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판매점에서 거짓으로 구매계약을 하는 아영(김꽃비 분)
(주)대명문화공장
자신의 거짓말에 목덜미가 졸려 어찌할 수 없는 상황마다 아영은 '정신 차리자'고 수차례 되뇐다. 그러나 상황은 늪과 같아 버둥대면 버둥댈수록 더 깊이 처박힌다. 그런 그녀에게 애인인 태호(전신환 분)가 도움의 손길을 뻗지만 허영에 잠식된 아영의 눈엔 그마저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침몰하는 배와 가라앉는 아영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김동명 감독은 아영의 파멸을 통해 진실을 좀먹는 거짓의 위험을 고발한다. 영화의 끝에서 아영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오로지 거짓뿐이고 그 자리는 공허로 연출된다. 아영과 태호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그들 사이에 거짓이 끼어있었기 때문이고 감독은 이들 사이에 자리한 약간의 거짓조차 용납하지 않는 엄정한 결말로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아영이 태호와 함께 그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는 장면부터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급경사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내닫는다. 끝없이 갈망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것에 절망하는 주인공의 드라마나 냉장고로 상징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등에 보다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영화는 거짓의 위험을 고발하는 정도에서 걸음을 멈췄다. 몇몇 상징은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등장하고 문제의식은 날카롭지도 깊이가 있지도 않아 제법 흥미진진하게 끌어온 영화임에도 호의적인 평가를 얻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영의 자살이라는 전형적인 결말을 용납할 수 없고, 창의적인 결말을 떠올리지도 못한 감독은 도식적 상징을 이용한 열린 결말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영이 다시 마트로 향하는 수미쌍관의 결말이나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순간에 예기치 못한 반전을 준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선택이 가능한 상황에서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파국과 허망한 소멸을 선택한 건 너무도 무책임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아영에게 공감해온 관객도 태호가 돌아서던 그 순간 아영에게서 돌아서고 말 것이다. 태호의 어머니 앞에서 태호와 격투를 벌이고 그의 차를 훔쳐 떠나는 아영의 모습은 마치 배추김치로 따귀를 때리고 아메리카노를 얼굴에 들이붓기 일쑤인 아침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충분히 관객을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설정을 가진 영화가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도전적 작가 모인 영화계, 왜 여자원톱 기용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