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1일 개막한다. 부산영화제 포스터

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1일 개막한다. 부산영화제 포스터ⓒ 부산영화제



화려한 레드카펫과 스타배우, 세계 각지에서 골라온 수준 높은 영화는 매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자랑하는 기본 구성이다. 사실 부산영화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저항과 투쟁'. 지난 20년 동안 부산영화제가 지향해 온 정신이자 바탕이다.

부산영화제는 어정쩡한 정치적 중립성이 아닌 정치적 독립성을 강조해왔다. 세계 각지의 뛰어난 작품들을 부산영화제라는 공간에서 관객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것도 이런 기초가 다져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과 관련한 논란에 영화인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제의 생명과도 같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위협당하는 순간 영화계는 저항의지를 불태워 왔다. 1회 때부터 시작해 20회에 이르기까지 부산영화제는 외부 간섭을 배제하고 영화의 해방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역사가 지금의 부산영화제를 있게 만든 동력이다. 20회, 즉 성년이 된 영화제를 맞이하며 새삼 격렬하게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했던 영화인들의 노력을 돌아본다.

1회부터 파격과 액땜

 1997년 2회 부산영화제에서 검열철폐 시위를 벌이고 있는 변영주 감독, 김동원 감독, 홍형숙 감독 등 영화인들

1997년 2회 부산영화제에서 검열철폐 시위를 벌이고 있는 변영주 감독, 김동원 감독, 홍형숙 감독 등 영화인들ⓒ 부산영화제


사실 1회부터 파격적이었다. 비주류로 취급받던 독립 다큐멘터리 등이 영화제에 걸리며 주목받은 것이다. 1995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가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극장에서 개봉되기는 했지만, 당시만 해도 독립 다큐의 극장 상영이 쉽지 않던 때였다. 더구나 단편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주로 대학가나 노동조합 사무실, 시국집회 등에서 상영되곤 했다.

1회 부산영화제(1996년)에서는 한국 노동운동과 양심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비디오 다큐멘터리 <해고자>와 <어머니의 보랏빛 수건> 등이 상영됐다. 정치 사회적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영화제라는 공간을 통해 극장으로 영역을 확장한 순간이었다.

반면 <크래쉬>의 삭제본 상영은 부산영화제가 치러야 했던 액땜이었다. 당시 영화 수입사가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륜. 현 영상물등급위원회 전신)'의 심의를 받아 영화 일부를 삭제한 필름을 제공한 데 따른 것이었다. 영화제에서 삭제된 필름이 상영된 것은 모든 검열과 심의를 거부하는 영화제의 정신에 맞지 않아 상당한 비판이 일었다. 첫 행사를 치른 미숙함이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분위기였으나 덕분에 검열과 심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무대에는 영화인들만 오를 수 있다" 대선 후보들 차단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고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고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 부산국제영화제


검열에 대한 영화인들의 본격적인 싸움은 2회 영화제로 넘어갔다. 전체 영화제 역사 속에서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화두를 등장케 한 때였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앞 다퉈 부산영화제를 찾았으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한국영화프로그래머였던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과 김대중 후보를 수행했던 배우 출신 정한용 의원의 멱살잡이가 벌어진 것도 이 때였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예우에 불만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간의 설전이 진행됐고, 이내 몸싸움으로 진행될 만큼 격렬했다. 지금이야 서로 웃으면서 "그때 이후 서로 친해지게 됐다"고 말하지만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결기는 대단했다.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오석근 감독(현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이 남포동에 나타난 이회창 후보가 무대에 오르려는 것을 육탄으로 저지한 것도 이 때였다. 주말 영화제 행사가 진행되던 남포동에 이회창 후보가 수행원들을 대거 이끌고 나타났다. 당시 무대에서는 이용관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강수연 배우 등이 참여한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 후보는 관객들에게 인사말을 하려 무대로 오르려고 했으나 오석근 감독이 막아섰고, 이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석근 감독은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이 무대에는 영화인들만 오를 수 있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영화제의 한 행사일 뿐" 시위 해산시키려는 경찰을 프로그래머가 막다

 1997년 2회 부산영화제에서 표현의 시위를 이끌고 있는 조영각 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1997년 2회 부산영화제에서 표현의 시위를 이끌고 있는 조영각 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한국영화 부문 프로그래머였던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이 현장을 찾은 경찰 관계자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

당시 한국영화 부문 프로그래머였던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이 현장을 찾은 경찰 관계자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영화진영의 검열 철폐 시위도 동시에 맞물렸다. 영화제에 작품을 낸 <낮은 목소리2>의 변영주 감독, <명성, 그 6일의 기록>의 김동원 감독, <변방에서 중심으로> 의 홍형숙 감독, <레드 헌트> 조성봉 감독 등은 영화제가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륜으로부터 일괄심의를 받았다는데 발끈했다. 이들은 한 데 모여 영화제 참여에 대한 의견을 나눴고, 영화제를 거부할 경우 국제영화제로서 이미지 타격이 크기 때문에 참여는 하되 현장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정리했다.

독립영화인들의 시위에는 당시 20대였던 조영각(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앞장섰다. 변영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독립영화진영이 한마음으로 나서 남포동 광장을 메웠다. 당시 경찰은 이를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즉각 해산하지 않을 경우 강제 해산시키겠다"고 엄포를 놨는데, 이를 막아선 게 이용관 한국영화 프로그래머(현 집행위원장)이었다. 이 프로그래머는 경찰 책임자에게 "야외무대 인사 같은 영화제의 한 행사일 뿐인데, 왜 경찰이 간섭하냐"며 설전을 벌였다. 이후 영화제 상영작 심의 문제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면제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김세훈 위원장)가 영화제 상영작 등급 분류면제를 바꾸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안팎의 호된 비판을 받은 것도 이런 역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스크린쿼터 반대, 시국선언 참여, 노동자들과 연대

 지난해 19회 부산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1123인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19회 부산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1123인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민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와 함께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 역시 부산영화제에서 이뤄지곤 했다.

2006년 11회 때는 개막작 <가을로> 김대승 감독이 영화제 기간 중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를 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았던 이준기 등의 스타배우들도 함께 피켓시위에 나섰고, 스크린쿼터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 행사였던 '문화다양성의 밤'에 김동호 부산영화제집행위원장, 안성기 부집행위원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스크린쿼터와 한미FTA' 관련 서명에도 무려 5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는데, 영화제 측은 부스 등을 마련해주며 배려했다.

2009년에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영화인 성명에 부산영화제 직원 일부가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부산영화제는 안팎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집행부가 눈치 보기 식 태도를 취하자, 개막 석 달 앞두고 기획실장이 이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정지영 감독(오른쪽)과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 <헬프>로 새 작품을 알릴 변영주 감독이 8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을 찾아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응원하고 있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정지영 감독(오른쪽)과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 <헬프>로 새 작품을 알릴 변영주 감독이 영화제 기간 중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을 찾아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손을 흔들며 응원을 전했다.ⓒ 유성호


2011년 16회 영화제 때는 당신 주요 현안이었던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과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이던 제주 강정마을에 대한 연대가 이뤄졌다. 당시 전국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희망버스 물결에 정지영 감독과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 변영주 감독 등도 나서 영화인 희망버스를 조직했다. 당시 영화인 희망버스는 한진 중공업 사옥 앞까지 진출해 김진숙 지도위원과 통화로 격려하고 응원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부 감독들은 한진중공업과 강정마을 투쟁을 지지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며, 국내외 언론에게 적극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다이빙벨> 상영 논란이 있던 지난해 19회 영화제 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영화인 선언도 부산영화제 때 맞춰 발표돼 의미를 더했다. 주요 감독과 배우, 제작자 등이 망라된 영화인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아울러 상영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서병수 부산시장을 향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올해 초 이용관 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진행될 때 영화계가 들고 일어난 것도 이런 밑바탕이 작용한 결과다.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고 약자들과 연대하는 영화인들의 정신은 어느새 세계적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영화제의 단단한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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