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은 의외의 흥행을 거둔 작품이다. 특히 올가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를 제쳤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이는 "<사도>를 보고 받은 스트레스를 <인턴>을 보고 풀었다"라고도 한다.

<사도>에선 세대갈등, 아니 세대전쟁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영화 전면에 펼쳐진다. 그 세대전쟁의 뒤에 끝내 뒤주에 갇혀 죽음에 이르는 건 단연 자식 세대다. <사도>는 오늘의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일지 모른다.

작금의 세상엔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영어단어인 'hell'에 조선을 합성한 말로 지옥 같은 한국을 이르는 신조어)'을 부르짖는 자조와 절망의 목소리가 지옥불처럼 차고 넘친다. 자살률, 출산율, 실업률 등의 통계자료는 헬조선의 현실을 객관적 수치로 뒷받침한다.

특히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들 중 11년째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고, 심지어 한국에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수(71916명)가 같은 기간 이라크 전쟁 중에 사망한 군인과 민간인의 수(38625명)에 비해 2배 이상 많으며(3일 보건복지부 발표), 인구 10만 명 당 한국의 자살률(29.1명)이 최근 세계 최악의 경제난으로 나라 자체가 부도 위기라는 그리스의 자살률(4.2명)에 비해서도 약 7배나 더 많다는 소식 등을 접하면, 정말 여기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몸으로도 갈 수 있는 지옥(hell)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 같은 복마전에 가까운 현실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사도>는 다소 버거운 영화였는지 모른다. 안 그래도 힘든데 피로감만 더했을 수 있다. 반면 <인턴>의 세계에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갈등 상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70살 노인이 하는 태극권 동작 같은 느긋함과 편안함이 가득하다. 전형적인 힐링 판타지물이다.

"'꼰대' '개저씨'에 정확히 대척점에 선 인턴" 

영화에는 이야기의 축이라 할 만한 뚜렷한 갈등구도가 보이지 않는다. 30세 여성 CEO인 줄스(앤 해서웨이 분)와 70세 남성 인턴인 벤(로버트 드 니로)의 만남이란 성별, 나이, 지위의 대립구도는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하지만 실제 영화에서 이 같은 대립구도는 별다른 긴장감 유발 없이 작품 중반부 이후 손쉽게 화합한다. 줄스의 대사를 보라.

"당신(벤)은 나의 인턴이자 소중한 친구입니다!"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 영화 <인턴> 제작사


이는 물론 지혜롭고 유연한, 이상향에 가까운 노인 '인턴' 벤에 의해서다. 벤은 귀는 열어두되 입은 닫아둔 그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노인이다. 요즘 '헬조선'이란 말과 함께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꼰대'나 '개저씨'란 신조어가 지칭하는 어른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진짜 어른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진짜' 어른 벤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가짜' 어른이란 점이다. 현실의 어른들은 어떤가.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사도> 속 영조(송강호 분)의 대사를 들어보자.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너(사도세자)는 왜 공부를 안 하니!"

안 하던 공부를 해서 겨우 대학에 들어가면 뭐하나. 이번엔 취업은 언제 하냐고 몰아세울 테고, 취업을 하면 또 결혼은 언제 하냐고 안달할 테며, 결혼을 하면 또 애는 언제 낳을 거냐며 뒤주처럼 숨 막히는 오지랖을 부릴 어른들 역시 세상 곳곳에 널려있다.

영화 <인턴>이 개봉해서 인기를 끌었던 시점이 온 가족이 모인다는 추석 연휴 직후라는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로 CGV리서치센터가 개봉일부터 지난 6일까지 영화 <인턴>을 관람한 관객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대가 전체의 47.6%로 1위이고, 30대가 26.7%로 2위다.

이처럼 <인턴>은 한국 젊은이들의 이상적 노인에 대한 판타지가 흥행으로 이어진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 지혜로운 70세의 인턴 벤은 인생의 인턴이랄 수 있는 30세의 CEO인 줄스를 비롯한 직장의 청년 동료들의 멘토 역할을 한다.

공사를 망라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조용히 경청하고 그들이 도움을 청할 때 비로소 70년 삶의 지혜가 응축된 아날로그적 경험을 나눈다. 뿐만 아니라 집을 구하지 못한 젊은 입사동기를 자신의 집에 살게 해 주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연애상담도 해 준다.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어른은 어디에 있나?

이렇듯 이 나이든 인턴은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항시 준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노인(벤)의 대사를 보라.

"요즘 젊은이들은 손수건을 안 가지고 다니지. 그런데 자네, 손수건의 진짜 용도가 뭔지 아나. 바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거라네."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 조영훈


이런 노인이, 이런 어른이 현실의 우리 곁엔 얼마나 있을까.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식인이니 선생님이니 하는 어휘도 여기저기서 자주 쓰인다. 고민상남이니 토크콘서트니 힐링쇼니 하는 TV프로들도 채널을 돌릴 때마다 걸린다.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는 또 서점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왜 이렇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지옥에 빗대는 젊은이들이, 또 이 나라를(혹은 이 세상을) 떠나겠다는 젊은이들이 이리도 많을까.

어쩌면 <인턴>에 대한 환호는 얼마 전 MBC 예능방송 <마이리틀텔레비전>에서 불었던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에 대한 열광의 후속편쯤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영만도 <인턴> 속 할아버지 벤도 지친 청년들을 위로한다. 문제는 이 노인들이 TV나 영화 속에만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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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반려견 '라떼'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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