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체험에 나서는 중학생들
KBS1
우리 사회의 정규 교육 과정으로 인정받는 '학교'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제는 사라진 '국민학교'라는 말일 것이다. 이제는 단계별로 초등·중등·고등학교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교육 현장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바로 그 '국민교육 헌장'을 외우던 시절의 '국민학교'이다. 산업 국가가 원하는 인재를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정해진 교육 과정을 통해 일정 수준에 도달하도록 교육하는 곳이 바로 현재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학교'라는 곳이다.
철학자 푸코는 그런 제도권 교육의 학교를 '개인을 유용한 사회적 자원으로 키워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 사회 '규율 권력'의 실현체로 보았다. 그래서 학교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생산해 내며', 나아가 '인간 자체'를 만들어 내는 기관으로, 공장, 감옥, 수도원, 군대 조직과 같은 '감금형'의 규율 지배적 공동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성격을 띤 학교에서는 규율과 그에 대한 제재가 우선적일 수밖에 없다. 교사는 '지식'의 전수자로서 학생들을 '억압'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푸코의 생각이다. 그리고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오늘날 학교 현실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는 바로 이 '푸코'의 냉정한 철학적 인식의 기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전은 '절대적 지식의 전수와 그 실행인'들의 집합체로 사회가 구성되는 산업사회를 넘어섰다. 위계가 무색해지는 네트워크 중심의 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러다임의 새로운 경제·사회 질서로 변화했다. 그 본질은 여전히 자본주의이지만, 더는 산업사회적 '지식'으로 현재 혹은 미래의 사회를 규정하거나 대처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나간다. 당연히 이제 더는, '공장제' 식으로 찍어내듯 전달·전수되는 교육은 예측 미지수인 미래 사회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학교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아니 이제 더는 감금형의 교실에서 자신의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 아이들로 인해 변화가 강제되고 있다.
4부작 <SBS스페셜-바람의 학교>에서 시작은 이런 기존의 제도권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퉁겨져 나온 바람 같은 아이들에 대한 '대안' 모색이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찾은 것은 아이들 각자의 문제점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찾을 수 없는 학교, 꿈을 위해 견뎌야 할 이유가 없는 학교였다.
즉, 이제 현실의 학교는 그 교실에서 수년간 입시라는 골문을 향해 견뎌내는 아이들을 제외한 다른 꿈을 꾸는 아이들, 아니 입시라는 맹목적 목표에 쫓겨 가면서도 갈증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꿈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어려운 <오이디푸스>도, 버거운 공연 과정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으면 짧은 시간에라도 기꺼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바람의 학교>는 증명해 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다시 돌아간 학교는, 그 가능성을 숙제로 남겼다.
자유학기제 그리고 시험 없는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