼손 엄지와 검지로 무언가를 비비자 그것이 점점 커져 수박처럼 되다가 나중에는 장구처럼 부풀게 되는 쇼가 있다. 마술사가 그 물체를 다시 만지자, 장구만 하던 것이 점차 작아지더니 나중엔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조선마술사>의 주인공 환희는 물론 우리 시대의 마술사들과도 비교할 때, 박지원의 눈을 매혹한 그 마술사는 '영업 비밀'에 대해 조금 더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자기가 눈속임했다는 것을 공연 끝 장면에서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마술사는 큰 양동이 하나를 탁자 위에 놓고 수건으로 닦은 뒤 붉은 천으로 덮었다. 금방이라도 마술을 부릴 듯 동작을 하던 중에, 갑자기 품속에서 접시 하나가 쨍그랑하고 떨어지면서 붉은 대추가 쏟아져 나왔다."

마술 끝 장면에서, 마술사가 양동이에 붉은 천을 덮고 무언가를 하려던 중에 몸에 숨겨둔 접시와 대추가 갑자기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마술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제히 웃고 마술사도 웃었다. 그릇과 도구를 주어 담고 공연을 마쳤다. 이는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날이 저물어 공연을 마칠 때가 됐으므로, 일부러 파탄을 내서 마술이 다 거짓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마술은 현대인들뿐만 아니라 옛날 사람들한테도 유희를 제공했지만, 애당초 이것은 인류에게 유희를 제공할 목적으로 등장한 게 아니었다. 여기에는 고대보다 훨씬 이전인 상고(上古)시대의 정치적 목적이 관련되어 있었다.

제정일치 사회,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된 마술

 영화 <조선마술사>의 한 장면. 주인공 환희(유승호)는 조선 최고의 마술사로 불린다.

영화 <조선마술사>의 한 장면. 주인공 환희(유승호)는 조선 최고의 마술사로 불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고인돌 같은 고대 유물로 흔히 연상되는 상고시대에는 제정일치가 세계적으로 퍼져 있었다. 제사장과 군주의 역할이 분리되지 않고 일원적으로 작동했다. 그래서 제정일치 시대의 통치자는 종교인이나 무속인 역할까지 겸했다.

제정일치가 약해진 뒤에도 어느 정도는 그랬지만, 제정일치 시대에 통치자의 정통성은 천명(天命)에 있었다. 오늘날의 국민주권시대에는 국민의 위임을 받았다는 사실이 통치자의 정통성을 규정한다. 제정일치 시대에는 천명을 받았다는 점이 그런 정통성을 규정했다.

국민주권시대에 통치자가 국민의 위임을 받았다는 점은 선거 결과를 통해 증명된다. 부정행위 없이 치러진 선거를 통해 통치자로 선출됐다면, 국민의 위임을 받은 합법적 통치자로 인정된다.

그런데 하늘에서 천명을 받았다는 점은 구체적으로 증명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이걸 입증할 목적으로 나온 방법의 하나는, 제사장 겸 군주가 신비한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대 군주들이 화려한 옷과 귀금속으로 몸을 치장한 것은 자신을 그렇게 비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비함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기적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눈앞에서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기적이 벌어진다면, 어느 시대 어느 사람들이라도 쩍 벌어진 입을 쉽게 다물 수 없을 것이다.

신약성경 속의 예수가 수많은 기적을 보여준 것도, 세상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서 예수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니라"고 말했다. '표적과 기사' 즉 기적을 보여준 동기가 복음 전파에 신빙성을 부여하는 데 있음을 말하고 있다.

가짜 마술로 세상을 현혹하던 통치자

  우표 속의 고인돌. 서울시 중구 충무로 우표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우표 속의 고인돌. 서울시 중구 충무로 우표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상고시대 통치자들도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통성을 입증하려면,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천문이나 기상에 대한 지식의 독점을 이용해서 일정 기간 기우제를 하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또 의술에 대한 지식의 독점을 통해 사람들을 치료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의사를 가리키는 한자 의(醫)의 하변에 지금은 유(酉)가 있지만, 고대에는 무당을 가리키는 무(巫)가 밑변에 있었다. 고대에는 의(毉)가 의사를 가리키는 한자였다. 이것은 무속인으로 대표되는 종교인들이 의술을 독점했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40년간 3000여 명의 무녀와 인터뷰한 민속학자인 고 서정범 교수의 <한국 무속인 열전>에 실린 사례들을 종합하면, 무속인이 환자를 치료하는 대표적 방법의 하나는 자기 몸속에 있는 태양 에너지를 환부에 쏘아대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보통 사람보다 태양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에너지가 무속인의 손을 환자의 몸에 닿는 과정에서 병이 치유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상고시대 통치자들은 이런 치료법을 통해서도 자신의 신비함을 증명했다.

또 그들은 <조선마술사>에 나오는 마술이나 요술 같은 방법으로도 자신들의 신비함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 점은 제정일치가 약화한 후대의 통치자들도 여전히 이 방법을 구사한 데서 드러난다.

강태공의 사상을 정리한 <삼략>에는 기원전 11세기에 강태공이 주나라 무왕에게 "술사 두 명을 두어 쇼를 벌이고 귀신을 명분으로 민심을 유혹하는 일을 주관하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통치자가 곧 무당이었던 시대 같으면 통치자가 직접 마술을 보여주면 됐지만, 제정분리가 어느 정도 진척된 시대이기 때문에 통치자가 마술사를 고용해서 민심을 통제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있다.

이것은 마술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상고 시대의 정치기법이 주나라 시대에도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술이 통치자의 정통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던 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아주 옛날의 군주들도 세상을 속이는 방법으로 통치의 정통성을 획득했다.

오늘날에도 통치자들은 부정선거를 하는 방법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방법 등으로 자신이 국민의 정통적 대표자인 것처럼 위장한다. 상고 사회로 치면 이들은 가짜 마술로 세상을 현혹하는 사람들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마술은 아주 오랜 옛날만 해도 통치자가 백성을 기만하는 데 사용되는 수단이었다. 그랬던 것이 제정일치가 지속해서 약화하면서, 통치를 위한 수단에서 유희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마술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지배층에서 서민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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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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